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보통 맘대로 안된다. 1

[1장. 정신과 시차의 방]

by 글객

살다 보면 제 맘대로 되는 게 참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비단 거룩한 꿈을 꿀 때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들에서 마저도 직면하게 되는 현실이다. 이를테면 미용실에 가서 기죽지 않고 헤어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일이나 보험 가입 전화를 짜증 없이 끝까지 듣는 일 같은 경우가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일 들이다. 특히나 미용실 같은 경우 언제나 나름의 결의를 가지고 입장하는 곳이지만 보통은 내 생각을 절반도 말하지 못하고 퇴장하는 장소다. 헤어디자이너의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질문은 언제 들어도 당황스러우며 명쾌한 답변을 쉽사리 떠올리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번 여행의 경우 스마트폰이 그랬다. 여행을 떠나기 전 두 가지 이슈로 인해 스마트폰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 한 가지는 카메라, 한 가지는 메모리였다. 내가 2016년 4월 경부터 사용한 S사의 스마트폰은 저가형 모델로 카메라 성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고 메모리도 16GB밖에 되지 않아 항상 용량 기근에 허덕이곤 했었다. 그나마 평소에는 없는 돈 아껴 쓰듯 필요한 어플만 받아 메모리 보릿고개를 버텨냈지만 여행에서는 사진도 많이 찍고 또 동영상도 간혹 찍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참에 하나 장만하자는 마음이었다. 각국에서 현지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쓸 일도 많았기 때문에 16GB의 메모리로는 전혀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진도 중요한 이슈였다. 기회가 좋아 여행 얼마 전 직장 외부 교육을 통해 보정 어플 활용법을 배우긴 했었지만 아무래도 질 좋은 카메라로 애초부터 잘 나온 사진을 찍느니만 못할 일이었다. 그게 아니면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닌 전용 카메라를 구매해서 가져갈까 생각도 했지만 자전거 여행이라 아무래도 좀 거추장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카메라 기능이 좋은 스마트폰을 새로 구매하는 결론을 냈었다. 메모리야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대부분 이 못해도 32GB는 됐기 때문에 16GB를 썼던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 크게 느껴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우연찮게도 이전부터 사무실 직원 H님이 종종 스마트폰을 싸게 사는 방법에 대해 설파를 하곤 했었다. 주로 사무실이나 지하철에서 설파당한 그 방법론의 첫 번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품을 팔아 싼 값으로 올라오는 게시물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리점마다 월 별 스마트폰을 팔아야 할 목표치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월말이 되면 할당량을 채우려고 싼 값의 매물이 올라온다는 설명이었다. 여행 계획이 없던 그 이전부터 H님이 두세 차례 그런 펌프질을 해줬던 덕분에 스마트폰을 바꾸게 된다면 대략 언제 즈음 어떤 경로로 구매해야 할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여행 출발 날짜도 4월 29일, 월말이었다.


자연스럽게 문제는 어떤 스마트폰을 구매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일단은 한 번 저가용 모델을 사용한 사람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브랜드였다. 누구나 알다시피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별로 스펙트럼이 넓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선택지는 금세 단 두 가지로 압축됐다. 안드로이드를 탑재하는 S사, 그리고 IOS를 탑재하는 A 사였다. S사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가 편하고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A사는 카메라 성능에서 우위를 보였다. 카메라 관련 정보를 찾느라 인터넷에서 S사와 A사의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을 비교하는 게시물을 봤었는데 동일한 장소를 각각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은 역시나 A사의 것이 좀 더 선명했다.


선택의 우선순위는 카메라 성능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결국 A사의 스마트폰을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가장 최신에 나온 X 기종은 가격이 너무 비쌌고 그래서 바로 이전 버전인 8을 구매하기로 했다. H님의 말대로 며칠 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면밀히 살폈고, 그중 20만 원 선에 할부원가를 책정한 업체의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몇몇 게시물들은 아예 가격을 공개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방식이 조금 새로웠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업체들의 카카오톡 플러스 아이디가 표시되어 있었고, 이 계정을 친구 등록한 후 상담을 통해 구매가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친구 추가 후에는 내가 제공해야 하는 정보의 목록이 메시지를 통해 전송되었는데 그 정보는 이름이나 전화번호, 현재 사용 중인 통신사, 원하는 기종과 색상 등이었다. 그렇게 정보를 보내면 업체 측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상담이 이루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 설명 그대로 해당 업체 플러스친구 계정을 추가하고 요청된 정보를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전달했다.


개인 정보를 보내고는 하루 정도가 지났을까. 이야기된 대로 업체 측으로부터 상담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앞마당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완연한 봄 날씨에 햇살이 좋아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오후의 시간이었다.


" 네, 여보세요. "

"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조민곤 님 되시나요?"

" 네 맞습니다. "

" A사 스마트폰 8 와인색으로 상담 신청하신 것 맞으신가요?

" 네 그렇습니다. "


남자 상담사의 목소리는 언뜻 들어도 여유롭진 않았다. 보통의 텔레 마케팅이 그렇듯 마치 당신 말고도 전화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듯한 뉘앙스가 언어 뒤편에서부터 느껴졌다. 필요한 단어만 필터링되어 나오는 듯한 말투, 기관총처럼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오는 문장과 문장. 마치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것에 초점을 맞춘듯한 불친절한 경쾌함이 일방적 정보제공을 만들고 있었다. 보험 갱신 전화를 받을 때 상담사가 약관을 수화기 너머 내 귓속에 떼려 붓는 것처럼 알아듣기 어렵고 배려심 없는 정보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통신사가 어떻고 요금제가 어떻고 하는 내용이 너무 쏜살같이 지나가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뭘 물어봐야 할지 잘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인지는 알고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의 할부 원가였다.


"그래서 휴대폰 할부원금이 얼만데요? "


상담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치더니 결국 특정 계약 조건에 가장 저렴한 할부 원가가 30몇 만원이라는 말을 해왔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20만 원선의 가격을 말하며 왜 가격이 내가 본 것과 다른지를 은연중에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뻔한 답이었다. 조건이 어떻다는 둥, 요금 할인이 어떻다는 둥, 세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런 가격은 애초에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이 30몇만 원이라는 숫자가 상당히 불쾌했다. 더 정확히는 분명히 내가 봤던 정보와 다른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마치 그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한 태도가 불쾌했다. 뭐 물론 이쪽 세계가 다 그런 판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들 세상이치가 당연하다면 내가 불쾌한 것도 당연할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렇게 어긋난 정보를 제공하면서장의 구매 결정을 권유하는 듯한 뉘앙스는 불편함을 더했다. 30몇만 원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긋남이 별 것 아닌 것이라 여기는 태도가 나를 상당 수준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 생각해보시겠어요? "

" 네, 좀 생각해봐야 될 것 같은데요. "

" 네 생각해보시고 오늘 중으로 전화 주세요"


그 순간 구매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구매해야 한다는 마음을 앞서고 있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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