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속일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살아온 시간 동안의 결정과 행동이다. CD-ROM에 한 번 데이터를 쓰면 다시는 수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은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를 제한한다. 정체성이란 반복된 행동의 축적이다. 한 사람의 캐릭터는 그렇게 확고해지고 굳어져간다.
자유롭고 당당한 행동은 쌓인 죄의식에 의해 저지당한다. 죄의식은 자기 자신의 설자리를 좁힌다. 그러니까 어떤 행동을 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가 아니라 그 행동에 의해 나 자신이 죄의식을 느낄 것인가 아닌가 하는 상대적인 잣대에 의해서다. 선택과 행동이 개인의 정체성과 인생을 규정한다면 죄의식에서 자유로울수록 자기 캐릭터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존의 무게를 결정지을 것이다.
폭력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폭력이란 무엇일까? 구타를 당하면 구타를 당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언어폭력을 당하면 똑같은 언어폭력을 당할만한 상황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는 회피 심리나 숨는태도를 만든다. 억압의 형태다. 외압에 의해 추구할 수 있는 사고와 행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따라서 폭력은 단순히 생물학적 고통이나 정신적 힘겨움의 의미를 넘어 본질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한 꺼풀 제한시키는 억압의 개념이다.
이 둘을 조합해보면 죄의식은 스스로에게 행하는 폭력의 개념이다. 자기 자신의 자유로움을 박탈하는 억압의 개념이다.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그렇기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방법은 두 가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정서를 가지거나 죄의식을 가질 행동 양식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아마도 후자를 우리는 수련이라고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