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라면에 계란 후라이 두 개 1

물이 끓는 시간

by 박지선

“엄마—!”

...

“엄마?”


하나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는 현관에서 잠시 멈췄다가, 문을 열며 뛰어가 모든 방문을 하나하나 열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게 호수에게는 애처로운 염소울음처럼 들렸다.

비어 있는 집을 더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 공허함에서 호수는 익숙한 무언가를 느꼈다.


하나는 당황한 듯 집을 헤집는 내내 호수를 힐끗 쳐다보며, 뭐라 말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나의 눈은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투명한 눈이었다.

그 점이 호수가 하나에게 끌리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주 명확한 이유였다.

곧 하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 집에 엄마가 계신 줄 알고… 밥 먹자고 데려온 건데… 아니, 사실 밥을 먹으려던 건 아니었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다 보니 우리가 밥을 먹게 된 거고… 근데 나는, 밥을 못 하는데…”


하나는 점점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 목소리에는 호수와 대화를 하려는 마음보다,

이 어색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담겨 보였다.

호수는 그런 하나의 말을 부드럽게 막아주었다.


“괜찮아, 나는. 집에서 먹어도 돼. 아직 배도 안 고프고.”


진심이었다. 호수는 원래 먹는 것에 욕심이 없었고, 그저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제야 하나가 호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시선에서 호수는 익숙한 생각을 읽었다. 아마 또래 남자아이치고는 너무 말라 보였을 것이다.

호수는 부모님을 닮아 키가 컸고, 잘 안 먹었다. 그래서 더 말라 보였다.


“그래도… 배 안 고파도, 먹어야겠다. 너는.”


하나는 부엌으로 갔다.

냄비를 찾아 물을 올리려다 말고,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정말 미안한데 잠깐만 기다려줘. 저기, 나 옷을 좀…

어, 빨리 씻고… 아니, 갈아입고… 아무튼, 5분만. 아니, 10분만!”


하나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편하게 앉아 있어. 냄비는 그냥 놔두고!' 뒷말까지 재빨리 덧붙이며.

사라진 순간, 거실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컸고, 그 소리는 마치 심장박동과 비슷하게 지나는 듯했다.

호수는 그 소음을 자신의 생각으로 덮었다.


천천히 감았다 뜬 눈으로 들어오는 하나의 집은, 평범한 듯했지만 낯설게 따뜻했다.
특히, 마주 보는 벽면. 선반 위에는 액자에 꽂힌 사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먼지가 얕게 앉아 있었지만, 사진에서 많은 날마다 닿은 애정의 손길이 느껴졌다.

호수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집과 비교해 보았다.


사진은커녕, 집 안엔 흔한 벽걸이 달력 하나 걸려 있지 않다.

거실을 비롯한 온 집의 조명은 주광색이다. 호수는 그 조명이 싫었다.

엄마의 얼굴을 더 창백하게 만드는, 세상의 온기를 앗아가는 빛.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호수의 표정이 슬며시 일그러지려는 찰나—

‘우당탕!’ 소리를 내며 하나가 계단을 굴러내려 올 듯 달려오고 있었다.

호수는 금방 표정을 바로 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시선을 계단 쪽으로 옮겼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아무래도 좀 씻긴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도 그냥 찬물로만 씻었어. 아, 대충 씻은 건 아니고… 뭐, 아무튼!”


하나는 계단을 다 내려오기 전에, 아니, 호수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호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웃기다고 느껴졌다.


‘이 아이는… 흔히 말하는 투머치 토커구나. 아니면 ENFP 인가 그거. 아니면 둘 다거나.’


“괜찮아. 혼자 있는 건 익숙해서.”


호수는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사실이긴 했지만, 어른들이 들으면 괜한 걱정을 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슬쩍 하나를 보니,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은 듯, '응, 그렇구나.' 하며 냄비에 다시 물을 받았다.


“너 라면 좋아해? 난 좋아하는데.”


난 좋아하는데. 그 끝말의 뉘앙스가 어쩐지 싫어도 꼭 먹어야만 하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호수도 라면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냄비를 잡은 하나의 손에 들어간 잔뜩의 힘은
오늘의 식사는 ‘라면’으로 정해져 있다는 굳센 의지가 담겨 보였다.


“응, 좋아해.”


호수의 대답에 안도한 듯 하나가 웃었다.

순수하고, 마치 풀잎 위에 작은 이슬처럼 빛나는 웃음이었다.


하나는 조심스럽게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칙—'


가스가 켜지는 소리.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긴, 침묵의 시간. 아직 라면 물이 끓지 않은, 그런 시간.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