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이 바다에 닿기까지
호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 자신이 이런 말을 꺼낼 수 있었다는 것.
아니, 남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었단 사실.
그리고 또 하나,
처음 본 사람에게 대뜸 밥을 먹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호수의 삶에, 단 5분 만에 일어난 새로움이 무려 두 가지나 된다.
그런데 그것들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하나는 호수보다 세 걸음쯤 앞서 걷고 있었다.
신발 아래 사드락, 바스러지는 모래 소리를 내며
그녀의 집을 향해.
그 세 걸음은, 철저히 호수의 노력으로 유지되었다.
하나가 젖은 바지를 살짝 추켜올리려 멈추면
호수도 함께 멈췄다.
하나가 신발 속 모래를 털며 잠시 고쳐 신는 동안에도
호수는 그 세 걸음 너머에서 묵묵히 속도를 맞췄다.
햇볕은 뜨거웠고, 옷은 금세 말라갔다.
하나는 걷는 내내, 얼마 남지 않은 옷의 물기를 꾹꾹 짜냈다.
그렇게 짜낸 옷은 곳곳에서 쭈글쭈글하게 모양이 잡혔다, 서서히 퍼졌다.
유일하게 그녀의 신발에서만 물이 ‘쭉, 주욱’ 흘러나와
뜨거운 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호수는 그 젖은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그 작고 조심스러운 뒷모습을 힐끔 보았다.
***
하나는 뒤돌아보고 싶었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그냥 확인하고 싶었다. ...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젖은 옷이 조금 비친다는 걸 출발하고 5분쯤 지나서 알았다.
'혹시 그걸 말해주려고 말을 걸었을까? 아니. 절대, 그럴 리 없어.'
' 대뜸 밥 먹으러 가자고 하다니. 날 정상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6 월 초의 날씨지만, 낮의 햇빛은 아스팔트와 함께 하나의 검은 머리카락까지 뜨끈하게 달구고도 남았다.
'지구온난화인지 뭔지— 머리에서 소금이 나오지는 않을까?'
'염전의 원리는 내 두피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
'뭐가 됐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찬물로 이 끈적한 소금기를 해치우고, 동네 강아지처럼 순진하게 따라오는 이 아이도… 해치우고.'
'정말, 말이 없다. 숨은 쉬는 건지. 사람이 이렇게 소리가 안 날 수도 있나.'
하나는 아까에 이어, 두 번째 생각에 돌입했다.
'집까지 15분 정도 남았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몇 살이냐. 아니야. 어디서 왔냐. 아니야.'
" 좋아…"
…
머릿속 말을 굳이 진짜 말로 꺼낼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목적어를 생각하다 말고 답답한 마음에 동사가 먼저 튀어나왔다.
흠칫 놀란 마음에서 출발한 말꼬리가 늘어진다.
“아, 그게 혹시… 밥, 뭐 좋아하냐고. 좋아하는 반찬 있어?”
핑계도 좋다. 밥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애가 됐다.
“아니, 그런 거 딱히 없어.”
딱히 없다니. 그럼 다 좋아한다는 건가? 아니면 다 싫어한다는 건가?
침묵이 길어지면 소리가 난지도 모를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아닌가 보다.
이렇게 빨리 대답할 건 또 뭐람...
아까...
들었겠지.
“아, 그러면! 음. 그래.”
걷자. 그냥 걷자. 시간이 빨리 가도록 빨리 걷자.
하나는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좋아’에 스스로 민망해지며, 뒤따라오는 호수를 잊은 채 걸음을 재촉했다.
'어떻게 그런 이상한 말을 할 수가 있지. 그냥 몇 살이냐고 물어볼걸.'
'알면서도 물어보는 거, 모르면 더 물어보는 거, 그게 대화 아닌가.'
“저기.”
'어디서 왔냐, 그냥 물어볼걸. 그건 진짜 모르는 건데… 근데 궁금하지도 않은 걸 어떻게 물어봐.'
“저기—”
'저기만 건너면 집이다. 다 왔다. 뛸까? 아니야, 그것도 이상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저기!”
우뚝. 하나가 호수의 손에 멈춰졌다.
“어?”
별똥별이 떨어지듯, 온 신경이 호수와 닿은 손목으로 향했다.
손이, 따뜻하다.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따뜻하다.
광선처럼 번쩍 스치는 생각들을 호수의 말이 다시 붙잡았다.
“신발.”
하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 신발 끈이 끊어져 있다.
얼마나 열심히 걸은 건지, 아니 달렸나.
신발은 너덜너덜 흙범벅이 되어 있었다. 얼마 전 새로 산 샌들인데...
또 해 먹었다고 엄마한테 죽겠지
“아, 괜찮아. 곧 집이니까. 벗고 가지 뭐.”
하나는 툭- 신발을 벗고 맨발로 아스팔트를 디뎠다.
순간, 발바닥이 맥반석 위의 오징어처럼 꾸깃꾸깃 말려들었다.
만화 캐릭터들이 과장해서 튀어 오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대낮의 아스팔트는 계란프라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티 내지 말자.
하나는 금세 표정을 다잡고 남은 한 짝도 벗어 손에 들었다.
호수는 염려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못 본 척하자. 아무렇지 않은 척 하자.
하나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다 왔다. 진짜 다 왔다. 가자마자 이 아이를 엄마한테 맡기고, 나는 곧장 화장실로 도망가야지.
뛰어서. 무조건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