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엇을 해야 만족스러운 딸이 될까요
며칠 전 브런치 작가로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온 이후 한국어로 문어체의 글쓰기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딱딱한 academic writing 외에) 내 속내를 쏟아 낸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 준 적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 본 적도 없어서, 늘 어디 내놓기엔 쑥스럽고 모자란 글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난 5년간은 그야말로 전업주부(라 쓰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없는"으로 읽는다)로 살면서, 진득한 글을 쓸 마음의 여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가히 오랜만의 이"합격"이라는 소식은 나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사실 작가로 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3주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새벽이 아니면 내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워낙 잠이 많고 저혈압이라 아침에는 좀비가 따로 없는 내가, 쓰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매일 새벽어둠을 밝히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 시간씩 글 쓰는 연습과 글 근육을 다지는 훈련을 했던 터라, 어느 누구의 축하보다도, '이윤승 너 아직 살아있구나'라고 나 스스로에게 해주는 인정이 제일 달콤했다.
지난 몇 년간, 오직 스스로에게만 허락된 글쓰기에 익숙해져 다른 이들에게 나의 글을 알린다는 것이 처음에는 몹시 주저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닌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새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알리기도 하고 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축하와 축복 속에, 한국에 계신 아빠의 댓글이 가장 기뻤다. "우리 딸이 올리는 글은 한자도 놓치지 않고 읽는 아빠가 됐다." 그걸로 되었다 싶었다.
아빠의 댓글 다음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쁨으로 격양된 엄마의 첫마디는 이랬다. "네 그 재능이 다 어디서 왔겠니? 다 엄마 닮아서 그런 거지~ 엄마에 대한 글도 써줄 거지?" 아이처럼 마냥 신나하고 설레어하던 엄마의 목소리에서, 좀 창피해도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구독자들을 "벌떼같이" 몰아다 줄 거라며, 어디다 홍보를 하면 되나며, 정말 어쩜 그렇게 딱 우리 엄마스러운 얘기를 하시는지. 사실 좀 난처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아름답고 미화된 얘기들만 쓸 생각이 전혀 없는데.. 엄마의 온갖 지인들이 내 적나라한 글들을 봤다간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지?
몇 분 정도 이어진 통화의 말미에 엄마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툭 던지셨다.
"작가만 할 건 아니지?"
순간 머리가 띵 했지만 웃으며 통화를 끊고,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다. 엄마에게 나라는 존재는 엄마의 못 다 이룬 원대한 꿈이니까. 나는 엄마가 평생 가보지 못했던 세계니까. 그 누구보다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어 주는 엄마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니까.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의 꿈이다"라는 전제의 무게는 늘 나로 하여금, '나는 뭔가가 꼭 되어야만 해'라는 눌림으로 귀결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런 엄마의 기대치에 꽤나 부응하는 학벌을 가졌다. 하지만 목적이 없이 번듯하기만 한 학벌은, 내 진짜 이름은 빠지고 세상이 주는 명찰들로만 가득한 부끄러운 가슴팍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 명찰들을 줄줄이 달고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는 딸이라니. 엄마의 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며칠 전 <이름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 되찾기>라는 글을, 내 브런치의 첫 글로 발행했다. 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인 <정체성>에 대한 글로, 내가 앞으로 쓸 글들의 포문을 여는 가장 집약적이고 상징적인 글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glolee/14
"작가만 할 건 아니지?"라는 말은 "응 잘했네. 근데 그게 다니?"라는 말로 들렸다. 그 수많은 "이름들"을 향한 나의 향방 없는 질주의 기억들이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 들었다. 낫고 싶어서 이제 막 수술을 하려고 벌려진 생 살 위에 소금이 뿌려지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의 희생은 늘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했고, 엄마 아빠의 사이가 소원한 것도 나 때문에 오래 떨어져 살아서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삶은 늘 그에 보답하는 "결과물"을 내는 삶이어야 했다. 나는 이 이름에서 저 이름으로, 이 성취에서 저 성취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늘 허덕거렸다. 하지만 무엇을 해도 별로 만족시키는 것 같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 안에는 늘 "근데 그게 다니? 뭐 더 없니?"라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 모든 소리들이 허구라고 해도, "작가만 할 건 아니지?"라고 했을 때 내 안에 와르르- 하고 무너진 것은 그 어느 소리보다 실제였다.
한참을 엉엉 울었다. 마침 아이들이 방에서 영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마음 놓고 소리 내어 그야말로 통곡을 했다. 그렇게 새벽마다 정성을 들여 입성한 브런치에 더 이상은 글을 못쓰겠다는, 지나치게 오버스러운 결론을 내며 말이다(내가 이렇게나 드라마틱하다. 역시 예술가가 체질이다).
나는 무엇이 더 되어야 할까.
내가 왜 무엇이 더 되어야 할까.
나는 이제야 내가 되고 있는데.
그걸론 부족한 걸까?
새벽마다 글쓰기 전에 필사하는 성경의 한 구절. "Faith brings our hope into reality." 오늘 새벽은 특별히 더 매달리게 된다. 하나님, 제 reality가 뭐예요? 제가 바라봐야 할 그 실상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너는 내 자녀야.
You belong to me."
(에베소서 4:24 TPT)
내가 무엇이 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한 것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속해있다. 우리의 과거에.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지나간 상처에. 이름뿐인 직업에. 뒤틀려진 관계성 속에. 그 종속이 오늘의 나를 빚어 나간다.
I know who I am because I know whose I am.*
"내 딸이 된 걸로 너는 충분해.
너는 고아가 아니고, 내 딸이야.
그래서 다 할 수 있어. 그게 너의 reality 이야."
나는 오늘도 내가 속할 곳을 선택한다.
나는 자녀. 나는 딸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나는 오늘 엄마가 내 글을 읽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쩔 땐 나의 이런 솔직함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엄마는 이제 마음이 약해지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뭐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큰 딸 (=나) 때문에 엄마는 늘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한다. 지금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엄마가 걱정이다. "엄마에 대한 글도 써줄 거지?" 라며 마냥 신나하고 설레어하던 엄마였는데, 그저 한 순간의 말실수로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다니. 나쁜 년이다.
엄마는 어제도 몇 편 올리지도 않은 내 글들을 읽고 울면서 전화를 했다. 아빠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는데. 내 글이 감동적이어서 운 건지, 지난 아픈 기억을 굳이 끄집어내서 울린 건지 좀 혼란스러웠다. 하여튼 우리 집 사람들은 너무 잘 운다.
엄마는 너무 울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글이 너를 치유하고, 엄마를 치유하고, 우리 온 가족을 치유하게 될 거라고 믿어. 내가 늘 쓰고 싶었던 글을, 네가 대신 써줘서 너무 고마워. 너의 글을 정말 응원한다!" 참 좋은 엄마다.
누군가 나보다 더 큰 꿈을 꿔주고, 그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다는 건 분명 둘도 없는 축복이다. 하지만 나를 나로서 받아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축복해준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은혜이고 새로운 멋진 항해의 시작일 것이다.
늘 내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책을 한 권 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럴만한 스토리와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낸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에 대한 첫 글이, 이렇게 우리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낸 글이라 참 미안하다. 하지만 이 민낯도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울림이 될 거라 믿는다. 정직한 글만이 힘 있는 글이라고 믿는 나에게, 다음번 엄마에 대한 글은 더 많은 애정과 깊은 존경을 담아 올려볼 것을 약속한다 (알았지 엄마?)
*Dante Bowe의 <Champion> 가사 중 일부.
• Soli Deo Glor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