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ia Dec 30. 2018

출구가 아니라 입구로 들어가는거야

책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이 책은 브런치에 글을 쓸 지 말 지 고민이 된 책이다. 제목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싶은 내가 이 책을 말하면 선뜻 '자기 나라를 싫어하는구나'라는 선입견을 불러들인다.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 책보다 이 책을 읽고 나눈 연말 독서모임의 결론이 좋아서다.




책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과 호주에서의 경험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한국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꿈꾸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민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여정을 걷는 모습을 담았다.


책을 읽고 나의 마음은 이랬다.


나의 독후감

출구가 아니라 입구로 들어가는거야


'한국이 싫어서'라고 말 해본 적 없다. 

돌아올 말이 뻔해서 '도망가지마' '피하지마'


그래서 말을 바꿨다. '싱가포르가 좋아서'


그제서야 묻는다. '어떤 사람이 해외에 적합한가'

노력하는 사람, 사람은 소중히 여기는 사람, 환경에 감사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한국에 적합한가'와 다르지 않은 답이다.


그저 한국에서와는 다른 방향으로 노력하고자 떠나고 싶다. 언어, 능력, 나이불문, 아시아.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주변의 익숙치 않은 환경에 감사하며 20대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용기있다고 말하지만, 해외에서 사는 데 그다지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때 인천공항을 떠나 날아갔던 것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전부였다."는 말처럼 


도망가고 피하고 몸부림치는 선택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우리가 오늘을 살 듯 

이따금 숨어있는 행복의 경험과 실감을 위해 그 입구로 들어간다.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 (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아직 많은 이들에게는 '싫어서'가 아니라면 시도하지 않을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좋아서' 하는 뜨거움이기를. 이를 선택으로 알아봐주는 다양한 시선이 있기를.



독서모임에서 우리는 '한국'과 '선택'을 이야기했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1. 한국이 좋아서


"우리 이럴 땐 한국이 참 '좋다'고 느낀 경험들도 말해봐요."


한국에 사는 이로서 한국에 대한 만족도를 수치화해서 말해본 후 이럴 땐 한국이 참 '싫다' 또 '좋다'고 느낀 경험들을 말해보았다. 


나는 한국의 '역사와 기록 문화'를 사랑한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에서 아래의 문장을 처음 발견했을 때 느낀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을 후진국으로 느꼈을 프랑스 군인이 감탄한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사랑한다. 이 작은 나라가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아닌 자국어 '한국어'로 말하고 기록한다는 사실이 애틋하고 반만년이라 불리우는 긴 역사를 끈질기게 기록해온 문화가 나는 좋다. 


2011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처음 방문한 이 후, 매 월 찾아가다 못해 1년동안 전시해설봉사까지 하게 될 정도로 나는 이 곳과 이 곳에 흐르는 역사를 사랑한다.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던 중 누군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야? 한국은 어떤 나라야?' 라고 묻는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장소와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거다.  


2011년 145년만에 프랑스에서 귀환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에서 발견한 문장(좌), 언제가도 설레는 국립중앙박물관(우)


이 이야기를 나누자 한 분이 글을 소개해주셨다. 

이민을 단념한 이유가 우리말이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시인의 글이다. 


<한 가지 아름다움만으로도 - 류시화>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나라가 나에게 맞지 않아서 외국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인도와 네팔 정부에도 영주권 요청을 생각했었다. 루미처럼 다마스커스 뒷골목으로 잠적하거나, 랭보처럼 바람 구두를 신고 브뤼셀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만큼 이 나라의 위선적인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 사람들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숨이 막혔다.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며 먼 우주 공간을 통과해 온 내가 아닌가. 그러나 좌표를 잘못 해독했다는 느낌이 컸다. 그런 나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다.

작가이기 때문에 언어에 더 예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감정과 인식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마술처럼 조화를 부리는 우리말의 조사와 어미변화를 보라. 세계의 어떤 언어를 내가 아무리 열심히 습득한다 한들 이 놀라운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아름답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아름다울, 아름다움, 아름답게, 아름답던, 아름답기, 아름답지, 아름다워, 아름다우며, 아름다우니, 아름다우면, 아름다운데, 아름다워서, 아름답기로, 아름답기에, 아름답기에는, 아름답기는, 아름답지는, 아름다울래, 아름답지만, 아름답길래, 아름답거늘, 아름답네, 아름답다네, 아름답단다, 아름답대, 아름다우니까, 아름다우므로, 아름다운들, 아름답다는, 아름답다고, 아름답더라도, 아름다워라......

이 얼마나 놀라운 언어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갸륵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갸륵함이 없다면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게 마음을 표현하겠는가. '아름답다'라는 단어 하나의 어미변화만으로도 영혼이 부자가 될 수 있다니! 어디 그뿐인가.

(중략)

나는 안다, 어느 날 내가 임종을 맞이할 때도 영어나 힌디어나 일본어가 아니라 나의 아름다운 모국어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것은 이미 내 숨과 내 존재와 하나가 되어 다른 언어로는 번역 불가능한 말이기에.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때로 유배지인 동시에 왕국이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집 <유배지와 왕국>에서 6명의 주인공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준다. 하나는 유배지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왕이 되는 것이다. 이들 중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을 가진 사람, 상황이 어떠하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는 사람만이 유배지를 왕국으로 바꾼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유배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느 날인가 당신도 나처럼 이 나라에서 한 가지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벌써 그것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당신을 붙잡는 그것을. 그리고 당신은 깨달아 갈 것이다. 어떤 한 가지를 깊이 사랑하면 다른 것들도 하나씩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시인 노발리스가 말했듯이, 한 가지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면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법도 터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시인을 깨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photos/a.416815941756831/1744809488957463 


책의 제목과는 반대로 한국이 참 '좋다'고 느낀 것들을 나누며 

우리는 한 가지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 다른 것 또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2. 선택


"해외 생활은 어떤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해외 생활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참여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대신
문화관습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본국 생활은
문화 관습으로부터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사회 참여의 권리를 누린다.


지금까지 들은 대답 중 가장 명쾌한 대답이다 (책 '솔직한 글로벌 언니의 열정토크') 


발 딛는 현재의 국가를 바꾼다는 선택은 분명  새롭게 '얻는 것'과 동시에 '잃는 것' 즉 '잃기로 선택(포기)하는 것'을 만든다. 


이방인의 서러움은 있다. 특히 아플 때, 선뜻 병원을 가기에 외국인 건강보험은 어떻게 되는지 너무 높은 비용이 과다하게 청구되지는 않을지 신경쓰다보면 문뜻 서럽다. 장기계약하지 않는 집을 수시로 옮겨야하고 특히 법적 이슈가 발생할 때 안정감을 위협받는다. 괜히 외국인으로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한 번 더 든다. 근로에 따른 세금을 냄에도 사회 정책을 바꾸는 정치권 행사에서 기회와 목소리가 배제되는 일도 다수일 것이다. 


사회 참여의 권리가 다른 어떤 권리보다 중요한 가치라면 그는 한국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 반면 세계 곳곳의 나라가 제각기 상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나와 더 잘 맞는 어떤 문화 속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문화 관습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가 더 중요한 가치라면 그는 한국 밖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 


책 '프레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강한 제목을 통해 표백되어가는 청년세대에게 다양한 색을 조금이나마 입히고 싶었던게 아닐까. 한국이라는 삶의 상황은 일방적으로 주어졌지만 최선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적 행동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출구로 도망치듯 나가는 게 아니라 
그저 묵묵히 우리가 오늘을 살 듯 
이따금 숨어있는 행복을 위해 
입구로 들어가는 다양한 선택을 응원해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 당신의 인생을 채우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