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은 없다.

by 글객

일이란 객관성을 확보해가는 씨름이지만 종국의 판단은 결국 주관이다. 객관성 있는 판단 또한 그 근거를 보편적 사례들로부터 빌려왔을 뿐 결국은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관에서 벗어날 순 없다. 제 아무리 이전에 진행됐던 방식 그대로 일을 처리하더라도 같은 그 방법을 취할지 말지는 공연히 담당자의 선택의 영역이며, 선택 이후에는 담당자라는 명칭에 더해 책임자라는 칭호가 덧붙게 된다. 그래서 일이란 보편성은 있지만 절대성은 없는 것 같다. 꼭 이렇게 해야만 되리라는 법은 없다.


일의 줄기는, 큰 맥락이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봉오리가 피는 그 마지막 절차는 제 각기 다르게 피어난다. 그리고 그 피어남에는 어떤 최후의 판단과 결정이 포함된다. 줄기 끝이 썩어 들어가는 일은 제 때에 잘라주어야 더 이상 불필요한 에너지가 소비되지 않으며, 별 탈 없는 일은 가지가 잘 뻗어나가게 하기 위해 잔가지를 쳐줘야 한다. 또한 일은 그 자체로 유기체 같아 생명력이 있는 과업은 마치 선인장같이 최소한의 양분만 제공해주면 스스로 잘 성장해나가고, 또 어떤 일은 너무도 미약하고 연약하여 세심한 관리와 넘치치 않을 만큼의 양분을 자주 공급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 세세한 판단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일에 대한 결정이자 주관이다. 주관에 의해 일은 자라고 죽는다.


어떤 일은 죽여야 한다. 가망이 없는 일은 그 불씨가 보이더라도 스스로 빠져나와야 한다.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여 억지로 불을 살리려 하면 그 불 살리느라 다른 불은 또 죽어갈 수 있다. 때문에 그 불씨가 살아날 불씨지 애써도 꺼져버릴 불씨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누구는 살아날 불이다, 누구는 이미 틀렸다 왈가왈부해결국 그것을 선택한 후의 책임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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