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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Dec 15. 2018

베트남은 지금, 축구 열풍

오늘 박항서의 베트남은 스즈키컵 우승국이 될지도 모른다

올해 2월 베트남이라는 국가에 출장으로 처음 방문했고, 이번 달에 다시 한 번 오게 되었다. 1년에 두 번이나 한 국가, 그것도 같은 도시 호치민에 방문하는게 흔한 일은 아니다. 갑작스레 잡힌 출장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베트남이라는 국가를, 호치민이라는 시티를, 베트남 지사를 포함한 현지인들을 더 이해해야 했다.  


호치민으로 향하는 심야 비행기 안에서 내가 아는 베트남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축구 열풍, 한국의 2배쯤 되는 9600만명의 인구, 국가 평균연령 30세, 6.8%대의 경쟁성장률, 호치민과 하노이의 도시 차이(미디어 에이전시가 더 많은 남쪽 호치민, 정부기관이 많은 북쪽 하노이, 역사와 정치 차이. 무슨 차이인지는 구체적으로 모름), 휴양지 다낭, 쌀국수와 분짜, 반쎄오와 신또, 오토바이, 대기오염, 신호등이 없는 차도, 공휴일이 상대적으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적음,  미백에 관심이 많음, 항공권을 오프라인에서도 구매함, 셀럽과 인플루언서의 경계가 크지 않음, 공휴일이 상대적으로 타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적음.


이런 파편적인 정보가 전부다. 일을 하다보면 동남아시아를 비롯해서 베트남이라는 국가에 대해 파편적인 정보도 갖지 못한 한국인과 진출 기업들이 많고, 관련 일을 하는 나 또한 부족함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당장 눈 앞의 업무 해결에 지쳐 의문 제기를 막아 두었던 호기심을 살리고, 베트남에 대해 1주일동안 꼬리물기로 들여다봤다. 



베트남의 축구 열풍 들여다보기


2018년 12월 베트남은 축구로 가득차 있다.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라 불리우는 아세안 축구 선수권 대회, 스즈키 컵 (자동차/오토바이 제조 회사 스즈키가 2008년부터 대회의 공식 스폰서)이 진행 중이고 베트남이 사상 초유의 실적으로 8강, 4강, 준결승을 모두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스즈키컵은 결승은 오늘 저녁 9시 30분, 한국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지상파 생중계된다. 박항서 감독이 사령탑인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우승국이 될 가능성이 커 한국 축구팬들의 관심도 크다. 


결승 2차전을 앞둔 12월 15일, 지금까지의 스즈키컵 경기 전


운이 좋게도 베트남 출장기간인 12월 2일~ 7일동안 준결승전을 현지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베트남 지사 동료들은 사람들이 많이 흥분해있고 무법자 같을테니 너무 번화한 곳에는 나가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아시아에서 축구하면 한국이고 친오빠와 새벽 EPL 경기를 자주 보고 지난 달에는 바르셀로나 캄프 누에서 엘 클라시코까지 보고온 나로서는 호텔에서 이 경기를 볼 순 없었다! 


12월 5일 저녁, 업무를 마치고 1군 시청 광장에 나가자 대형 전광판이 2개나 설치되어 있고 많은 오토바이들이 군집해있었다. 베트남 경기는 내일이라 그랬는데 왜지? 베트남인들은 결승에서 만날 지도 모르는 상대 국가 (말레이시아 vs 태국)의 경기까지 시청 광장에 모여 보고 있었다. 물론 바닥이 아닌 도로 위 오토바이 위에서! 


12월 5일, 경쟁국인 말레이시아 vs  태국의 4강전을 오토바이에서 지켜보는 호치민 시민들


종료 1분 전 태국이 결승 티켓과도 같은 패널티킥을 얻어냈지만 정말 말도 안되게 공이 골대 위로 뜨는 실축 킥으로 말레이시아가 승리했다. 이번 스즈키컵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태국(동남아시아 국가 랭킹 1위)가 마지막 순간 패배하자 베트남 인들을 상대적인 약한 말레이시아와 싸우게 되기에 환호를 질렀다. 


자국 경기가 있을 때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베트남 국기'다.


베트남 국기와 오토바이로 가득찬 도로, 사람들은 하루종일 도로에서 함께 대회를 즐긴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낮부터 도시는 빨강색과 노랑색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색감이 너무 또렷해 귀엽기도 하고, 쳐다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와 마치 '오늘도 우리가 이길거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 오간다. 


경기에 승리하면 밤까지 도로는 베트남 국기를 매단 오토바이로 가득 차고 경적과 엔진 소리를 내며 도로 위에서 밤 내내 승리를 만끽한다. 


12월 6일, 호치민 중심지인 1군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축구 경기를 보는 시민들


사실 경기를 지켜보며 한국의 프로 리그보다도 현저히 떨어지는 실력과 말도 안되는 실축, 패스 미스에 중간중간 답답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느껴지는 건 작은 체구의 축구 선수들을 정말 죽어라 뛴다. 실력은 아직 너무나 부족하나 정신력 하나로 끝까지 경기를 끌고 간다. 후반전에 체력이 이미 고갈된게 보이고 패스 미스도 늘어나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지사 동료가 베트남인들은 골을 먹히는 건 괜찮아도 조금이라도 포기하거나 대충 하는 모습이 보이면 화를 낸다는 말이 실감났다. 


축제와 공휴일이 많지 않은 나라에 수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축구 신화는 최고의 여가다.

 

12월 6일, 4강 2차전에서 필리핀을 4-2로 꺾고 도로는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인 감독, 박항서가 있었다. 


2017년 10월 25일, 박항서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이후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축구 신화를 갱신하고 있다. 올해 1월 아시아 23세 이하 (U-23) 챔피언십 준우승에 이어, 8월에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4강에 올랐다. 동남아 축구 약체 베트남이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꺾었고, 16강에서 바레인을 제압한데 이어 시리아를 누르고 달성한 기적이어서 베트남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12월 스즈키컵 결승까지 '박항서 매직'은 계속되고 있으니 어찌 축구 열풍이 없을 수 있을까! 


베트남인들은 정이 많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에서 감정이 중요하다.


베트남 현지 캠페인 진행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면 잦은 상황 변동, 데드라인 미준수, 형식 수정으로 한국 업무 기준으로서는 이해가 안되고 답답한 순간이 정말 많다. 하지만 답답해서 왜 그러냐고 화를 내기보다 미리 논의하지 않은 변동들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문제인지 한 번 제대로 설명하는데 시간을 쓰고,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는 걸 알지만 일일이 지적하고 해결책으로 요청하는 상황이 한국 지사에게도 정말 큰 스트레스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라고  (진심으로 서로 잘해서 칭찬하는 분위기를 원하지 베트남 지사를 혼낼 때 혼내는 입장이 안타깝고 고통스럽다고) 자세히 설명해주면 상황이 조금 개선된다. 


이번 일주일의 출장 기간동안에도 한국 업무 문화와 베트남 업무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이야기 나누고, 서로 반드시 지켜야하는 불문율을 정하기 앞서 설명하고, 변동에는 항상 대안/해결책을 같이 제시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 가장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이성적이고 엄격하기보다는 더 여유롭고 감성적인 베트남 지사 동료에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너와 나는 대등한 동료고 업무량이 많은 회사이기에 지시와 보고, 약속 준수는 최선을 다해 너의 업무를 개선해주기 위함임을 솔직하게 말한 게 개선의 포인트였던 것 같다.  


박항서 감독은 이러한 베트남 인들의 감정을 움직였.


사진 출처: 베트남 '징'


성과도 성과지만, 1년동안 박항서 감독은 과정을 통해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감독석 벤치에서 앉지 못하고 서서 그 누구보다 경기 결과에 흥분하고, 기뻐하고, 안타까워하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신체 접촉을 잊지 않는다. 


경기에서 부상한 선수에게 '잊어서 미안해'라는 말과 자신의 비즈니스 항공 좌석을 양보하고, 패배에는 국민들을 실망시켜 미안하다고 말하며 외국인 감독이 경기 승패에 눈물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언론 플레이의 힘이 더해졌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이 먼저였다. 


현지에서 중계를 듣다보면 5분마다 한번씩 바캉서 바캉서가 들린다. 알아듣기 힘든 베트남어 속에서 이 단어만큼은 또렷히 들리고 반가운 동시에 바캉서가 언급되면 환호하는 베트남인들이 귀여웠다. 히딩크 감독이라는 너무나 친숙한 외국인 감독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2002월드컵 세대로서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출장에서 복귀해도 베트남 축구 열풍은 베트남, 한국 지사의 화두다. 


출장 이후에도 베트남 축구 열풍은 단톡방의 화두


12월 11일 말레이시아의 결승전은 한국에서 카카오 생중계로 보았는데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가 '베트남 말레이시아 축구중계' 인게 신기해서 캡쳐해 공유했다. 한국인들의 큰 관심에 베트남 동료들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여기에 오늘 최종 결승전은 SBS 지상파 생중계 (3시간 후!)가 되고 우승국은 내년 3월 26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파울루 벤투 감독)과 2019 AFF-EAFF 챔피언스 트로피' 경기를 치른다는 기사도 떴다. 



오늘 말레이시아를 0-0, 1-1로 비겨도 베트남이 우승하게 되는 스즈키컵,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만큼 국민들의 기대감이 최고조인데 바로 지난 주 인연을 맺은 베트남을 응원해본다. 




글을 쓰고 3시간 후 베트남은 1-0으로 말레이시아를 이기고 스즈키컵을 우승했다. 



베트남에는 축제의 밤, 한국에는 흐뭇한 미소의 밤이었다. “축구 지도자라는 조그마한 역할이 조국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영광스럽다. 대한민국 국민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겸손하게 덧붙였던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그리고 한국의 2019년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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