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의 일상누적
집안에 식물이 가득해졌다. 곧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나오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 그 영화를 보던 10년 전쯤의 나는 도대체 집 안에 식물을 두는 이유를 몰랐다. 일단 엄마 아빠가 식물의 식자도 몰랐다. 어릴 적 나와 동생에게 하나씩 키워보라고 화분을 선물해주셨던 것이 분명한데, 언제부터 그 화분들은 금방 죽고 흙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던 나는 식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식물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시어머니를 만나 그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하나씩 들여온 화분에서 여리고 보드라운 새 잎이 돌돌 말린 채 피어나는 광경을 보면서 푹 빠지게 되었다.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주어서도 안되고, 너무 직사광선을 쐬어서도 안 되는 식물의 적당함을 자세히 살펴가며 돌보는 일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일 줄이야. 주말에는 경기도에 있는 대형 화훼단지에서 하나하나 구경하는 것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다름 아닌 보스턴 무늬 고사리다. 초록잎에 새겨진 무늬가 너무 예뻐서 잘 모르면서 냉큼 데려와버렸는데, 잘 키우면 거대한 폭포처럼 가지를 드리우고, 잘못하면 뿌리가 썩어 금방 죽을 수도 있다는 식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쁜 잎이 마르기 시작했다. 물이 부족해서인가? 물을 조금씩 자주 주지 말고 한 번에 온 흙이 젖도록 주라는 말을 듣고는 또 그대로 했더니 흙이 계속 축축했다. 뿌리가 썩었나?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보스턴 무늬 고사리의 잎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식물도 바람이 필요하다는 것.
냉큼 바람이 가장 잘 드는 방에 창을 열고 창가에 두었다. 잎 위로 분무기를 착착 뿌려주고, 약간은 시린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잎을 바라보았다. 내 착각이겠지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살겠다!
그렇게 하루 한 번은 창을 열고 고사리 화분을 창가에 두게 되었다. 창가에 앉아 인간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고양이 같은 모습이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 나는 좋았다.
바람을 쐬어야 해. 물도 중요하고, 햇빛도 중요하지만.
남편을 보며 안쓰러움과 상황의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는 나는 어젯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좋은 환경과, 괜찮은 연봉과, 안정적인 집이라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생기가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그늘이 들어 석회가 끼듯 색이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참 못할 짓이었다. 어제는 분명 좋은 말 좋은 생각을 하기로 했는데 나도 겁이 났다. 이대로 더 좋은 상황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안정적인 기반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계획을 세워놨던 것들이 갑자기 올스탑이 되어서겠지, 내가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불안한 것은.
팔 걷어붙이고 당장 해결해버리고 나서 이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싶은 시기다. 답답한 마음에 취업시장도 내가 나서서 찾아보고 남편에게 가져가 들이밀어볼까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게 아닌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을까, 다시 물러난다. 아니다, 밀어붙이지 않기로 한다. 남편이 다시 살기 위해서는 내가 아는 세상의 몇 가지가 아니라 다른 것이 더 필요한 것이겠지. 시원한 바람과 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생각하면서.
참 어렵다. 언젠가 지나갈 시기겠지만, 막막한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