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승 Mar 27. 2021

반찬통들이 자꾸 말을 건다

상실감의 확장에 대하여



하루에 꼭 한번, 빠짐없이 전송돼 오는 카톡 메시지가 있다. 한국에 계신 엄마의 카톡이다. 엄마는 하루 중 감사했던 일들을 5개씩 뽑아 보내오신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가 떨어져 산 큰 딸은 힘들어도 절대 말 안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끝나고 나서야 "사실은 이런이런 일이 있었어. 근데 이제는 다 해결됐어, 괜찮아."라고 통보하듯 말하니, 엄마는 그것이 늘 못내 서운하셨다. 떨어져 산 세월이 22년인데, 이제 와서 서로의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게 어색할 테니, 묘책으로 내놓으신 게 매일 서로의 감사 리스트 나누기였다. 엄마가 5개씩 매일 나누면 나도 5개씩 나눠야 한다는, 나름 귀엽고, 나에게는 전혀 적응 안 되는 엄마의 플랜이었다. 그저 생사확인으로 싱겁게 끝났던 안부전화 대신, 매일매일 엄마의 일상들을 엿볼 수 있으니 재미있고 감사했다. 하지만 나의 지루한 일상을 리스트업 해서 숙제하듯 업데이트하는 것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엄마의 카톡에는 거의 늘 답을 못했지만, 대신 이 브런치를 시작했다. 엄마 보라고. 엄마 딸은 사실, 이렇게 살고 있다고.





사실 그랬다. 친구들에게는 잘도 재잘재잘 털어놓는 나의 근황을, 유독 엄마 아빠에게만은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아니, 엄마가 내 삶에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았다. 누구보다 해결사 본능이 강한 엄마에게, 내 삶만큼은 해결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철벽을 치고 있었다. 그것이 엄마에게 어떤 소외감으로 다가왔을지는, 짐작했지만 모른척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고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넌 혼자야'

'결국 혼자 해야 돼'

'어차피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그 고아의 목소리는 참 오랫동안 하나님과 나의 관계도 어그러트려 놓았다.

'네 하나님, 그럼요 믿지요.' (하지만 결국 제가 해야 되잖아요)

'네 하나님, 뜻대로 해주세요.' (하지만 저도 제 살길은 마련해야겠지요)


이렇듯 뒤틀린 딸. 아니, 자처한 고아의 모습으로 친구에게는 허락되지만 부모에겐 허락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엄마가 보내는 감사 제목들 중에는, 내 여동생의 아이들인 쌍둥이 조카들 이야기가 많다. 주일이면 함께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쌍둥이들과 백화점에서 식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쌍둥이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진짜 옹졸한 간장종지라고 불려도 할 말 없지만, 나는 그 제목들을 볼 때마다, 심장이 찌릿찌릿 저며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국에 사는 나와 내 아이들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엄마 아빠를 못 만난다. 그런 우리를 대신해서 5분 거리에 사는 동생네와 조카들 덕분에, 엄마 아빠가 적적함을 달랠 수 있고, 잠시라도 근심을 잃고 웃을 수 있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러다가도 우리 아이들은 설날과 추석 때도 와글와글 대가족 속에서 이모 삼촌들에게 이쁨 받는다는 게 뭔지 평생 모르며 살 테고, 지나가다 배고프면 대문 벌컥 열어젖히고, "할머니~ 밥 주세요!" 한번 해보지 못할 것이 미안했다.


실제로 지난여름 한국에 가서 본 엄마의 모습은 내 안의 그런 상실감을 확대시키기에 충분했다. 밤에 아기들이 잠을 못 이룬다고 힘들다는 동생의 전화가 오면, 오밤중에라도 자다가 달려가서 애들을 등에 업고 밖을 돌아다니는 엄마. 한국은 반찬집도 많고 배달도 잘 되는데, 늘 장 볼 때마다 동생네 집 장까지 같이 봐서 그 집 냉장고를 꽉꽉 채워주는 엄마. 애들이 아프다고 하면 바람처럼 달려가서 소아과 예약을 잡아놓고 모든 짐을 들어주는 아빠.


미국에서 혼자 애들 키우고 살면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키만큼 쌓인 눈길을 뚫고, 애들 둘을 들쳐업고 병원을 간다. 마켓에 한번 가면, 카트 속에 앉아서 난리 치는 애 한 명, 옆에 매달려서 흔드는 애 한 명, 한 달치 먹을 식량을 산처럼 넣어놓고 한꺼번에 밀면서 무슨 곡예 하듯 장을 본다. 내가 아프면 부를 사람도 없고, 모든 게 마비되기 때문에 절대 아플 수 없다. 절대 아플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진짜 절대 안 아프다. 절대 안 아파서 절대 서글프다. 불쌍하기로 마음먹으면 끝도 없다. 내 안의 고아가, 악을 악을 쓴다.


한국에서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모든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한국에 살았으면, 엄마 아빠도 나한테 저렇게 똑같이 해줬을 텐데. 그게 엄마 아빠 잘못은 아니잖아. 그게 동생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잖아. 근데 너 왜 그래. 너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니. 나 스스로가 진짜 맘에 안 드는 순간, 동생이 지나가듯 푸념하는 식으로 "아휴- 힘들다" 한마디 했다.


"외국에선 쌍둥이 엄마들도 다 혼자 하고 살아. 넌 집에 입주도우미도 있고, 엄마 아빠도 지척에 사시는데. 이 정도면 천국이지 뭐가 힘들어" 하고 나는 쏘아 붙였다.


하아.. 정말 나란 인간. 못돼 처먹었다 싶으면서도, 꼭 그렇게 한마디 모질게 해야 지난날의 내가 덜 억울할 거 같았다. 그렇게 내 안에 고아가, 악을 악을 쓴다.




지난달에는 저녁 준비를 하며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한국은 구정이라 겉절이를 담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돌리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겉절이는 나한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음식이다. 유난히 김치를 못 먹던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의 겉절이만큼은 두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맛있게도 먹었다. 커다란 빨간 "다라이"에 싱싱한 배추를 넣고, 잣, 생굴, 생밤을 넣어 버무리는 엄마 옆에 같이 쪼그라고 앉아, 엄마가 한입 크기로 배추를 쭈욱 잘라주면 그걸 아기새처럼 받아먹던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하시느라 늘 바쁘셨다. 그래도 김장날 만큼은 집에 계시며, 부엌에 앉아 절인 배추 속을 버무리고 있는 엄마 옆에 같이 쪼그리고 있으면, 뭔가 우리도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 나오는 순박한 가족들처럼 평범하고 따뜻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며 안도감이 들곤 했다.



그런 겉절이를, 미국에 사는 "나만" 먹을 수가 없다. 겉절이는 해서 바로 먹어야 맛있는 김치이므로 택배로 받아볼 수도 없는데, 결국 또 이렇게 "나만" 못 먹는다며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늘 입을 벌려 잡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자기 연민의 덫 안으로, 나는 기꺼이 기어 들어간다.


한껏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저녁 준비를 마저 하는데, 남편이 웬 꾸러미를 한 아름 안고 집에 들어온다. "이거, 자기 먹으라고 주셨어!" 그 안에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섞박지, 겉절이(!), 아이들을 위한 하얀 물김치까지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아찌, 무청 조림, 고추무침, 무생채, 김치찌개, 닭볶음탕...


'윤승!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키운 무 나눠먹으려고. 내 김치는 양념이 많아서 약간 텁텁하지만. 이건 무 섞박지야. 무를 작게 썰어서 아직 약간 덜 익었으니, 신 것 좋아하면 꺼내놓고 먹으면 돼.'


'닭볶음탕은 20분 정도 끓이면, 감자가 익으면 닭고기도 익었을 거 같아. 양념된 거라 한 번씩 뒤집어 주면 좋음."


'백김치 처음 해 봤는데 아이들 먹으라구.'


'무청이 몸에 좋다고 하니 한번 먹어보라구. 너무 오래 졸였나 봐. 좀 질기니 약이라 생각하고.'


반찬통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에게 말을 건다. 나 울지 말라고. 이거 먹고 힘내라고. 넌 혼자가 아니라고.


잊을만 하면 또 띵동- 벨이 울린다. 나에게 말을 거는 반찬들이 또 한가득이다.


근 몇 달에 걸쳐, 이런 기적들이 내 삶에 계속 이어졌다. 우리 집 둘째가 뉴저지에서 만든 손만두를 잘 먹는데, '그 만두를 좀 먹이고 싶다' 생각을 하면, (진짜 거짓말 아니고) 바로 그다음 날, 어떻게 알았는지 그 먼 뉴저지에서 누가 그 만두를 딱 사다 전해 주셨다 (S언니 고마워요 ㅠㅠ). 만두만 온 게 아니라 불고기랑 견과류 멸치볶음까지 따라왔다.


'오랜만에 육개장이 먹고 싶다' (육개장 할 줄 모름. 기본적으로 음식을 잘 못함)하면, 며칠 후 육개장이 한 솥 가득 배달됐다. '탕수육이 먹고 싶네...' 하면 탕수육이 오는 거다! '한국 깨로 깨끗하게 만든 거니까 아이들 비빔밥 먹을 때' 먹으라는 쪽지까지 붙은 고소한 참기름과,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에는 다 담지도 못한 감자탕, 닭갈비, 곰국, 나물무침, 생선조림... 보스턴에선 금은보화나 다름 없는 음식들이 흘러 들어왔다.




자꾸 이렇게 거짓말같이 김치와 반찬들이 쉬지 않고 와서 내게 말을 건다. 엄마가 옆에서 말해주듯, '이건 이렇게 먹어' '이건 좀 익혔다 먹어' '아이들은 잘 있지? 이건 애들 먹여.' 이쯤 되면, 이건 내 마음의 소리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고아? 넌 감사한 줄도 모르는구나.'

'넌 언니가 돼서 왜 그러니? 언제 바뀔래? 넌 또 그 소리니? 그만 좀 해라.'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넌 고아가 아니야.

이거 먹어, 아가.

많이 먹어. 또 뭐 해다 줄까? 하신다.


하나님은 나에게 변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착해지라고도, 감사하라고도 하지 않으신다. 그냥 자꾸 뭘 먹이신다. 아기 이유식 먹이듯이, 배고픈 아이 새 밥 지어주시듯이, 뭘 자꾸만 자꾸만 먹여 주신다.


'하나님 저는요, 잘하는 음식도 없고 밥하는 것도 아직도 너무 힘들어요. 제가 요리를 잘 못하니까 우리 애들도 쑥쑥 못 크는 거 같아요.' 그러면 '걱정 마. 내가 다 차려줄게, 일단 너부터 어여 먹어.' 하신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러실까.

내가 딸이기 때문이다.

내 아빠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있다. 그 상실감은 몸안에 있는 담즙 주머니와도 같아서, 자꾸만 쓴 물을 뱉어낸다. 그 쓴 물은 자꾸 나에게 있는 것 말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확대시킨다. "엄마가 동생은 다 챙겨주는데, 너는 혼자다. 그지? 진짜 억울하겠다. 다 빼앗긴 거 같지 않아?" "넌 고아야. 결국 너는 혼자 살아남아야 될걸? 그래. 차라리 그게 강한 거야. 누가 네 맘을 알겠어?" 계속해서 나에게 거짓을 속삭인다. 그 거짓말들은 나로 하여금 채권 의식을 갖게 한다. 그들이 나에게 갚을 게 있다는 빚쟁이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빚쟁이의 마음이 자리 잡는 순간, 은혜에 빚진 자의 마음은 설 자리를 잃는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 거짓된 빚쟁이의 마음을 하나님은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 대신 조용히, 묵묵히, 그러나 끊임없이. 쉴 새 없이 말을 거는 반찬통들을 보내신다. '이거 먹고 힘내. 그리고 혹시 마음이 좀 불러지면 기억해 주겠니? 나는 너의 모든 것이 고마워. 네가 내게 와준 것이 고마워.' 나의 가장 큰 채권자이신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진 빚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 않으신다. 내가 빚진 자라는 사실까지도 망각하게 만드신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이다.


쓴 물이 나오던 그곳에서, 드디어 감사의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온 삶을 빚져 놓고도, 모르는 척 고고한 빚쟁이로 살았던 나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배부르게 먹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내가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반찬을 만들 때마다 생각해서 보내주시는 그 천사들의 손길과 마음들이 사무치게 감사하다. 그렇게 나로부터 모진 말을 듣고 매번 찬바람을 쌩쌩 맞아도, '내 언니'라고 불러주는 내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고 감사하다. 지금도 이 글을 읽으며 울고 계실게 뻔한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말로는 형용 못할 사랑과 모든 생을 바친 감사를 드린다.


"Only goodness and tender love pursue me all the days of my life" (Psalm 23:6)



배가 부르다. 너무 배가 불러서 눈물이 난다.





• Soli Deo Gloria •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만 할 건 아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