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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Nov 05. 2021

나는 따뜻한 사람에게 질투가 난다


어릴 때부터 내가 가재미 눈을 뜨고 지켜보는 아이들은 따로 있었다.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 좋은 책가방이 있는 애, 부잣집에 살거나 예쁘고 인기 많은 애들은 가끔 부럽기는 해도 질투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내 곁눈질의 대상은 바로 옆에만 가도 따뜻해지는 애. 잘 웃는 애. 꼭 뒤에 남아서 누군가를 챙기거나 선뜻 자기 것을 양보하는 애였다. 난 그런 사심 없는 애들만 보면 짜증이 났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봄날 같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회 때 요이-땅! 달리기를 하면 결승점만 바라보느라 뒤에 넘어진 친구를 돌아보기에는 늘 마음보다 발이 빨랐다. 그래서 그런 봄날 같은 애들을 보면 서릿발 같은 질투가 밀려왔다. 그것은 노력한다고, 일등 한다고, 밤을 새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종류의 질투를 항시 유발하는 아이가 나와  지붕 아래 살고 있었다. 바로  여동생이다. 나는 야망에 불타 밤새 연설문을 써가야 겨우 부반장이나 미화부장 "따위" 하는데,  아이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선생님한테 이쁨 받는 것도, 야무진 것도 아닌데  주변에 친구들이 몰렸고, 반장선거에 나가려고  것도 아닌데 그냥 반장을 달고 무심히 집에 왔다. 내가 질투가 났던   아이가 반장이 되서가 아니라,   아이가 반장이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옆에는  특수반 친구가 앉아 있었다. 밥을 흘리며 먹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방해가 되기도 했을  친구와 그의 엄마는  우리 엄마를 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고작 만 세 살이었지만 동생이 태어나 처음 집에 온 장면을 기억한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불이 꺼진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때때로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의 나오는 <카이>처럼 내 눈과 마음에도 모든 것을 차갑게 보게 만드는 사악한 거울 조각이 박힌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때부터 실제로 집안에서건 외갓집에서건 나는 "얼음공주"라고 불리었다.


그 아이가 날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도 질투가 났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나의 행복을 빌어주고 나의 생활을 응원해준다는 것이. 그리고 나는 아무리 용을 써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심장이 녹아내릴 만큼 질투가 났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마음이 넓은 건 내 대신 엄마의 사랑을 네가 다 받았기 때문이야. 나는 너 때문에 그 사랑을 다 잃어버렸으니까 내가 이렇게 옹졸하고 못된 건 어쩌면 다 네 잘못일지도 몰라.' 라며 뻔뻔히도 스스로를 자위했다. 그러다가도 누가 동생을 괴롭힌다고 하면 제일 먼저 눈이 뒤집혀 달려가는 이 관계는 대체 뭐란 말인가.


동생을 향한 내 마음속 얼음은 깨지지 않고 클수록 견고해졌다. 친정에서나 외갓집에서는 얼음공주로 불리었는데, 신기하게도 밖에서는 아무도 나를 차갑게 보지 않았다. 일부러 따뜻한 척하려고 한건 아닌데, 오히려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상처를 들어내도 나를 받아들여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따뜻하다고 여겨주었다. 그런 내 모습에 동생은 내가 위선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아이 앞에만 서면 진심은 그렇지 않은데 왜 자꾸 위악을 떨게 되는지 괴로웠다.


동생과 나는 이제 불혹을 바라보며 두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는 실제 태평양을 사이에 둔 만큼이나 아득히 멀어졌다. 나는 동생을 마주할 때마다 드러나는 내 밑바닥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고, 동생은 그런 나를 점점 포기해갔다. 동생네 가족이 보스턴의 우리 집에 와있던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나는 소원해진 우리 관계에 대해 이제는 풀어야 할 것 같아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결국은 유치하게도 내가 서운했던 것, 내가 힘들었던 것 - 한마디로 "네 잘못은 아니지만 니가 착해 빠져서 난 너무너무 힘들어!!"라고 털어놓은 나의 쓰레기 같은 속내에도 그 아이는 담담했다. "그랬구나, 언니. 난 진짜 몰랐어. 정말 미안해." 모나지 않은 그 아이의 마음에 나는 또 무너지고. 샘이 나고. 그러다가 봄눈 녹 듯 하릴없이 녹아버렸다. 왜 이 아이는 "니가 그러고도 언니냐?"라고 받아치지 않는 걸까. 왜 이 아이는 나에게 없는 단 하나를 갖고 있을까.


동생의 한국 귀국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이 몇 년 만의 해빙解氷은 나에게는 질투를 넘어선 새로운 수평선이 돼주었다. "음... 내일.. 가지 말고.. 몇 주 더... 있다... 가지?" 눈도 안 마주치고 창 밖을 바라보며 무심한 듯 툭 던진 (그러나 몇 번이나 고민하다 겨우겨우 말한) 나의 부탁에 그 아이는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그리고 동생은 이제까지 내가 곁을 주지 않아 털어놓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에게 왜 이유모를 눈흘김을 받아야 하는지 어리둥절하면서도 그 힘든 유학생활중 누군가 자기한테 나쁘게라도 할라치면 득달같이 쫓아와 대신 요절을 내주는 언니가 엄마 같았다고. 자기는 사람들이 다 착하다고 하지만 그 착하다는 이유 때문에 거절 못하고 반대 못해서 이렇게 많은 짐을 지고 사는데, 언니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자기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휘둘리지 않으며 사는 게 부러웠다고. 그 부러움의 간극이 너무 커서 질투조차 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그런데 이제는. 서로 이해하며 더 잘해보고 싶다고. 그 아이의 특유의 그 곰순이 같은 웃음을 배시시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얼마나 좋아? 앞으론 이렇게 잘 지내면 좋겠다. 그치, 언니?"


공항에서 그 아이를 보내며 머뭇머뭇거리다 서로 고등학생 때 이후로는 해보지 않았던 진한 포옹을 했다. 오래도록 등을 쓸고 토닥이며 말했다. "그동안. 정말 미안해...." 혈육이란 결국 이런 걸까. 남이라면 안 보면 그만일 사이일 텐데,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지만 다시 끌어안으니 거짓말처럼 지난 아픔이 아스라지고 흔적도 없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엉엉 우는데, '잘했어, 정말 잘했어.' 한 음성이 들린다. 질투에서, 미움에서 풀려난 후련함이 이런 걸까. 마음의 감옥에서 출소한 가을날이었다.





• Soli Deo Gl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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