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4
정신이 하나도 없는 회식자리도 있었고, 멀뚱히 보낸 저녁도 지나 목요일이 왔다. 출근길에 1960원 하는 경유를 5만 원어치 넣었다. 이 정도면 가득 찼어야 맞는데, 두 칸이나 빈다. 무섭다 기름값. 전쟁이 휴전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누가 이겼다는 건지 초등학생이 싸워도 이 정도로 유치하지는 않겠다 생각이 드는 반면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피를 흘렸다. 유가의 영향이 없는 곳이 있겠냐 만은 직격타를 맞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두렵기도 하다. 코로나도 3개월이면 괜찮다 했는데 3년을 갔듯이,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더 격하게 때릴까 봐 두렵다.
날이 다 풀렸나 싶었는데 어제오늘은 꽤나 추웠다. 오늘은 비도 내린다. 좀 널널한 일주일을 보낼 줄 알았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어떤 것은 생각보다 안 풀리고, 어떤 것은 생각보다 답답하게 막혀 있는 한 주. 정말 오늘만큼은 아무도 날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하루도 다 지나서 내일이면 금요일이다.
유독 남편의 기운이 없었다. 그런 지 몇 주 됐다. 아니 몇 년이 됐을지도. 그렇게 힘들다면 괜찮으니 그냥 그만두라는 말이 입에서 결코 나오지 않아 미안했다. 이럴 때는 더욱 다독여줘야 하는데, 왜 나는 자꾸 이럴 때 냉정해지기만 하는 걸까. 내가 실감할 정도로 문제 앞에서 나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문제의 현실적인 서늘함보다 내가 더 얼음 같아져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인가. 현실적인 대책을 이야기해 보다가 괜히 화도 났다. 이렇게 되기까지 왜 알면서도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더 이상 아 몰라하고 하던 일을 당장 그만둘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오늘의 취업시장은 더욱 지옥이라 대안 없이 그만두었다간 평생 쉴지도 모른다. 둘 다 대단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기엔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집도 있고, 책임져야 할 서로가 있고, 아직 다 결론 내지 못한 과제도 있는데. 그런데 왜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에 화가 났다. 힘들고 지쳤다는 사람을 두고 화가 나다니, 마음이 힘들면 대안이고 뭐고 사실 어떤 상태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나 자신이 어찌나 좁아졌는지 알 것 같았다. 미안하면서 마음이 아프면서 동시에 속이 상했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봄비가 촉촉하게 적시는데 속은 버석버석하게 건조해져 갈라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