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 딸깍- 식탁 전등을 켜놓고 뜨거운 차를 내린다.
어제 오후, 큰아이를 혼낸 남편은 왠지 힘이 빠져버렸는지 안방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그에게 쪼르르 달려가, 아이에게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며 소리소리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테다. 하지만 이날은 내가 웬일인지 쫓아오지 않고 그저 내 할 일을 하고 있자 남편은 불안해졌나 보다.
"이리 와서 옆에 좀 누워봐."
"응." 순순히 대답하고 옆에 누워 아무 말 없이 함께 천장을 바라보았다.
"넌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
무슨 생각을 하냐니. 11년 동안 남편과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아주 신선한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 많은 사람으로 치자면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오만가지 생각을 품는 사람이고, 남편은 나로 하여금 '저 인간은 저분은 생각을 하긴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지극히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람이기에 그렇다. 남편은 늘 내가 그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산다는 걸 신기해한다. 하늘은 파랗고, 사과는 빨갛지. 그 이상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에게 생각이 많다는 건 인생이 복잡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나의 두뇌에서 풀가동되는 생각의 거미줄들은 그에게는 말해줘도 모를 복잡한 회로다. 나는 모든 과정 속의 행간의 의미와 뉘앙스가 중요하고, 그는 오로지 결론만이 중요하다. 사실 그의 그런 모습이 좋아서 결혼하기도 했다. 나의 폭풍 같은 고뇌와 우유부단함이, 그의 담백한 결단력에 한순간에 잠재워지는 일종의 스릴이 속 시원했다. 복잡한 생각이라면 질색을 하는 그런 그가, 요즘 나의 생각을 묻다니. 나는 대답했다.
"난 요즘 거의 자기 생각을 하며 살아."
말해놓고도 순간, '어우... 웬일이니' 싶은 멘트였지만, 닭살 돋게 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그랬다. 요 며칠 나의 새벽은 그의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늘 남편이 차가운 편이라고 생각했다. 표현도 잘 못하고, 일 중독이라고. 생각이 없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대체 모르겠다고. 자매만 키우며 다정스럽고 눈물 많은 딸바보 우리 아빠와는 달리, 아들들만 키우며 당신은 인생의 희로애락 중 "노"라는 감정밖에 모른다고 말씀하신 시아버님 아들이라 그런가 보다고. 끊임없이 판단하고 한탄했다. 그가 조금만 아이들에게 날을 세워도 "저 거봐 저 거봐. 큰일이야 큰일." 하며 나도 모르게 남편을 외로운 코너로 몰아가기에 민첩했다.
어제 첫째 아이가 (내가 봤을 때는 작은) 잘못을 했는데, 남편은 좀 심하다 싶게 혼을 냈다. 생각지도 못한 아빠의 반응에 오들오들 떠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 화가 불끈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라고 날카롭게 따지려다, 순간 로마서 8:1 말씀이 나를 붙잡았다. "Now the case is closed. There remains no accusing voice of condemnation against those who are joined in life-union with Jesus." 맞아. 이 일은 이미 끝난 일이지. 이미 판결이 내려진 일이지. 우리 집에는 비난하고 정죄하는 소리는 없어. 나부터 거짓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거야.
뜨거운 불길에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듯 분한 마음이 사그라지고 찡그러진 얼굴이 펴졌다. 아이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고 노력했다. "가서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하자. 이제는 안 그러겠다고 하면 용서해주실 거야." 아이는 이미 마음이 상했다. "아니야. 아빠는 날 용서 안 해줄 거야.. 아빠는 항상 그래.." 아빠는 용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미 어그러진 아빠의 모습이 마음속에 뿌리내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엄마가 같이 가줄게. 옆에서 같이 말해줄게. 아빠는 당연히 용서해주실 거니까 걱정 마." 아이가 준비가 됐다 싶을 때 아빠 앞으로 함께 갔다. 아까보다 더 부들부들 떠는 모습으로 아빠 앞에 선 아이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아빠 잘못했어요. 이제 안 그럴게요."라고 말했다. 떨고 있는 딸의 모습이 왠지 불편했던지, 남편의 입에선 자기도 모르게 "연기하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연기하냐고???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온화했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정말 입에서 불 뿜어내는 용가리가 나오는 줄 알았다). 남편도 아차- 싶은 거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온 말이라 본인도 당황한 거 같아서, 나의 들끓는 화를 다시 꾸욱 누르며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는 다시 한번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잘못했어요. 이젠 진짜 안 그럴게요."
내가 상상했던 그림은,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그래~ 이젠 그러지 마라~ 아빠는 그래도 널 사랑해."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상상을 깨고 남편은 "알았어 알았어. 별로 big deal 도 아니야. 됐어 됐어."라며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얼른 해치워하고 싶어 하는 투로 말했다 (왓?? 빅딜이 아니라고??? 아니, 아까는 빅딜이라 그렇게 화를 내놓고 이제 와서 별일 아니라고? 화낼 땐 빅딜이고, 화해할 땐 쏘쿨이냐?) 용서받는다는 게 뭔지 알게 해 줄 절호의 기회를 이렇듯 사소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아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제 진짜 용가리 봉인해제될 시간이구나. 와우, 오늘 날 잡았네- 하며 전쟁의 서막을 알리려는 찰나. 하나님은 때를 놓치지 않으시고 또 득달같이 말을 거신다.
"아들로서 용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
아들 됨이 뭔지 아직 잘 몰라서 그래.."
남편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늘 부재중이셨던 시부모님은, 관심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엄청나게 말썽을 부렸던 남편에게 굉장히 엄하셨다고 들었다. 많이 맞고 컸다고. 남자애들은 원래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 그래도 어머니께는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깊은 상처를 갖고 계신 아버님께 얼마나 많은 용납과 용서를 받아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남편을 향해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 나에게 슬쩍 귀뜸해주신 거였다.
웬일인지 지난 몇 주 동안은, 새벽에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그의 어린 시절이 그려졌다. 내가 실제로 보지는 못한 그의 어린 시절이지만 영화 장면을 보듯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졌다. 3, 4학년쯤 돼 보이는 그 남자아이는 아파트 근처 공사장 같은 곳에서 흙바람을 날리며 혼자 자전거를 타며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슉슉- 턴을 하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기도 하며 신나게, 외롭게. 자전거를 탄다. 친구들은 언제쯤 오는지, 흙먼지에 목이 칼칼하다. 혼자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집에는 아무도 없다. 시리얼 한 그릇을 대충 먹고 다시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그 장면들에는 늘 하나님이 계셨다. 혼자 친구들을 기다리며 자전거를 탈 때도 하나님은 그의 옆에서 함께 달리고 계셨다. 깜깜한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었지만, 사실은 그와 함께 TV도 보며 내내 같이 앉아계셨다. 마흔이 넘은 어른이 되어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골프를 치러 가서도, 좋은 샷이 나오면 옆에서 막 박수를 치시며 좋아하시고, 일하러 가서도 어려운 작업을 해낼 때마다 옆에서 같이 서계시며 '잘한다 잘한다' 하셨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시며, "얘가 바로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에요. 요즘 아주 수고가 많죠." 하며 어딜 가든 인사를 시키고, 소개를 시키고,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새벽에 보여주셨던 그 모습이 떠오른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누그러졌다. 용서를 빌러 온 딸아이 앞에서, 용서를 받아보지 못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버지의 모습. 용서를 해주고는 싶은데, 어떻게 하는 줄을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그의 안타까운 모습. 그래서 말이 막 헛 나오고, 왠지 쑥스러워서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해버리고 싶은, 아직도 초등학교 3학년에 머물고 있는 그 아픈 마음. 내 눈에 하나님이 무슨 안경을 씌우셨는지 몰라도,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의 그 모습이, 아니 소년의 그 마음이 보여서, 시리고 아팠다.
침대 옆자리에 누워, "넌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라는 남편의 물음에, 내가 본 장면들을 얘기할까 말까.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복잡하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잠깐 고민을 하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쩐 일인지 남편은 한참을 조용히 듣더니 말했다.
"나에 대해 긍휼 한 마음을 가져줘서.. 고마워."
추진력 좋은 남편을 늘 헉헉 거리며 쫓아가기 바쁜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사랑받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만큼 표현도 안 해주고 바쁘기만 한 남편을 보며, 나는 역시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 속도 모르겠지. 그래 나는 불쌍해.
근데 어떡하지.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남편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절대 외롭지 않았다고 버티는 그 아이가. 용서받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린 그 소년이. 용서하고 싶은데 어색하기만 한 아빠로서의 그가. 나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은데, 나도 가서 어리광 부리고 싶은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아버지에게로의 그 발걸음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그 구멍 난 마음이. 그래서 더 열심히 달려야 하고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하는 - 아들 이어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그런 남편을 두고 하나님은 내게 약속하셨다.
"I am hanging on to him tighter than he can ever hang on to me. My love for him is much greater than his need for me."
"아들이 아버지를 붙잡고 있는 것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붙잡고 있는 힘이 훨씬 더 강하단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이 훨씬 크거든. 그는 나를 아버지로, 나는 그를 내 아들로,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날 거야."
나는, 남편의 아들 됨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는 육신의 아버지에게 부리지 못했던 어리광과 장난과 사랑의 티격태격을 하나님 아버지께 부리는 시간이 올 것이다. 짜증을 내도 괜찮고,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고, 엉엉 울어도, 와락 안겨도, 다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은 용서의 바다에서 자유할 것이다.
그의 아들 됨은, 상처 많으신 우리 시아버님의 아들 됨도 회복시킬 것이다. 사람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난 우리 부부 사이에 그분의 긍휼함이 계속해서 부어지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아...
부부 사이는 상대방이 짠해지는 순간, 게임 끝이라던데..
우리.. 게임 끝난 건가.
• Soli Deo Glor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