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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비련씨 Jul 27. 2023

아련한 애련씨

1 소개글

어디부터 소개를 해야 나일까?

지금은 비슷한 구조 아파트에 비슷한 요소들을 갖춘 집에서 산다. 옛날 그러니까 70-80년쯤엔 모두 다 비슷하게 못살았다. 나는 단칸방 새댁의 예쁜 딸로 태어났다. 자라나면서 아름답고 예쁜 것에 무척이나 집착을 했다. 중학교는 지금도 부촌이라 불리는 이촌동에 있었고 버스로 통학을 했다. 중학교 때 친구집 아파트에 놀러 가 충격받은 적 있다. 집안 향기며 가구며 친구 엄마의 옷과 내온 간식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난 커서 그 동네 집을 사 아이를 길렀다. 내 어린 시절은 모든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살았다. 궁기 흐르는 집과 내가 살던 동네, 좋지 못한 학벌이며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라곤 없었다. 그저 이쁜 아이라는 것 이외에는...


운이 좋게 나는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도 무엇인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서장님이 계셨는데, 나에게 "임대리 공부해야 한다"라며 삶은 길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공부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뵙고 싶은 은인이기도 하다. 나는 편입을 했다.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은사이신 유영만 교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석사를 6년 만에 마쳤다. 석사학위를 갖고 있으면 하나쯤 이룬 사람이 돼있을 줄 알았다.


회사는 딱 두 곳을 다녔다. 첫 직장에서 12년 6개월 근무했고, 다음 회사는 스카우트되어 가게 되었다. 운 좋게 최고의 대기업에서 내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나이 40이 되어서는 내 사업을 해보리라 결심하고 호기롭게 회사를 뛰쳐나왔다.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운전면허 없이 돌아다니는 첫해 여름은 너무나 더웠다. 에어컨 아래서 주 5일 근무하던 내가 뚜벅이로 서울을 돌아다니기엔 서울은 이미 너무나 뜨거운 도시였다. 그때 처음 운전면허를 땄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작은 사무실에 회사라기보다는 lab실 같은 느낌으로 운영을 했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회사를 운영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쪼들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이 늘어야 큰 일을 맡을 수 있고, 사람이 늘 수록 인건비는 제곱으로 늘어났으며 직원의 정서관리라는 것을 신경 써야만 했다. 사람이 늘어나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을 10여 년 넘는 시간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모진풍파를 준비운동 없이 온몸으로 막아내며 배워갔다.


회사에서 직원과 큰 트러블이 발생했다. 직원들이 나를 회사에서 쫓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무엇인가 독자적 역량력을 갖추고 내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수님을 찾아가 박사과정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하고 싶으면 해야지!" 쿨한 교수님의 수락으로 나는 박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6년 반이 걸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았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신 교수님과 함께 공부한 동학 덕분에 무사히 박사를 졸업했다.


나는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다 갖췄다고 남들이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매일이 행복하고 아침저녁으로 꽃길만 걸어야 하는데, 나는 오늘도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성장하지 못한 나를 돌아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직도 소녀 감성이 남아 비 오는 날 혹은 오랜 인연과 소원해진날 어김없이 우울하다며 글을 쓰곤 한다. 봄날 꽃길이 천지가 되면 스무 살 처녀의 마음으로 꽃 따라 여기저기 마실 다니며 봄을 찬양한다. 아직도 일희일비하며 사는 전혀 자라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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