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호수
‘이 아이는 도대체, 이야기하는 법을 모르는 건가?’
하나는 두 팔을 포갠 채 앉아, 오늘 벌써 세 번째 생각에 돌입했다.
아니, 처음 봤으니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지.
아니, 근데 자기가 말 걸었잖아. 아니다, 그냥 말을 걸었는데 내가 데려왔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할 수가 있지? 보통 이런 어색한 침묵 속에서는 예의상이라도 상투적인 질문 한두 개쯤 오가지 않나.
'아니'로 시작된 질문들이 하나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쩐지 차를 타지 않았는데 멀미가 날 것 같아 하나는 한숨 한 번에 생각을 끊어냈다.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다. 머리가 복잡한 성격도 아니고, 계산을 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이 아이 앞에서 여러 번 생각해야만 했다.
‘물 끓을 동안만 버티자. 밥만 먹이고, 이 아이를 돌려보내자.’
그 사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 아까 아는 것도 물어보기로 했잖아. 자, GO!’
“저기… 몇 살이야?”
적막을 깨는 하나의 질문에 호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잠시 하나를 똑바로 바라보다,
“17살.”
짧게 말했다.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놀라는 척을 했다.
“오! 나도!”
호수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하나를 바라봤다.
‘그래, 처음부터 동갑이라고 말했었잖아. 이 질문이 뭔가 싶겠지. 그래도 내 의도를 알아챘으면 이제 너도 질문 하나쯤 해봐라!’
풍선껌 부풀 듯 커진 기대는, 호수의 시선이 냄비로 향하면서 푸슉- 바람이 빠졌다.
‘그래, 됐다. 됐어.’
다시 흐르는 긴 침묵. 하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 검지로 톡톡, 테이블 위에 두드리며 그 지루한 정적을 버텼다. 그때—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생각.
“혹시 계란후라이 좋아해?”
이번엔 계란후라이 선호조사라니.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지만 호수는 그 심중을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을지도.
***
“응, 좋아해.”
“잘됐다!”
하나는 호수의 말끝을 타고 기다렸다는 듯 주절댔다.
“나는 라면에 계란후라이 넣어 먹거든! 국물이 탁해지는 건 싫고, 그냥… 사실 내가 계란후라이를 좋아해서. 계란후라이는 아무거나랑 같이 먹어도 맛있잖아? 너도 계란후라이 좋아하면 먹어볼래?”
유난히 강한 후-라이 발음과 함께 신난 하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오고, 선반 아래에서 프라이팬을 꺼냈다. 가스를 켜고, 기름을 부었다. 일사천리였다.
“안 먹으면, 내가 두 개 다 먹어야지. “
호수가 하나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계란프라이, 내가 할게. 괜찮으면.”
신난 하나의 뒤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계란후라이는 내가 해야 돼. 내가 하는 방법대로 해야 맛있거든.”
마치 일류 요리사가 된 냥 비장한 눈빛. 단호한 제지의 손짓. 호수는 살짝 주춤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나 버렸기에, 뻘쭘함을 덜기 위해 라면 봉지를 집었다.
“그럼… 내가 라면 끓일게.”
“그래, 좋아!”
하나는 활짝 웃으며 호수가 설 자리를 살짝 비켜줬다. 끓는 물에 수프를 넣으며 힐끔 바라본 하나는 생글 웃으며 기름을 조심스레 두르고, 계란을 탁 깨며 흰자 끝까지 탈탈 털어냈다. 그 손길이. 모습이. 귀여웠다. ‘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호수는 생각했다. 라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라면사이를 휘휘 젓는 사이,
“다 했다!”
하나가 계란프라이를 완성하며 뿌듯한 얼굴로 호수를 바라봤다. 진짜 강아지 같다. 칭찬을 바라는 기대의 눈빛. 호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순식간에 나온 웃음에 조금 놀란 사이 하나는 라면 냄비를 보고 외쳤다.
“오, 라면도 다 됐네!”
선반에서 그릇 두 개를 꺼내며 하나가 웃었다. 호수는 불을 끄며, 그 웃음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살짝 웃었다.
“자! 맛있게! 먹겠! 습니다!”
하나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먹지 않고 호수를 살폈다. 호수는 눈치가 빨랐다. 조용히, 계란프라이부터 집어 국물에 적셔 한입 먹었다. 사실은 그냥 국물을 찍어 먹는 것뿐인데— 하나의 똘망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맛있다. 처음 먹어보는데, 진짜 맛있어.”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하나가 웃을 때 그 눈망울 속에 빛이 담겨 반으로 휘었다.
“이렇게 먹으면 진짜 맛있다니까! 은근히 너 뭘 좀 아는구나?”
하나의 말은 단답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 기본 네 문장. 호수는 그 활기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문득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 하나가 들어왔다.
“이름이… 뭐야?”
하나는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다 제대로 사레가 들렸다. 호수가 물을 찾으려 하자, 하나는 손을 저으며 냉장고로 가 물을 벌컥 마셨다. 호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름 물어보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었나?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밥 먹는 게 더 놀라운데.’
“하나야. 연하나.”
연하나, 연하늘, 어쩐지 처음 본 하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면을 먹었다. 그 모습에 하나는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있지, 보통은 그다음에 자기 이름을 얘기하는 게 순서야.”
이번엔 호수가 사레가 들릴 뻔했다. 아차, 싶었다.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를 해본 게 언제였더라. 아니, 거의 처음이었다. 호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하나를 바라봤다.
“… 나는 강호수야.”
“음. 강호수. 강호수.”
하나는 의미심장하게 작게 되뇌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걸까. 호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기 이름이,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낯선 목소리로 들리는 내 이름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음… 리버레이크네.”
하나는 그렇게 말하곤 라면에서 계란을 건져 후루룩, 한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