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묻는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우리는 오랫동안 “무엇을 배웠는가”로 평가받는 사회에 살았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전공을 했는지, 무엇을 얼마나 오래 공부했는지가 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설명하는 가장 간편한 기준이었다. 지식은 희소했고,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했다.
하지만 AI의 등장은 이 오랜 전제를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흔들고 있다.
AI는 이미 방대한 지식을 거의 무료에 가깝게 제공한다.
어떤 개념이든 설명해주고, 코드도 짜주고, 보고서 초안도 써준다. 예전에는 수년간의 공부와 경험이 있어야 접근할 수 있었던 정보들이 이제는 질문 하나로 손에 들어온다.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다.
‘아는 것’ 자체는 더 이상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
지식의 가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식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어떻게 쓰는지, 어떤 맥락에서 연결하는지, 그리고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다.
AI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다. 일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직무가 비교적 명확했다. 기획자는 기획을, 개발자는 개발을,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했다. 하지만 AI는 이 경계를 빠르게 흐리고 있다. 기획자는 데이터를 다루고, 개발자는 기획을 이해해야 하며, 디자이너는 기술적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
그 결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도 변하고 있다.
단일 기술에 특화된 사람보다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문제를 정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정답을 외우는 사람보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 아는 사람
경제적으로도 변화는 분명하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는 빠르게 자동화되고, 반대로 문제 설정, 의사결정, 창의적 판단이 개입되는 영역의 가치는 높아진다. 이는 일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역할의 재편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대학 교육의 역할을 묻게 된다.
대학은 오랫동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 지식 전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이론보다, AI가 설명해주는 것이 더 빠르고 친절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의미해질까? 그렇지 않다. 다만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대학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해봤는지,
어떤 문제를 다뤄봤는지,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훈련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정답이 있는 시험보다, 실패가 허용되는 프로젝트, 암기 중심의 평가보다, 협업과 실행 중심의 경험, 전공 지식보다, 맥락을 이해하는 힘, 이런 것들이 대학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할 줄 안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 숙련을 의미하지 않는다. 툴을 다룰 줄 아는 것만으로는 AI보다 나을 수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능력이다.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AI를 도구로 활용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불완전한 상황에서 판단하고 책임지는 능력
맥락을 이해하고 사람과 사회를 고려하는 능력
AI는 답을 만들어주지만, 어떤 답이 필요한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배운 것이 적다고 느껴졌던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학벌과 스펙에 의존하던 사회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무엇을 전공했는가? →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 무엇을 만들어봤는가?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가? → 그 지식을 어떻게 쓰는가?
AI 시대는 우리에게 더 냉정하지만, 동시에 더 공정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해본 사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