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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Jun 02. 2019

바르셀로나의 전망 포인트

자연, 자유, 발 디딤 그리고 헤아림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하는 걸 좋아한다. 빽빽한 고층건물로 시야가 가려진 도심보다 눈 앞에 막힘이 없는 근교에서 여행의 이유를 찾곤 한다.  


작년 1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도 그랬다. 

축구, 가우디 건축물, 날씨와 음식 못지않게 좋았던 건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만난 전망이었다.


전망을 정의해보자면 자연, 자유, 발 디딛고 선 땅, 헤아림이 떠오른다. 바르셀로나에서 찾은 보물 같은 전망 포인트들을 나누어 본다. 




1. 전망은 자연 - 몬세라트 수도원


전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넓고 먼 곳을 멀리 바라봄 또는 멀리 내다보이는 경치'가 첫 번째 뜻으로 나온다. 멀리 내다볼 때 자연만한 경이로움이 또 있을까.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근교 몬세라트(Monserrat)에 가면 넓고 멀리 펼쳐진 자연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 속 수도원이 나온다.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의 몬세라트는 신비로운 돌산이다. 


몬세라트 산의 첫인상은 기암괴석과 산봉우리가 어우러진 새로운 산이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자 암석과 능선, 몬세라트 수도원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신비롭고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전망대


바르셀로나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이 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건축물을 보면 카탈루냐 지역의 자연물들이 들어있는데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 형태에서 몬세라트가 보인다. 대칭적이지 않은 굴곡진 형태의 건축물이 높이 올라감에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가우디는 몬세라트에서 기암괴석이 산을 이룬 형태를 자주 관찰했다고 한다.


또 구엘 공원의 원시적인 화강석 기둥은 몬세라트 암벽에서 공수되었고, 카사 밀라의 지붕 레 페드레라(채석장)는 몬세라트의 기암괴석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레 페드레라를 방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스타워즈 다스베이더다. 실제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바르셀로나 여행 중 카사밀라의 굴뚝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몬세라트 수도원 주변의 트래킹 코스
하늘과 바위산 아래 수도원이 숨어있다.


수도원에서 더 올라가면 그야말로 자연 트래킹 코스가 나온다. 실제 주변에 사는 현지인들이 개를 산책시키며 산을 오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몬세라트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다른 전망이 펼쳐졌다. 안개가 자욱한 신비로움, 초록 나무가 우거진 산등성이, 우뚝 솟은 기암괴석 사이 하나가 된 수도원의 경외로움, 현세로 내려가는 길목까지 하나하나 새롭고 아름다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 수비라치의 조각상, 검은 성모상, 몬세라트 소년 합창단까지 자연의 경관에 인간의 건축물과 종교라는 문화가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다. 도심보다 근교를 좋아한다면, 바르셀로나에서 새로운 전망을 보고 싶다면 몬세라트를 추천한다. 



2. 전망은 자유 - 벙커 



살아있는 순간마다 당신을 기쁨을 느끼는가.


기쁨을 느낀 순간이 떠올랐다. 바로 벙커! 벙커에서 나는 존재를 실감하며 충만한 기쁨을 느꼈다. 내가 유럽에 다녀왔음을, 바르셀로나에 왔음을, 새로운 풍경과 문화를 접해 몸과 마음이 커졌음을, 젊고 살아있음을 상기하며 기뻤다. 


벙커에 가기로 계획한 날, 갑자기 비가 내렸다. 4명의 동행을 구했는데 비가 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정을 취소했다. 오후 4시, 비가 갑자기 그쳤다. 하지만 아직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야경이 잘 보일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라면 벙커에 올라가지 못하고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일정이었기에 나는 혼자라도 가고 싶었고 다행히 다른 한 분도 가보고 싶다고 해 오르게 되었다.


해질녘의 벙커 (Bunker de Carmel). 구름, 맥주, 고양이, 도시 빛이 한데 어우러진 순간


그리고 만난 벙커는 그야말로 지중해 번개 전망대였다! 

도시에는 비가 그쳤지만 저 멀리 지중해에서는 아직 비구름에 번개가 치고 있었다. 무려 5분마다 번개가 쳐 30번이 넘는 번개를 지켜볼 수 있었다. 도시, 바다, 구름, 번개, 맥주, 고양이가 한데 어우러진 이 날의 야경 잊지 못한다. 


벙커 Tip

1. 비행기 궤도가 보여요. 바르셀로나 공항 쪽으로 비행기들이 끊임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요!

2. 해지기 전에 올라가세요. 하늘과 도시가 어우러진 모습, 조금씩 어두워지는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바뀌는 하늘 색, 불빛이 없던 건물들에 불빛이 하나씩 켜지는 모습을 지켜보세요. 해가 빨리 지는 서쪽이 먼저 불이 켜져요!

3. 해지고 난 후엔 어두움 속 반짝이는 노랑 주황 건물빛이 참 예뻐요. 이제 맥주를 꺼낼 때에요! 

4. 날씨가 안 좋아도 비가 그치면 바로 올라가세요! 저 멀리 바다의 번개와 함께 벙커 경관을 볼 수도 있어요!
 
5. 동행과 함께 가세요. 벙커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많지만 벙커까지 올라가는 길은 조금 으슥해요. 안전하게 사람들과 같이 올라가세요! 



3. 전망은 발 디딛고 선 이 땅 - 몬주익 지구


몬주익 지구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앞 전경


전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주로 다리가 열심히 공을 세우는데 높은 곳, 외진 곳, 조금 먼 곳까지 전망을 찾아 열심히 걷고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탁 트인 전망을 본 순간, 지금 발 디딛고 선 이 땅에 애정이 든다. 


몬주익 지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묵묵히 존재한다.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몬주익 성, 에스파냐 광장,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호안 미로 미술관까지 카탈루냐와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 시설이 몬주익에 모여있다. 


특히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앞 계단은 마법의 분수를 관람하는 최적의 장소로 유명하다. 카탈루냐 광장까지 펼쳐진 열린 전망은 마치 바르셀로나의 옆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의 앞모습을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여러 건축물들, 그라시아 거리, 고딕지구와 보른지구가 모여있는 시내라고 한다면, 몬주익 지구는 바르셀로나의 사뭇 진지한 옆모습이다. 


몬주익 성, 하늘과 바다 전망대


몬주익 성은 몬주익 언덕 꼭대기에 바다를 맞대고 자리한다. 15세기 초 농민전쟁이 펼쳐지던 시기 처음 지어졌는데 이후 스페인의 군사 요충지가 되었다. 근현대에는 군 수용소로 쓰이다가 현재는 군사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성이지만 2층밖에 되지 않고 각이 진 사각 형태의 평평한 건물이어서 옥상에 오르면 하늘이 펼쳐진 시원한 맛이 든다. 


몬주익 성의 중앙에 서면 하늘이 펼쳐지고 가장자리로 나가면 지중해 바다가 펼쳐지니, 그야말로 하늘과 바다 전망대였다. 


4. 전망은 헤아림 -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전망의 사전적 정의에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이라는 두번째 뜻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탑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한눈에 도시가 담기지 않는 파편적인 전망이다. 동시에 어떤 동네의 길가, 건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유독 잘 들어온다. 신의 내려다봄은 이런게 아닐까. 인간 세계의 움직임들을 헤아리며 바라보는 시선.


사그라다 파밀리아 탑을 내려오며 보이는 바르셀로나 전망은 색다르다.


탑의 중간쯤 발코니에서 고개를 내밀면, 십자가와 비둘기 장식이 보인다. 그리고 비둘기 너머 낮은 곳에 위치한 건물들이 보인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인간 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하다. 탑에서 걸어 내려오며 인간 세계가 점점 가까워진다. 몸이 움직이면서 마음도 점차 지상의 삶을 헤아려보게 된다.  


이 외에도 바르셀로나 곳곳에는 예상치 못한, 좋은 전망대들이 참 많았다. 꼭 다시 오고 싶은 도시다. 같은 장소에서도 또 다른 전망과 감상을 선물해줄 게 분명하기에. 

 

전망대를 생각하지 않고 방문했던 곳에서 만난 귀여운 전망대, 호안 미로 미술관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 (이따금 놀라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니코스 가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 글을 쓰는 한국에서의 오늘도 참 평화로운 토요일이다. 시간의 여유가 생겨 지난 여행 사진첩을 다시 보고 6개월 전의 감정을 더듬어 글을 쓴다. 집에서 평화로이 글을 쓰며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는데 


이따금 숨어있는 행복의 경험과 실감을 위해 
다음엔 어떤 전망을 찾아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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