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망치지 못한 정어리 한 마리

파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by 박지선


파도를 헤치며 하나는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그 안에 잠겨 있었다.

호수는 그 모습이 어쩐지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하나가 바다에 잠긴 게 아니라, 마치 바다가 오히려 하나에게 잠겨버린 것 같은 묘하고 낯선 풍경.


호수에게 바다는 늘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나를 처음 마주한 그날, 호수는 처음으로 바다의 고요하면서도 거센 움직임을 보았다.

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물짓.


파도는 발 밑까지 다가올 듯하면서도 끝내 닿지 않았다. 호수가 단 한 걸음만 내디뎠더라면.

발목을 통해 스며든 물이 호수의 어디까지 닿았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호수는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부동의 시선을 돌리게 만든 건

거센 물결과는 대조되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 하나였다.

묵직한 온기.


그리고 오늘 세차게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하나의 모습을 보며

호수는 밀려오는 파도에 자신의 발목을 적셨다.


***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그 아이의 눈빛을, 하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밖으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저러고 있을 수도 없는 채 연신 바닷속에서 물장구만 치고 있었다.

꼭 같은 자리를 맴도는 정어리떼처럼.


도대체 저 눈빛은 또 뭐란 말인가.

스산하게 마음에 물기가 어려있다.


하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이미 손가락 지문 따위는 파도에 쓸려 사라진 지 오래였고,
급히 뛰쳐나온 탓에 배까지 고팠다. 방법은 하나. 최대한 모르는 척. 시선을 마주치지 말고. 곧장 앞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여유 있게. 침착하게. 생각을 멈춘 하나는 물을 헤치며 발을 디뎠다.


처벅, 처벅—


시선을 앞에 둔 채, 묵묵히 모래사장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호수가 움직였다.


‘오지 마. 오지 마. 지나가. 그냥 지나가. 아니, 차라리 내가 먼저 간다. 하나, 둘, 셋.’


신발을 집어 들며 전력 질주하려던 순간— 이번엔, 호수가 막아섰다.


“저기.”


하나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렇게 멈춰질 줄은 몰랐는데. 물에 빠진 생쥐 꼴이란 이런 걸까. 유일하게 녹아있는 머리로 생각만 굴리며 하나는, 늦게나마 고개를 천천히 들며 호수를 바라봤다.

억지로 여유를 가장한 표정을 하고선.

그 모습을 밖에서 본다면 고장 난 로봇이라 해도 될 것이다.


“안녕.”


이 딱딱한 안녕은 뭐란 말인가. 정말 로봇이 된 걸까. 애쓴다.


호수는 뭔가를 말하려는 눈치였다.

지금, 이 순간, 여기서. 꼭 꺼내야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하나는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호수가 입을 열려던 찰나—


꾸르륵.

하나의 배는 언제나처럼 눈치가 없었다.


호수의 입술이 마르듯 달싹이는 그 순간, 하나는 그 말을 낚아채듯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저기, 우리 집 가서 밥 먹을래? 뭐 이상한 거 아니고! 우리 아빠가 너 만나면 잘해주래.

우리가 만났잖아? 아, 아빠한테 들어서 누군지 알고 있어. 그냥 반말하는 거 아니고…

혹시 반말해서 기분 나쁘면… 저기, 밥 먹으러 갈래요?”


말이 다 끝난 뒤에야, 하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한 호흡이 이렇게 길 수 있다니… 3년 수영한 보람을 여기서 느끼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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