파악되기를 거부한다. 파악된다는 것은 수를 모두 들키는 것을 의미한다. 투수와 타자의 싸움에서 레퍼토리가 부족한 투수는 쉽게 그 구질을 간파당하는 것처럼 인생의 마운드에서 강판당하지 않기 위해선 레퍼토리가 많아야 한다. 정공법에서의 묵직함과 예기치 않은 변칙이 공존해야 상대로 하여금 긴장을 유지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누군가의 헤게모니로부터 나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유지시킬 수 있다. 내 영역이 상대의 아랫 영역이 된다는 것은 사고 행동 패턴이 모두 읽혔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때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거나 애초에 입체성이 있는 모습으로 타인에게 파악될 필요가 있다. 내 영역은 그렇게 상대로부터 알 수 없는 영역이 됨가 동시에 침투하기 어려운 영역이 된다. 그리고 고유해진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상대의 에너지에 그대로 에너지로 맞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이다. 같은 반응일지라도 상대의 예상에 부합했는가 아니면 그 예상을 벗어났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상대가 호전적 반응을 보일 때 오히려 차분하게 대하는 것. 미묘해 보이는 문제에 과감히 돌진하여 단숨에 명쾌하게 만드는 것 등이 상대의 긴장을 이끌어낸다. 그 긴장의 크기는 내 영역의 견고성과 동치를 이루게 되며 그렇게 꾸준히 상대의 예상치에 벗어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어느 영역에 머무는 사람이 아닌, 그래서 시나브로 그 영역을 소실하는 누군가가 아닌, 상대의 영역 침탈 야욕에 그 영역 자체를 변주시켜 화살을 피해나가는 홍길동과 같은 분산된 캐릭터로 인식될 수 있다.
파악되면 안 된다. 파악당한다는 것은 자존과 정체성의 소멸이나 지위의 전락을 의미한다. 파악되는 순간 한 사람의 쓰임은 거기에 속박된다. 캐릭터에 변주를 주어야 자기 영역의 상실을 예방할 수 있다. 소모되도 괜찮은 캐릭터로 타인을 상대함으로써 더 존귀한 본연의 캐릭터를 그 뒤에 숨길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자아는 보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