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물살을 딛는 법

바닷물은 짜다

by 박지선

따뜻한 온기가 잡은 손을 타고 호수의 굳은 마음을 녹였다.


"…고마워."


그 말을 내뱉기까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누르려 호수는 몇 번이나 공기를 삼켰다. 하지만 마지막 음절이 빠져나오자 삼켜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왔다.


"괜찮…"


호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아준 이 온기가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하나의 손은 호수의 손보다 손가락 한 마디쯤 작았다. 하지만 그 손은 지금의 호수를 감싸기엔 충분했다.


호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모든 것들을 뚝뚝 바닥에 떨어뜨려 모래 속에 묻어버리고 싶었다.


하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파도 소리만이 이 공간과, 하나와 호수가 맞잡은 손가락 사이를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소라껍데기를 귀에 댄 것처럼 바람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 소리가 호수의 울음소리를 덮어주었다. 호수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이 느껴졌다. 하나는 꽉 잡은 손을, 더 꽉 잡고 조심스럽지만 망설임 없이 호수를 이끌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땅만 바라보며 걷던 호수는 모래가 점점 젖어든다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까, 생각하던 찰나-


찰박.


신발 아래로 물이 밟혔다. 앞서가던 하나의 발목까지 이미 물이 닿아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호수는 멍하니 하나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종아리가 허벅지가 되고 허벅지가 허리가 되었다. 어느새 물이 허리께까지 차올랐다. 하나의 동그랗게 묶인 머리카락 끝이 젖으며 길게 늘어졌다.


그제야 하나가 멈춰서 호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물을 떠 자신의 얼굴에 끼얹었다. 놀랄 틈도 없이 한 번 더, 작은 옹달샘을 퍼 올리듯 이번엔 호수에게 물을 뿌렸다.


차갑다. 많이.

여름이 아직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다는 먼저 가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너 얼굴에 바닷물이 잔뜩 흐른다."


…바닷물이구나. 나는 얼굴에 바닷물이 흐르고 있어.


"그러게."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더 흐르게 해줄까? 여긴 괜찮아. 바닷물이 많이 흐를수록 바다를 온전히 타고 있는 거니까.“



‘온전히 타고 있다.’


호수는 무언가에 올라타 본 적이 없었다. 늘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 위에 올라탄 자신을 상상해 보다가도, 분명 좋아하지 않을 거라 짐작하며 먼저 발을 빼곤 했다.


그런데 지금, 바다의 품에 들어와 있다. 얼굴에 짠물이 잔뜩 흐르고, 하나의 얼굴에도 같은 짠물이 흐르고 있다.


"짜다."

"짜지! 당연히!"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는 호수에게 물을 휙 끼얹으며 몸을 돌렸다. 사방에서 붙잡아 오는 물살을 헤치며 도망치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호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도망가는 게 어딨어."

"얼른 와!"


호수는 잠시 가슴께까지 출렁이는 물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중요한 건, 저 아이의 손을 잡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안고 호수는 물살을 딛고 하나에게 성큼 다가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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