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by 글루미악토버
P20180330_191933403_9E054A96-8250-4DE7-8F51-C57C2882B2B5.jpg



날씨가 많이 좋아졌다 .
환기시키려고 하면 큰 마음을 먹어야했는데 , 이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자마자 창을 연다.
선선한 바람과 이따금 뜨거울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 .
기분이 썩 괜찮다.


야식을 먹지 않은 것도 2달이 넘어간다 .
동굴에 들어갈 때 쉬이 잠들지 못했고 , 무언가를 먹으며 버텨야했다 .
감정적 허기를 달래는 방법을 찾지못했던 나는 허기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작은 무언가를 주섬주섬 먹었다 .

어떤 날은 액체였고 , 어떤 날은 고체였다 .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아주 차가웠다 .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려는 것 처럼 .

날이 좋아지고 , 예쁜 말들을 계속 듣고 , 수없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다시 조금은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
눈을 감고 , 귀를 막고 , 입을 닫는 그 시기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
그저 울고 , 매달리고 , 멍하게 있을 뿐.
꽤나 좋아진 것 같은 요즘인데 그럼에도 선뜻 웃을 수 없는 것은 무언가 남아있고 , 그 남은 것이 언제든지 나를 뒤덮을 수 있다는 걸 수년동안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박언니는 " 나는 우울은 습관인거 같아 " 라고 했었다 .
며칠 전 만난 KJ도 " 아무래도 습관인 것 같아 , 이 우울이 " 라고 말했었다.
나의 우울도 그러한 걸까?라고 매일 밤 생각했다.
각자의 아픔을 겪었고 겪어내고 있는 이들이 하는 말들이 나와 아주 상관없지는 않을 것이란 걸
나는 내 패턴을 돌이켜보며 깨달았다 .
뇌호르몬을 다룰 수 있는 리모컨을 개발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힘든 사람들은 많으니까 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잠시 했다 .

어떠한 상황에도 숨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생명력에 의지를 가져보고 싶어진다 .
주위에 아픔을 공유할 수 있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처음 스스로의 아픔을 자각했을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분명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그렇게 나의 패턴일 지 모르는 지금 이 시기를 누리고 있다.
점점 거듭할 수록 그 패턴에 능숙하게 대처한다 .


끝을 바라보는 순간에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 지와
비슷한 파동의 감정을 겪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가늠해보는 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키는 일이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라도
내가 존재해야 일어나는 일임을 끊임없이 자각시키는 것도 모두
그동안 부단히 아팠던 내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


참 많이 울었다 .
수없이 원망했고 , 주저앉았고 , 빛을 피했다.
소리없이 울다가 소리내어 울었다 .
수없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었다 .
나약한 스스로를 책망했다 .
내가 제일 힘들고 슬플거라는 생각 대신 '견딜 수 있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아픔일 꺼야'라고 생각하면서 붙잡았다 .
사람의 감정에는 형태가 없는데 , 그 형태의 온기를 내 방식대로 베풀었고
그것들은 모두 내가 마이너스 일 때 돌아왔다 .
내 눈에 그것들은 모두 형태가 있었다 .
때로는 너무 크고 묵직해서 무거운나머지 버겁기도 했고 ,
어떤 날은 투명한 무언가가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보잘 것 없다고 말하는 건 나였다 .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가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 조금 괜찮을 때 ,
또 다른 늪에 빠지는 그 날이 오기 전에 ,
그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처럼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길 한없이 바란다.
또 아파서 몇일 밤을 울며 보내고 가슴떨림에 숨쉬기가 힘들 때 ,
그동안보다 더 능숙하게 , SOS를 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억은 편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