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비련씨 Aug 02. 2023

경매 #1

경매와 게임의 공통점 230802

경매 법정에 두 번 갔다. 한 번은 떨어지고 한 번은 낙찰 받았다. 경매는 작년부터 궁금했었고, 검색을 해보니 '영등포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경매 강좌가 열리는 것을 알았다. 8주 수업을 들었으나 물론 다 배울 수는 없었다. 경매 선생님이 귀찮으실 정도로 이것저것 여쭈어보며 배웠다. 수업시간에 현장 답사차 갔던 경매 현장에서는 전혀 긴박감을 느낄 수 없었다. 타자의 경험을 그저 관람자로서 보는 것일 뿐이니 당연하다.

첫 번째 경매 물건은 생각보다 매우 높은 가격에 낙찰되어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적정한 가격이다. 5월 말에는 집값 하락세라서 보통 2회 유찰은 기본이고 3회 유찰까지도 대부분 갔었다. 아깝게 떨어졌으면 진짜 아쉬웠을 텐데 워낙 차이가 컸고 참가자도 20명이 넘었어서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왔다. 그때는 마치 로또 당첨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했었다.

그러나 점차 집 값이 올라간다고 매스컴이 들썩이면서 경매 낙찰가도 차츰 올라가고 있었다. 매일 검색을 해보고 주말이면 하루에 2-3건씩 임장을 다니곤 했다. 다행히 건물이나 집을 보는 것이 나에겐 즐거움이라 취미생활 하는 마음으로 다녔다. 한 번은 제주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내가 경매를 하게 된 이유는 월세 낼 돈으로 적정한 아파트를 구매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임장을 가 주로 보는 것도, 내가 살기에 좋은 동네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주중엔 피트니스를 다니지만 주말에는 주로 걷기를 하는데 숲세권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산책이 가능한 동네였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다 적정한 물건을 발견했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갔고, 다음번엔 매물이 있어 아파트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 후로도 몇 번 걸어서 가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경매일 전날 '변경'이 떴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다시 경매로 나올 때까지 여기저기 물건지 임장을 다녔으나, 마음은 여전히 그 아파트를 갖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경매일자가 적힌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벌써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경매일 전날엔 서류를 100번쯤 읽어본다. 빠진 서류는 없는지 도장은 제대로 찍었는지 수표 금액은 정확한지... 정말 여러 번 여러 번 보고 나서 가방에 넣고 일찍 잠들었.... 을리 없다. 이 생각 저 생각 잠도 설치고 차를 가지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별것도 아닌 고민을 하다가 아침을 먹고 서둘러 법원에 도착했다. 인기 물건이 많은 날이라 그런지 경매 법정이 미어터졌다. 초짜인 나는 10시에 도착했는데 혹시나 뭘 놓치지 않았을까 귀를 쫑긋 세워 판사님 하시는 말씀을 경청했다. 11:10 입찰마감. 사람들은 분주하게 서류를 작성하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와글와글 시장바닥 같았다. 드디어 입찰마감 후 입찰 봉투를 개봉하고 판사가 경매 낙찰자를 호명하고 떨어진 사람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고 퇴장했다.

입철자가 10명 이상인 물건은 보통 먼저 개봉을 하고, 사람들을 빠르게 돌려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법정안은 더위가 말도 못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일단 3명이 입찰했다. 그런데 서류를 유심히 보는 것을 보니 내가 낙찰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고 어딘지 모르게 전기가 왔으며, 화장실도 갑자기 가고 싶고 다리를 떨지 않는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집을 나와 오후 1시가 넘었는데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목소리도 낸 적이 없었다. 극도의 긴장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배도 안 고팠다.

판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낙찰받은 사람들 표정을 본 적 있다. 엄청 기뻐하지 않는다. 마치 어릴 때 우수상 받으러 나가는 친구처럼 무표정으로 나가곤 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할 겨를 없이 신분증을 내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 영수증을 받아 들고 법정을 나왔다.

경매는 게임 같다. 게임에 참가하면 반드시 승자가 있다. 그리고, 피드백이 무척 빠르다. 큰돈을 걸고 하는 것이므로 쪼는 맛이 엄청나다. 난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의 경험으로 왜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지 이해하게 됐다.

초짜가 경매해서 낙찰받고 입주까지 일어나는 일들을 시리즈로 써볼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련한 애련씨 6.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