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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루미악토버 May 28. 2018

렌즈



내가 처음 렌즈를 끼게되었던 때는 한달용돈 3만원을 받던 중3 시절이다 . 

그때 나는 한창 美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던터라 
자주 이것저것 해보고싶은 것들을 적어내려가곤 했는데 , 
제일 큰 관심은 '렌즈'였다.

사실 시력이 좌,우 2.0 으로 시력교정과는 아주 먼 삶인데 , 
누군가가 던진 길지도 않은 문장이 내 욕구의 파도를 일으키고 말았다.

나의 10대 시절에는 증명사진을 정기적으로 찍어서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 유행이었다.
크게 필요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지하상가에 7~9000원하는 증명사진들을 찍어서 나눠 갖곤 했는데 
어느날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들었던 말이 나를 렌즈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 학생은 동공이 작네 ? 렌즈같은거 끼면 좋겠다 "

-
美에 관심이 많은 10대 아이에게 불쏘시개를 던진 것이다 .
아주 활활 타올랐다 . 
갑자기 내 눈이 콩알만해보였다 . 

주위에 렌즈를 끼는 아이들은 많았다 . 
어떤 것들이 예쁘고 , 어떤 것들이 눈이 덜 아픈지 , 친구들은 빠삭했다.
그 날부터 렌즈를 구매하고 끼기 시작했다 .
똑바로 관리하지도 못하면서 , 
시내를 가거나 놀러가는 날에는 꼭 렌즈를 꼈다 . 
그냥 조금 예뻐보이는 게 중요했다 .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1년 반 남짓 렌즈를 빼지 못했다 . 
어느 날부턴가 나는 렌즈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제대로 관리를 하고 끼는 렌즈거나 시력용렌즈라면 , 말이 다를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냥 눈의 크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렌즈는 곧 눈의 크기였고 , 눈의 크기는 미모의 정도였다.
끼지 않으면 괜히 자신감이 떨어졌고 쳐지게 되었다.

그러다 고2에 접어들고 자율학습과 렌즈값이 조금 부담이 된 나는 과감히 렌즈를 끊어보기로했다.
그 결심을 실행시켜주는 데에는 자주 걸리는 결막염도 한몫했다 . 

-

한동안 렌즈를 빼고 살다가 , 대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다시 끼기 시작했다 .
사실 고등학교도 남자2 , 여자 1 정도의 비율이었고 , 대학교 때도 거의 2:2의 비율이라 
이성에 대해 별다른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낮은 자존감을 메꾸려면 렌즈를 껴야했다 .
동성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도 당당하려면 껴야했다.
그렇게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해야 얼굴을 들 수 있었고 
이야기 할 수 있었고 , 웃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20살 , 21살 , 22살까지 렌즈를 빼지 못했다 . 
내가 렌즈를 절대로 끼지않겠다 결심한 것은 23살 카페아르바이트를 한창 할 때였다.
개인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되면 아무래도 주문과 음료,디저트를 
모두 해내야하다보니 face to face 를 자주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눈을 쓰는 일이 점점 많아지자 , 나는 다시 눈이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 
유일한 자랑은 '시력'이었는데  ,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 판정을 받기도 했었고 , 감기가 걸리면 눈코입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보니 
모든 곳이 상태가 좋지 못했다.
더 이상 이러면 안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도심의 한 큰 안과에 방문했다.
그리곤 혼쭐이 났다.

" 렌즈껴요? " 
" ...네 "
" 음 ... 눈 검사 해봅시다 " 

그러곤 모두 분석해주는 기계에 눈을 검사받았다.

" 시력이 좋네 , 렌즈 끼죠? 
시력 교정용도 아닐 거고 미용용? 왜 껴요 .
지금 환자분 눈 상태를 보시면 60대에요 . 이 세포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 세포입니다.
계속 끼게되면 인터넷에 나오는 실명사례를 초래할 수 있어요 . "

머리가 띵해졌다 . 
" .. 실명이요 ? " 

-
( 이건 여담인데 , 집에 돌아와 내가 방문한 병원을 검색하고 본 의사선생님은 
렌즈 부작용에 대한 칼럼을 쓰시는 분이었다. 아주 딱 걸린 것이다 . ) 

너무너무 감사한 것은 그래도 2.0에서 1.5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관리를 했으면 원래 더 나쁠텐데 ,  운이 좋은 거예요'라고 하셨다 .

그 날 이후 렌즈를 뚝 끊었다 . 
눈을 잃고 싶진 않았다 . 난 아직 봐야하는 게 더 있으니까 .

그날 밤 나는 렌즈를 끼지않기위해 모두 찢어버렸지만 , 아르바이트는 가야했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가면 타인의 얼굴을 마주해야했다 .
2주정도는 포스기나 머신기 , 오븐 등에 눈을 고정하며 손님과 대화를 했다 .
아주 못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
거리를 걸을 때도 바닥의 모양이 어떠한 지 파헤치기 바빴다.

원래 끼던 렌즈가 사이즈가 작은 거여서 그런지 몰라도 ,
대부분의 친구들은 렌즈착용 유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

" .. 그냥 거기서 거긴데? " 

뭔가 엄청 억울했다.
그 고생을 했건만 ,

물론 간혹 몇명은 "뭔가 퀭해졌어- " 라고 하기는 했지만 ,
온 몸이 실명이라는 두 글자로 휘감고 있는 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렌즈를 끼지않고 시간이 오래 지난 
이제는 당당하게 앞을 보고 사람의 눈을 마주한다 . 
오랜 시간동안 낀 렌즈가 준 것은 " 안구건조증 " 이라서 
까먹지 않을 때라도 인공눈물을 꼭꼭 투여한다 .

아직도 계속 유혹에 흔들린다 . 
예쁜 렌즈는 너무나 많고 , 누군가 어떤 날에 예쁘게 낀걸 보면 매력적으로 비춰져서
갖고싶어지기도 한다 .
어린 날처럼 렌즈 만원 , 만오천원짜리를 사지 못해 어렵지도 않다.
몇만원이라도 조금 고민을 해도 없으면 한달을 굶고 , 그러는 건 아니다.
너무 예쁜 렌즈에 꽂히면 " 예전처럼 그렇게 끼는게 아니라 진짜진짜 관리를 잘하면 되지 않을까 ? " 
라고 합리화하다가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접는다.
아주 고이고이 몇 번을 접어서 한동안 묻어둔다 .

예쁨 < 시력 
이젠 이게 성립하니까 , 
참을 수 있다.
내가 작은 눈을 가진 것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계속 흔들릴 것 같아 불안하긴 하지만 , 이미 늙은 나의 세포들을 위해
참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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