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i Deo Gloria
지난 한주 동안 글은 매일 썼지만 포스팅을 거의 하지 못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매일 새벽 글쓰기를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생각보다 빨리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첫 2주 동안은 내가 다시 살아난 것만 같아서, 다시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새로운 엔진을 단 사람처럼 글을 써댔다. 엉망진창 고르지 못한 호흡이었지만,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며칠에 하나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아무도 마감일을 주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성실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몇 년 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했던 블로그와는 달리, 어차피 혼자 보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닌 이상 주변에 널리 널리 알리기로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서 지인들에게 오픈을 했다. 너무 속내를 드러내는 글들이라 부끄러워 매일 아침 이불 킥을 시전 했지만, 그래도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셨다. 나를 몸 둘 바 모르게 만든 그 모든 응원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얼굴을 아는 독자분들이 나의 글을 읽는다는 게... 뭐랄까, 좀.. 목욕탕에서 만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사돈의 팔촌까지 내 글을 보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글을 그만 쓸까 싶었다).
지인들은 그렇다 쳐도, 누가 내 글을 읽을지 늘 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고 배웠던 나로서는 내 글이 대중적인 독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나에게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주제였던 "정체성"에 관한 글들이다 보니, <하버드를 나온 전업주부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내 첫 이민생활, 학교생활 등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얘기들밖에 할 수 없었다. 브런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 "전문성 있는 정보의 전달"이나 뭔가 세련되고 힙한 주제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로 여겨졌다. 또 나름 많이 알려진 학교의 이름을 대문짝에 걸고 글을 쓰려니, 난 잘난 게 하나도 없는데 괜히 뭔가 부풀려져 보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고,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자꾸만 소심 해지는 것이었다.
지난 며칠을 써지지 않는 키보드 앞에 앉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누구지?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하지?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오로지 나 하나였을 때와, 구독자라는 다수가 생겼을 때,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바꿀 수 있는 variable,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브런치라는 대중적인 플랫폼에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첫 날을 기억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게 너무너무 두려워서, 글을 다 써놓고 업로드 하기까지 몇 시간을 버티고 버텼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내 안에 두려움은 나를 울기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갔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이 떨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몰라 무섭고, 이것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어서 망설여졌다. '하지 말까?' 엎으려는 찰나, 내 안에 한 가지 음성이 들였다. '네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윤승. '빛날 윤'에 '이을 승'이다.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내 이름의 의미였는데, '숨겨진 빛은 빛이 아니야.'라는 말씀으로 자꾸만 숨고 싶던 내 진심을 드러내시고 글을 올릴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쓴 첫 글) https://brunch.co.kr/@glolee/14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의 내면을 매일 들여다보며 토해내는 작업은 가장 유의미하면서도 자주 괴로운 것이었다. 미국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쭈그려 먹는 밥이 무슨 맛인지, 중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그 마음의 구멍에서는 왜 아직도 텅 빈 소리가 울리는지, 처음 이민 와서 나도 영어를 못하는데 아빠 대신 통역을 해야 했던 그 은행에서 흘린 식은땀은 아직도 왜 이리 스산한지. 이 모든 날 것의 감정들을, 잘 알고 있는 얼굴들과 앞으로도 모를 얼굴들 앞에 쏟아 놓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벌거벗는 기분이었다.
십대때 미국에 처음 와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쉬워 보이면 안 된다는 나름의 견고한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된 채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도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별로 흐트러지는 모습 없이 (나름 얼음공주 컨셉임)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렇듯 나의 글들은 내 모든 민낯을 그야말로 단숨에 "까버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엄마는 약속대로 엄마의 지인들을 "벌떼같이" 몰아다 주며 내 글을 퍼다 나르고, 엄마의 7남매인 나의 천하무적 이모 삼촌들은 나의 작가 데뷔(?)를 온 맘 다해 응원해주시며 1명당 50명에게 내 글 퍼다 나르기 운동까지 펼치고 계셨으니! 너무 감사해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내가 화장실에서 구질구질하게 밥을 먹었다는 게 저렇게까지 널리 퍼질 거라니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나 얼음공주 하고 싶다고!!).
그때 너무 좋으신 하나님은 또 말을 거신다.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다이너마이트라서 그래. 너를 향한 사랑을 그들만이 아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어. 이젠 네가 그것을 감사와 환희로 받아들이는 걸 배울 차례야. 그 따뜻한 사랑의 화분 안에서, 정말 좋은 글이라는 꽃을 펴보렴. 엄마는 너를 도와줄 때마다, 네 글을 한번 퍼다 나를 때마다, 너무 기뻐서 뛰고 있는 게 나는 보인단다. 엄마는 네가 엄마 딸이라는 게 영광 이래. 그리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야. 너는 하나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
내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 5절을 통해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한국어 성경에는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되는데, 내가 읽는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Love does not traffic in shame and disrespect, nor selfishly seek its own honor." (TPT).
"윤승아,
너는 너의 상처된 이야기들을 수치스럽게 (shameful) 하게 느낄 필요가 없어. 왜냐면 그건 내가 네 삶에 쓴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because it's done by me).
또 너는 네 글들에 대해서 우쭐하거나 스스로를 높이 여겨서도 안돼 (selfishly seeking your own honor). 왜냐면 그 또한 네가 아닌 내가 쓰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becasue it's done by me)."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물으셨다, "What is your name?"
"네? 제 이름은 윤승인데요... 전에도 물으셨잖아요."
"No, no. What is your name?"
내 미국 이름은 글로리아 Gloria 다. 열여섯에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제 곧 학교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윤승"이라는 한국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우니 급하게 미국 이름을 골라야 한다고 해서 이름 사전을 하나 샀다. 내 성이 "Lee" 니까 이름에도 뭔가 "리"소리가 들어가는 게 이름 전체를 함께 불렀을 때 예쁠 거 같았다. 그래서 이름 리스트들을 주욱 훑다가 "글로리아"를 봤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봤던 책 들 중에 "내 사랑 폴리", "초원의 제니퍼", "무슨무슨 글로리아"라고 봤던 책 제목이 떠올라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글로리아 할게요"했다. 얼마 후에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글로리아는 요즘 아무도 하지 않는 할머니 이름이었다. 우리말로 하자면 "영자"나 "혜자"느낌? 나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안 그래도 한국 이름도 맘에 안 들었는데, 미국 이름까지. 무식이 죄다, 그러면서. 그 후로도 학교에서 친구들이 "글로리아~" 하고 부르면, '아 정말 이름 바꾸고 싶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이름을 하나님이 "네 이름이 뭐니"가 아닌 영어로 "What is your name?" 하고 물으시는 거다.
그때 내 안에 생각지도 못한 한 문구가 갑자기 떠올랐는데, "Soli Deo Gloria"라는 문구였다.
교회에서 성가대가 찬양할 때 얼핏 들어보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떠오르게 하시니 바로 찾아보았더니 그 말은 "Glory to God Alone. 오직 주께만 영광."이라는 뜻이었다. "너의 이름, 너의 소명, 너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오직 나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거였단다. 나를 비출 때 나오는 그 반사적 광영만으로도 네 삶은 그 무엇보다 빛나게 될 거야.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이 너는 내 날개 밑, 내 빛 뒤에만 숨으렴. 너의 구독자는 단 한 명, 나야. 사람들을 감탄시키려 하는 글들을 잘 쓸 필요도 없고, 사람들에게 판단당할까 봐, 수치를 당할까 봐 염려할 것도 없단다. 네가 쓴 게 아니라 내가 쓴 거고, 오직 나를 위해 쓴 거라서 그래."
나는 원래 할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내 인생에 무언가 작게라도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은혜이다. 그 은혜가 아니면 혼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공갈빵 인생이다. 하지만 그런 텅 빈 나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노래를 부어주시고 살아갈 생명을 주신다.
나는 많이 읽힐 글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공감을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내 삶에 부어진 은혜에 대한 노래를 부르라면, 목청껏 열심히 부르고 싶다. 그것이 때로는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 일지라도. 수려하고 정제된 문장들이 아닐지라도. 벌거벗은 기분이 들고 많은 순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
"내 사랑하는 자야
내 사랑을 아는 자야
내 사랑을 품은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나는 오늘도 글 쓰는 게 너무 두려웠지만, 그분의 따뜻한 초대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 노래가 아닌 나를 통한 그분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만이 부를 수 있는 그분의 노래다.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루틴을 정하고 훈련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분들과 소통한다는 게 뭔지 배우고 있다. 보물 같은 경험이다. 하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가장 큰 배움은,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내게 부어지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기뻐하고 환희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앞으로도 널리 널리 퍼트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찾는 글쓰기>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나로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신 단 한 분의 구독자에게 집중하며,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닌 살아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
그 살아있는 글이 어쩌면 살려내는 글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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