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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Aug 02. 2020

괜찮다는 말 좀 그만 할 걸

우울증, 남 얘기가 아니네요

퇴사할까?


스트레스받는 날 우스갯소리로 던지던 말의 빈도수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그냥 지금 퇴사할까?라는 생각이 하루에 수십 번을 스쳤다.


그럼 내가 맡은 일은? 우리 팀은? 이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이 코로나 시대에 내가 갈 곳이 있을까? 이직을 한다고 이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따라오는 수많은 걱정들은 나를 진퇴양난에 빠트렸다. 괜찮아 괜찮아, 나약한 척 게을러지지 말자는 의지와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내가 하던 일도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이 악물고 버텨서 다 이겨버리자는 오기를 동아줄처럼 붙잡고 버티기로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지던 날, 울면서 집에 가던 날, 아침에 눈 뜨는 순간이 욕 나올 정도로 싫던 날, 괜찮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던 날이 있었다.




월요일이었다. 출근 한 그 순간부터 온 몸에 힘도, 의욕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2시간 조퇴를 했다. 꼭 해야 할 일들만 죽을 것 같은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오니 살 것 같았다.


화요일 아침이었다. 회사 앞에 도착했다.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다 못해 숨이 막혔다.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곧 죽을 것 같았다.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데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대로 출근하지 못했다.


바로 병원에 찾아갔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고, 토요일에 예약하려면 3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말에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운 좋게 다음날 예약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무기력함, 불안, 수면장애, 등등을 포함하는 아홉 가지의 척도 중 일곱-여덟 가지에 해당되는 중등도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았고, 9개월에서 1년은 약을 복용하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나 좀 우울한 거 같아 라고 생각해서 우울증에 걸리는 줄 알지만, 우울증은 호르몬과 외부, 심리적인 요인들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발병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일단 약으로 호르몬의 균형을 맞추면 나를 괴롭게 하는 그 많은 증상들이 완화된다니, 약을 빼놓지 않고 먹고, 치료 기간 금주할 것을 의사 선생님과 약속했다.




내가 우울증이라니?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내가 힘든 줄은 몰랐다. 그렇게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과, 인정해버리면 더 무너질 것 같아서 참아왔던 감정들, 남들도 나만큼은 다 어려운 시기 힘든 것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를 몰아세운 것도 있었지만. 더 이상 나 혼자 감당할 수준, 주변의 조언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기어이 그때에서야 알았다.


약은 약이고,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회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더럽게 안 풀리는 코로나 시국, 그보다 화를 축적시키는 주요 요인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했다. 당장 이런 상태로는 마주치는 것도, 같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도, 목소리를 듣는 것도 싫은 사람들과 한 순간도 더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날로 재택근무와 휴직을 신청했다. 전에는 즐거움 때문에 일을 했는데, 미움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얘기 없이 '엄마 나 있잖아'라는 한 마디로 말을 시작했는데, 엄마는 대뜸 '회사 그만뒀니?'라고 물었다. 눈물이 왈칵 나면서 목이 메었다. 이후 바로 본가로 내려왔다.


우울증 진단 증상 중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마지막 9번째 증상이라고 했다. 내가 유일하게 해당되지 않은 증상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인간관계들을 뒤로하고,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서울을 벗어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쓴다. 옆엔 언니가 왜 갑자기 왔는지 영문을 모르지만 너무 좋다는 강아지가 보송보송 만져지고, 아빠가 볶아 만든 커피는 어느 카페보다 맛있다. 느리고 조용한 주말, 내일의 걱정이 없는 일요일이 얼마만인지. '젊었을 때에는 워라벨 그런 거 좀 무시하고 열심히 살아도 돼' 어디서 들은 이 말에 꽂혀서는 한참 일에 빠져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생각난다. 아직은 놓지 못하고 있는 욕심들과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은 당황스럽고 몸과 마음은 무기력하지만, 앞으로 차차 나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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