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시작해서 찐으로 끝나는 2026, 우리는 지금

트렌드코리아 2026

by 송윤환

지난주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ChatGPT한테 고민 상담 엄청 해요. 진짜 위로가 되더라고요." 2023년만 해도 AI에게 아이디어를 물었던 우리가, 이제는 감정을 털어놓고 있다.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참 묘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AI가 모든 걸 대신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진짜'를 찾아 경복궁을 찾고, 클릭 한 번 하기 귀찮아하면서도 달걀의 난각번호는 꼼꼼히 확인한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사실은 하나의 큰 흐름 속에 있다는 걸, 트렌드코리아 2026의 10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1. 휴먼 인 더 루프 : AI 시대의 필수 안전장치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마지막 판단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최근 한 금융회사에서 AI가 추천한 대출 심사 결과를 그대로 따랐다가 큰 문제가 생긴 사례가 있었다. AI는 데이터는 잘 분석하지만,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를 판단하지 못한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AI가 초안을 작성하면 사람이 최종 검토'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법률 문서를 AI로 작성하는 로펌도 반드시 변호사가 검토하고, 의료 진단 AI도 의사의 최종 판단을 거친다. 한 루프 안에 최소 한 번은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 이것이 바로 '휴먼 인 더 루프'다.


2. 필코노미 : 기분이 지갑을 연다

"기능은 다 비슷해요. 근데 이게 기분이 좋아서요."

요즘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넷플릭스에 '우울할 때'를 검색하면 맞춤 콘텐츠가 나오고, 스포티파이는 '월요병 날려버리기'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한다. 감정이 검색어가 되고, 기분이 소비의 이유가 됐다.

더 놀라운 건 AI 활용 패턴의 변화다. 2023년에는 "보고서 작성해줘", "기획안 써줘" 같은 실용적 프롬프트가 많았다면, 2025년 현재는 "오늘 너무 힘들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감정 상담 건수가 압도적이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팔면 "거래 완료 후 기분이 어떠셨나요?"라는 메일이 온다. 헤이딜러도 비슷하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분까지 케어하는 시대. 이것이 필코노미, 기분경제다.


3. 제로클릭 : 클릭이 사라지는 세상

아침에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날씨, 뉴스, 오늘의 할 일이 푸시 알림으로 떴다. 검색할 필요도, 클릭할 필요도 없었다. 구글은 검색어만 쳐도 답을 바로 보여주고, 아마존은 다음에 살 물건을 미리 추천한다.

문제는 클릭이 사라지면 광고 시장이 흔들린다. 탐색과 비교가 생략되면서 마케팅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검색 결과 1페이지'가 아니라 'AI 추천 첫 번째'다.

쿠팡은 이미 이 흐름을 읽었다. '로켓와우' 회원에게는 AI가 분석한 구매 패턴으로 상품을 먼저 제안한다. 클릭하기도 전에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세상이 곧 온다.


4. 레디코어 : 준비하는 사람들

"요즘 애들 노션 장난 아니에요. 데이트 코스도 노션으로 공유하더라고요."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 철저히 준비한다. 즉흥보다 계획, 우연보다 예약. 이것이 레디코어 라이프스타일이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노션은 단순한 메모 앱이 아니다. 여행 계획, 독서 기록, 재테크 관리, 심지어 인간관계 정리까지 노션으로 한다. 한 대학생은 "중간고사 4주 전부터 공부 계획을 노션으로 짜고, 매일 진도를 체크해요"라고 했다.

예약 문화도 폭발적이다. 마라톤 접수는 끊임없이 광클릭을 해야 입장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인기 있는 프로야구 경기는 선예매를 넘어 선선예매 방식까지 도입했다. 핫한 레스토랑은 최소 2주 전 예약이 기본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를 잡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5. AX 조직 : 빠름이 경쟁력이다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신제품을 내놓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8개월이다. 그런데 한국 뷰티 기업은 3개월에서 6개월이면 충분하다. 어떻게 가능할까? AI 기반의 유연한 조직 구조, 즉 AX(AI Transformation) 조직 덕분이다.

한 화장품 회사는 AI로 트렌드를 분석하고, 실시간으로 소비자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의사결정을 즉각 실행한다. 예전엔 여러 부서를 거쳐야 했던 일을 이제는 하루 만에 해치운다. Gen Z 소비자들이 한국 뷰티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속도감이다.

IT 스타트업들은 이미 한 발 더 나갔다. 분기마다 조직을 재편하고, 프로젝트마다 팀을 새로 구성한다. 직급보다 역량, 연차보다 속도가 중요한 시대다.

unnamed (9).jpg 매년 겨울이면 트렌드코리아 강연회에 꼭 참석한다. @ Dec 7, 2025

6. 픽셀 라이프 : 조각난 경험들

30분짜리 드라마가 인기다. 숏폼 콘텐츠는 15초로도 모자라 이제 5초 컷이 대세다. 대용량 샴푸 대신 소용량 세트를 사고, 한 브랜드에 충성하기보다 이것저것 '찍먹'한다.

이것이 픽셀 라이프다. 길고 깊은 경험보다 짧고 조각난 경험을 선호하는 시대. 한 카페 창업자는 "요즘 손님들은 한 메뉴를 끝까지 마시지 않고 여러 메뉴를 조금씩 맛보려 한다"고 말했다.

OTT 플랫폼들도 이 변화를 읽었다. 넷플릭스는 배속 재생을 기본 기능으로 제공하고, 유튜브는 챕터 기능으로 원하는 부분만 골라 볼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충성도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한 브랜드가 고객을 붙잡아두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7. 프라이스 디코딩 : 가격의 비밀을 풀다

"이 커피가 왜 8,000원이죠?" "원두 원가 2,000원, 인건비 1,500원, 임대료..."

요즘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가 '원가 분해' 영상이다. 햄버거의 원가, 스니커즈의 제조 단가, 명품 가방의 실제 가격을 낱낱이 밝힌다. 조회수는 수백만을 훌쩍 넘는다.

소비자들이 똑똑해졌다. 마트에서 달걀을 살 때 난각번호를 확인하고, 닭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항생제를 먹였는지까지 따진다. 한 식품 회사 마케터는 "이제 비싸기만 해서는 안 팔린다. 왜 비싼지, 그 가격이 정당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을 해석하는 소비자, 이것이 프라이스 디코딩이다.


8. 건강지능(HQ) : 관리하는 능력이 곧 자산

40대 직장인 A씨는 매년 100만 원을 건강관리에 쓴다. 헬스장 회비, 영양제, 정기검진 비용이다. "건강을 잃으면 돈을 벌 수가 없잖아요. 이건 투자예요."

요즘은 단순히 화장품 바르는 수준을 넘어 의료적 관리가 일상화됐다. 20대가 눈밑 지방 재배치를 받고, 30대가 모발 이식을 고민한다. '동안 성형'은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라 하나의 자기관리 방법이 됐다.

헬스케어 앱들도 진화했다. 삼성헬스는 수면 패턴, 심박수, 스트레스 지수까지 분석해 건강 점수를 매긴다. 애플워치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감지하면 병원 방문을 권유한다. 건강을 관리하는 능력, 즉 건강지능(HQ)이 새로운 경쟁력이 된 시대다.


9. 1.5가구 :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1인 가구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에요. 친구들이랑 자주 모이고, 필요할 때 함께하죠."

1인 가구는 과거와 같이 더 이상 '임시' 상태가 아니다. 임시로 잠깐 머물다가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2인 3인가구의 과정이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하나의 확고한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그렇다고 완전히 고립된 것도 아니다. 필요에 따라 연결되고, 원하면 분리되는 유연한 형태. 이것이 1.5가구다.

이 변화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낳았다. 강아지 유치원은 1인 직장인들이 일할때 유치원에서 낮잠을 자고 함께 퇴근하고, '혼놀' 전용 카페는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을 제공한다. 여행사들은 '혼행족'을 위한 1인 패키지를 내놓고, 레스토랑들은 '혼밥' 좌석을 따로 마련한다.

한 1인 가구 연구자는 "이제 1인 가구는 불쌍한 게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시간과 함께하는 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새로운 가구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10. 근본이즘 : 진짜를 찾아서

주말, 경복궁에 가봤더니 20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경주 불국사도 마찬가지다. AI가 모든 걸 대신해주는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진짜'를 찾아 나섰다.

한 대학생은 "AI한테 물어보면 답은 나오는데, 뭔가 와닿지 않아요. 직접 보고 느껴야 진짜 아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는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가공식품보다 유기농, 화학조미료보다 천연 재료. 맛집 검색도 '50년 전통', '3대째 운영' 같은 키워드가 인기다. 한 식당 주인은 "요즘 젊은 손님들이 오히려 전통 방식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AI로 시작해서 찐으로 끝나는 2026.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진정성과 본질로 돌아가려 한다.


모순 같지만 모순이 아닌

이 10가지 트렌드를 보면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다. 클릭조차 귀찮아하면서 난각번호는 확인하고, 짧게 소비하면서 깊이 있는 경험을 찾고, AI에 의존하면서 사람의 판단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효율과 감성, 속도와 본질,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 우리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다.

당신은 이 10가지 트렌드 중 어디에 가장 공감하는가? 어쩌면 당신도 모르게, 이미 이 흐름 속에 있을지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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