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정신과 시차의 방]
한 번에 열 몇 시간의 비행을 해야 하는 것은 난생처음 있을 일이었다. 고작해야 내가 타본 비행기는 인생에 걸쳐 총 6차례 방문했던 제주도 여행 시의 1시간 남짓의 비행과, 첫 해외 방문이었던 올해 3월에 다녀온 연변, 그리고 그때의 2시간 남짓의 비행이 전부였다. 연변 방문은 서른이 지나고서야 경험한 내 생에 최초의 해외 방문이었지만, 당시의 기분은 딱 절반만 해외에 나와있는 기분이었다. 거리의 간판은 제도적으로 한글과 한문이 병행표기되어있었고, 같은 말을 쓰는 동포들을 만나다 보니 첫 해외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친숙한 모습이 꽤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 첫 해외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인천공항에서 영국 히드로 공항을 경유하여 취리히로 가는 일정의 첫 편은 11시간이 넘는 비행이었고, 환승한 후 취리히로 가는 비행은 2시간 남짓이었다.
11시간의 비행에 대한 비상대책은 몇 가지가 있었다. 소설책 한 권, 스마트폰에 미리 담아온 누자베스 음악, 불현듯 떠오를지 모르는 생각과 감성을 기록하기 위한 블루투스 키보드 등이 그것이었다. 거기다 처음 먹어 볼 기내식과 낮잠 등이 또 다른 대안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항공사였던 영국항공 데스크의 직원은 발권을 해주면서 가운데 자리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 가운데 자리 밖에 없는데 괜찮으세요?”라는 의례적인 걱정을 내비춘 것이었다. 괜찮지 않다고 해서 어찌할 도리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군말 없이 티켓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미리 포장해온 자전거 박스를 위탁 수하물로 내밀었다. 박스의 무게는 무료 수하물 제한선인 23kg을 조금 넘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요”라는 말과 함께 초과 운임이 부과되지는 않았다. 다행인 일이었다. 전날에 23kg을 맞춘다고 꽤나 용을 썼었는데 집에서 쓰는 체중계로는 커다란 자전거 박스의 무게를 정확히 재는데 한계가 있던 모양이었다.
표 딱지를 붙인 자전거 박스는 따로 ‘큰 짐 부치는 곳’에 맡겨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X-ray 검사를 마치고서야 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첫날 아침은 반드시 분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인 즉슨 비행기 시간이 오전 10시 즈음이었던 점과 함께 아무래도 자전거 수하물과 관련해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미리 구매한 해외 유심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영국 쓰리심을 구입한 나는 결제 시 인터넷 창에서 인천공항 현장 수령을 체크했었는데 부스에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근처에 모여있었다. 번호표는 유심을 수령하는 용도와 휴대용 에그를 수령하는 용도로 나뉘어있었고 유심을 구입한 나는 맞는 번호표를 뽑아 일이십 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다 직원이 내 번호를 부르기에 번호표를 들고 데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자판을 타닥타닥 두들기던 종업원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 조민곤입니다. “
“ 어떤 상품 구매하셨나요?”
“ 쓰리심 12기가 30일짜리요”
이것저것을 물어보던 직원은 그래도 잘 모르겠는지 다른 직원을 불러서 또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아무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당일 구매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해당업체에서 유심을 구매하는 경로가 여러가지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구매했던 사이트의 명단이 홀랑 다 누락된 눈치였다. 그 뒤로 꽤나 시간이 지나서야 내 유심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은 많아서 대기 시간도 긴데 그쪽 착오로 갑자기 지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사과의 말이 없어서 살짝 불쾌한 기분이 들었었다.
번호표를 들고 대기 순서를 기다릴 때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일전에 여행 출발하는 시간을 일러 주기는 했었는데, 딱 때를 맞춰서 전화까지 해줄 줄은 몰랐었다. 요즘 들어 숫자 관련한 웬만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내 모습에 비춰 타인도 응당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 일단은 혼자서 출발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내심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제 가냐?"
“이제 간다"
“잘 다녀와라. 난 자전거 좋아해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대단하다.”
“벌써부터 겁나 지친다. 아무튼 잘 갔다 올게."
자전거를 나름 좋아하는 친구는 부러움과 경외감이 묘하게 섞인 말투로 인사말을 전했다. 반면 내 마음속에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짐도 부치고 티켓팅도 하고 유심도 찾으며 부산스러운 일을 다 마치니 어느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낯선 경험들이 한꺼번에 몰아치기 직전에 놓인 사람이 갖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정의 총체를 느끼고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19일 동안의 여행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출발할 때의 나의 생각은 벌써 다 잊히고 없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