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4월 첫 번째 주말 일상 누적

누적3

by 영화로운

1분 1초가 아까워 소중하게 쓰는 4월 첫주, 봄꽃이 가득한 주말 일상.


매일 6시에 눈을 뜨는 부부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도 7시이다. 7시부터 남편이 해주는 계란죽을 먹고 하루를 시작! 오후에 엄마아빠, 동생과 꽃놀이를 위해 수원에 있는 만석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밤새 내내 비가 왔지만, 엄마 말대로 꽃이 워낙 튼튼해서 다 떨어지기보단 더 많이 피워내는 대단한 역할을 했다. 산을 타고 갈까 하다가 도저히 체력이 안 될것 같아서 평지로 걸어가보기로 했다. 도심 곳곳에 핀 꽃이나 구경하면서. 그 선택이 옳았다. 세상에 벚꽃이 지천이다. 개나리, 목련, 벚꽃과 추울때 살짝 피고 지는 진달래까지, 꽃이 지천이라 한 해 중 가장 행복한 날.


걸어 가는 길에 야생에 사는 꿩을 목격했다. 조선시대 배경 영화에서나 봤던 꿩이 찻길 가 나무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놀라워라.


걷다보니 광교 카페거리 등장. 몇년 전 와본 기억에 잠깐 들렀더니 아기자기하고 너무 예뻤다. 카페 하나에 앉아 커피 대신 맥주와 감튀를 하나 시켜서 벚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뷰를 구경한다. 귀여운 강아지와 신난 어린이들, 가족과 커플들의 즐거운 토요일 표정을 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해외여행보다 더 여행같은 낮시간.


호수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지나온 곳들도 꽃으로 가득했는데, 이 곳은 명소라고 유명해서인지, 벚꽃보다 사람 머리수가 더 많을 수도 있을것 같다. 엄마아빠, 동생, 강아지, 남편과 함께 온 식구가 한바퀴 걸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 들썩이는 분위기도 벚꽃철에 놓칠 수 없지. 미리 예약해둔 식당에서 고기와 술을 신나게 먹고, 저녁에는 불꽃놀이와 드론쇼를 감상했다.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전 남친이 다시 연락해온 것이다. 헤어지고 이사람 저사람도 만나봤지만 딱히 마음 줄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상황에서 오랜시간 함께했던 사람의 연락이 어땠겠는가. 다시 잘 해볼 수 있을것 같고, 즐겁고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 모두가 만류했다. 헤어진 이유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외부적인 요인도 아니고, 동생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너무 다쳐서 나중엔 신체적인 반응으로까지 표출되게 만든 히스토리가 있었다. 내 동생도 딱히 보살같은 사람이 아니다. 물처럼 흐르는 것처럼 보여도 연약하고 예민하면서도 아주 명확한 심지가 있다. 세모난 사람을 오랜시간 껴안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뾰족한 부분에 다치고 있던 것이었다. 눈물을 쏟았고, T가족은 T 방식의 위로와 의견을 전달했다. F인 남편은 혹시나 듣는 처제가 상처받을까 부드럽게말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동생은 고맙다고 말했다. 잊고 있었던 옛 사건들도 이제야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그럼에도 동생이 다시 만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얼마 안가 다시 헤어지리라는 것도 보였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일요일은 날씨가 더 좋았다. 하늘에 구름한 점 없었다. 밤에 번개가 그렇게나 치고 비가 그렇게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절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멋진 날이었다.


아침으로 남편이 해준 밥을 먹고 오늘은 자전거 라이딩을 나가보기로 했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나가는 라이딩. 날이 추워진 이후로 처음 타는 자전거! 탄천을 따라 달렸다. 보정동 카페거리와 오리역에서 무지개마을 사이의 탄천 구간이 최고였다. 여유로운 사람들, 아직은 덜 핀 벚꽃과 연둣빛 새싹이 가득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환상적인 곳이었다. 이쪽 라이딩은 좁은 길이 나오거나 사람들이 꽤 많아서 한강 라이딩과 달리 빨리 달리기는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꽃구경에는 최고였다.


집에 돌아가서 씻고 다시 걸으러 나왔다. 집 근처 벚꽃들은 해를 많이 봐서인지, 동네가 조금 더 따뜻해서인지 이제 막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록잎도 살짝 나오기 시작했다. 커피와 딸기라떼를 사들고 산책을 했다. 달달한 딸기라떼 맛이 벚꽃잎을 먹는 듯 했다.


벤치에 앉아 문득 든 생각. 예전에는 벚꽃 근처에 벌들이 너무 많아서 가까이 다가가 사진찍기가 무서울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어째 하나 보이면 너무 반가울 정도로 벌이 없었다. 우리동네만 그랬을까? 기이하다.


지나가다 괜찮은 정육점에서 육회거리를 사들고와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하정우가 제작한 "윗집 사람들" 이라는 영화를 봤다. 연극같은 영화였는데 진짜 연극은 아닌 것 같았고,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 싶은 대화가 오가는... 그런 영화였다. 진득하게 감상하기 보단 가볍게 보고 지나갈만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인테리어였다. 모든 영화의 배경이 주인공 부부의 집이다보니, 어찌나 인테리어에 신경썼는지 뒤에 걸린 그림 하나하나와 곳곳에 가득한 식물들, 가구와 그릇 하나까지 너무 예뻐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밖을 또 다시 한바퀴 걷고 돌아와 유튜브를 보고 있으려니 창밖이 번쩍이며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시기가 시기인 관계로 정말 무슨 일이 난 것은 아닐까 갑자기 네이버 속보창을 켜보기도 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하늘이 번개로 수십갈래로 갈라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번개와 천둥소리, 난간을 때리는 빗소리를 asmr삼아 잠이 들었다.


알찬 주말이었다. 비를 듬뿍 맞은 밤이 지나 내일이면 여름이 더 가까워져오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