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2
매일 쓰는 것에 의의를 두기.
내일 꽃놀이를 가기로 했는데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이럴수가. 속상해 하면서 전화를 했더니 엄마왈, 꽃이 너무 싱싱해서 비가 와도 다 안떨어질거란다. 출퇴근 길에 내내 벚꽃 구경을 실컷 했다. 다만 꽃도 행복해야 예쁘다. 요즘 유독 일이 힘들어 낯빛이 회색인 남편 옆에서는 벚꽃도 회색이다. 출근 길에 역 앞에 내려준 남편 뒷모습이 왜 이리 짠한지. 저녁은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방탕하게 보내봐야겠다.
금요일이다. 날이 따뜻해지니 아침에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우왕좌왕하다가 늦게 출발했다. 다행히 길에 차가 별로 없었다. 회사까지 30분도 안걸렸다. 이게 무슨일이람.
점심에는 20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 다들 창백한 빌딩숲 사이에 새초롬하게 꽃을 피운 아기 벚나무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내일 비올거라는 소식을 듣고 냉큼 반차를 써버린 팀원도 있었다. 이런 날에는 올림픽 공원에 가고싶다. 몇 해 전, 올림픽 공원과 성내동 사이의 벚꽃 길을 나는 혼자 여러 번 걸었다. 백예린이 부르는 '돌아가자'라는 곡을 반복해 들으며 혼자서 여러번 오가다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가장 불안정하던 시절의 나는 그 길에서 이상하게 위안을 받았다. 어찌 되든 눈앞이 캄캄하더라도 잘 될거라는 이상한 위안을 주던 벚꽃길. 나도 이런 날에는 후다닥 반차를 쓰고 혼자 걷고 오곤 했었는데, 올 해는 못 가볼 것 같아 아쉽다.
오늘은 미뤄왔던 보고서를 쓰는 날이었다. 예전에는 하루종일 머리 끙끙대며 고민을 100번 했어야 하는 보고서인데, 클로드와 제미나이, GPT까지 총 동원하고 나면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참 좋아진 세상이다. 그렇게 생각보다 보고서가 술술 풀려서는 기분이 좋아져서 팀원들에게 커피도 한잔씩 샀다.
다른 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이런 자리는 늘 어렵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색하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내 모습으로 대한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자리가 흥미로웠다. 가족에 대한 비슷한 감정과 일상 이야기가 오갔다. 다들 어떻게 버티면서 보낼까, 생각했는데 8할이 가족인것 같았다. 아이가 있다는 건 버티게 만들어 주는 뭔가가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죽겠어도 버텨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일까, 둘 다일까.
오늘은 아픈 손가락같은 후임을 좀 예쁘게 봐주기 위해 대단히 노력을 했다. 뜯어보지 않으면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루가 갔다. 마음의 평화는 역시 내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앤드루 맥코널의 '결국 잘되는 사람들의 태도' 라는 책을 읽고 있다. 틀린 말이 없다. 구구절절 길지만 기억나는 것만 메모해본다. 바꿀수 있는 것과 바꿀수 없는 것을 구분할 것, 비판을 받아들일것,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보면 답이 보이고, 그렇게까지 두려울 것도 없다는 것...
뭔가를 써내고, 읽으면서 새로 채우는 작업을 딱 하루 했을 뿐인데 뭔가 일상이 충만해진 느낌이다. 쓰고 읽지 않는 동안 복잡한 머릿속을 비운다고 휘발성 높은 숏츠와 릴스에 시간을 다 써버렸다. 그걸 덜어내고 나니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뭘 할건지, 뭘 해야하는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이 오고 있으니 오늘의 일상 누적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