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 우리 엄마

by 글루미악토버
KakaoTalk_20180422_145704381.png 엄마 , 마지막 병실 사진.





이웃의 싸움이나 주위에서 소리지르는 남자의 소리가 들릴 때 ,
내 잘못이 없음에도 심장이 빠르게 떨리고 , 움츠러든다 .
문과 창문을 닫고 , 커텐을 친다.
" 제발 싸우지 마세요 , 살 날이 얼마 남은 줄 알고 싸우나요 " 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었다 .
과한 욕심일 것이다.
말할 수 없으니 내가 모든 문을 닫고 노래를 틀어 귀를 막는 일이 빠르다.
당분간은 제발 다들 안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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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는 엄마의 4번째 기일이다 .
그리고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자 엄마의 양력생일이다.

남동생은 이제 22살이 되었고 , 어리지만 무언가를 할 수가 있다.
나도 매 순간 부딪히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 남매는 스스로 무언갈하고 살고있다.
모든 사람들처럼 미래가 불안하고 , 막막하다 .

예전에 이 일을 하기에 결심을 한 이유중 제일 큰 것은
" 잃을 것이 없어서요 . " 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잃을 것은 없고 , 만드는 것은 익숙하다 .

머리를 직접 자르기 시작한 것에 제일 큰 이유도 매번 나가는 미용실 값을 엄마에게 받기에 미안해서였다 .
다행히도 손재주가 뒷받침해주어서 , 머리 숱이 많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야금야금 만들기 시작했다 .
중학교 때 갖고싶은 옷이 비싸면 가지고 있던 옷을 잘라 소매를 바꾸는 등 리폼을 하기도 했다 .

오랜 시간 제일 많이 했던 말은 괜찮다였다.

어려운 사정이었을 때 한달을 내리 라면으로 버티는 순간들도 있었다.
집안음식의 양념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
그래서 모든 양념요리의 맛이 똑같았다.
당시에 나는 " 와 , 이건 엄마의 능력이야 " 라고 말했다 .
어쨌거나 엄마가 해준 양파볶음의 맛은 일품이었다 .
아무리 다양하게 만들어봐도 절대 그 맛을 내지 못했고, 기억은 흐려졌다.

TV에서 본 건 많아서 엄마 밥그릇을 한번 뒤적 거리며 ,
" 혹시 여기에 무 넣어둔거 아니야 ??? 엄마 많이 먹어 !! "라고 했었다 .
우리집은 쌀이 자주 떨어졌다.
나는 엄마가 우릴 위해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했다 .

통금시간은 곧 하교시간이었고 ,
슈퍼에서 술을 외상하고 가는 엄말 보거나 문 앞에 멈춰서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리면 문을 열지 못하고 멈췄다 .
최대한 늦게 , 늦게 들어가야했다 .
말도 조용조용히 해야했다 . 그러다 " 너 이리와 " 라는 소리가 들리면 주정을 들으러 가야했다 .
화장실에 가서 변비인 척도 꽤 자주 했다 .
다시 끌려가 앞과 뒤가 전혀 맞지 않는 그 말을 듣다보면 숨이 막혔다 .
늘 엄마는 그 가운데서 우릴 위해 작은 몸으로 아둥바둥거렸다 .


나는 그래서 대학을 타지로 갔다 .
엄마는 나라도 괜찮기를 바랬다.


그렇게 내가 22살이 되어 엄마를 보내고 난 후 ,
제일 처음 한 일은 그의 언행에 참지않는 일이었다.
엄마처럼 참으며 살지 않을 거예요 , 나는 .

오랜 시간 흘러오며 사람의 맺고 끊음에도 무던해졌다 .
소속감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
나를 들여다보기로했다 .

엄마는 큰이모가 준 혜민스님 책 안에
" 미혜 : 무서운 우리 딸 , 말이 많음
재호 : 우리 아들 , 말이 없고 ,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음 " 이라고 적어뒀다 .

그에게는 " 당신은 하고싶은 거 다하고 살았죠 ?
난 아무것도 못했어요 . " 라고 했다.
매일 인상을 쓰며 버티느라 생긴 미간은 투병생활동안 펴져갔고 ,
우리는 그 변화에 작게 실소를 내뱉었다 .

나는 그래서 살기위해 " 하고싶은 일 " 을 하기로 했다 .
여행을 많이 가서 이것 저것 보고 , 하고싶은 것들은 하고 ,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배워보기로 했다 .
늘 말하고 썼다 . 언제 죽어도 " 그래 ,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살았어 . 여한이 없다 " 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고 .

내 길지않은 이십몇년의 삶동안 거의 전부를 차지한 것이
엄마와의 기억이고 , 내 마인드 역시 그렇게 정해졌다 .

당장 해도 되지않는다면 , 그래서 포기하게 된다면 다른 것을 하면된다.
그러다 모든 것이 안된다면 , 세상을 등져도 된다 .
늘 그렇게 마음에 담고 있다 .
생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집착하면 많은 것들이 버거워진다 , 어렵게 생각하게 되면 모든 것이 어려워지고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


어린 날의 내가
" 인생에는 몇 번의 슬럼프가 있는데 ,
우리에게는 그 슬럼프가 빨리 오는 게 아닐까 ? "
라고 말하며 동생과 엄마와 버티며 살아갔던 것처럼
희망을 갖되 , 필요치 않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그냥 살면 된다 .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는 지금 , 나는 여전히 엄마가 보고싶다 .
후회만 할 수 있고 , 잘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매일 매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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