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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Aug 18. 2020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제대로 찾을때가 됐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다 재미가 없어."


최근에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자, 주변에서 생각보다 자주 듣는 말. 회사 자체가 스트레스라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은 나머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내가 제일 자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다른 모든 것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나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온 몸의 기운이 쭉쭉 빠졌다.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예민함이 극에 달하자 그간 바빠서 의식도 하지 않고 살던 인간관계들이 잔물결처럼 밀려들어서는 자꾸만 신경을 곤두서게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내쪽을 향해 내비치는 적대적인 분위기는 밀물 차듯이 내 감정을 잠식해왔다. 그 쯤 몸이 자꾸 아팠다. 없던 알러지가 생겨서는 에어컨만 켜면 비염때문에 고생해야했고, 속이 좋지 않았고, 이곳 저곳 죽을만큼 아프지 않아도 귀찮은 정도의 증상들이 나타났다.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일들이 생겼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싫어진다는 것은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과 같았다. 목표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일이 없이 오늘을 즐기는 것과 목표가 없기 때문에 오늘만 사는 것은 같은 말이면서도 심적으로는 큰 간극이 있다. 아무것도 즐겁지 않았고 이 상황에 점점 더 지쳐가면서도 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그 어떤 노력도 하고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우울증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온 몸이 제발 나를 위해 그만하라고 애원하고 있었음을 나는 이제 와서 깨달았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해줬다. 스트레스는 개인이 가장 약한 부분에서 병이 되어 나타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암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심장병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암과 심장병 치료를 하지, 그 스트레스를 없애는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의 저하로 그 스트레스가 모습을 나타낸것이라 병원에서는 호르몬약을 처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신 호르몬을 정상으로 되돌리면서 어떠한 스트레스나 충격에도 쌩쌩한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날 수 있도록 맷집을 키워주는것이 병원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결국 지금의 내 병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스트레스를 절대적인 해소를 하는 것은 병원의 역할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해나가야한다는 의미였다.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고, 세상에 싫은 것들만 가득한데 행복할 리가 없다. 아마 이대로라면 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또 다시 힘들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의 밸런스를 맞추면 좋아지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면 이제부터 찾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모든 것이 하기 싫은 와중에도 하고 싶던 것, 가볍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내 경우에는 다소 두서없더라도 무엇인가 쓰는 것이었다. 편지, 일기, 등등.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 생각을 끊김 없이 글로 풀어내고 편집하기를 좋아한다. 타자를 칠 때의 타닥타닥한 소리와 감촉을 좋아한다. 마음껏 지우고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간이 좋고, 아무 것도 없는 공백을 채워나가는 글을 좋아한다. 어떤 표현이 좋을까 단어를 골라보고, 반복되는 어구를 수정해가면서 내가 본 것을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고 내가 느낀 것을 좀 더 와닿을 수 있도록 써내려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 아니다. 흐름이 중요하고 논리가 중요한 나에게는 말을 하는 것 보다 글을 쓰는 것이 항상 편했다. 와르르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들을 글로 늘어놓고 나면 갑갑한 마음이 탁 풀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써보자. 싫어하는 것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니 글이 어려워졌고, 내 경험을 어디까지 얼마나 오픈해야 할지 모르겠고, 결국은 쓰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은 글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 어렵지 않고 술술 써지는 글, 내가 관심이 있는 사람, 동물, 물건, 장소, 분위기, 모든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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