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이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는 논쟁의 자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안의 찬반을 두고 벌어지는 열띤 논쟁. 그 속에서 무엇이 더 나다운 선택인가가 선뜻 느껴지지 않을 때, 과거에 가졌던 예리한 칼날이 더 이상 내 안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난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인가? 그래 다시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지키고 싶은 가치를 지키기 위한 여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적어도 과거에는 굳이 언어를 빌리지 않아도 그러한 감정이 내 안에 생생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종류의 강요가 싫었고 인위적인 무엇이 싫었다. 달콤해 보이는 과실을 위해 현재의 고통이나 억압이 정당화되는 것들이 싫었고 보편의 인생 문법을 따르는 보편의 모습들이 싫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싫었고 불의를 행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불의를 전파하는 보편이 싫었다. 그렇게 현실과 교육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격차가 모순과 같이 느껴졌고 언제부터인가는 교육이 잘못된 것인지 현실이 잘못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선 모습들이 다 어디 갔을까. 표출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감정으로써 살아 숨 쉬는 내면의 가치관은 뚜렷했었다. 그 뚜렷함에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 자신의 설자리를 소실시키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걸 지키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지금의 나는 이렇게 글로 적어야만 어렴풋이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는 꼴사나운 모습이다.
지키고 싶은 가치. 그것을 잃는 순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잃어버리는 것일까? 받아들이는 태도는 인생을 살아가는 훌륭한 기저 조건이지만 오늘은 무뎌진 칼날에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