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예민한 며느리의 속마음
나의 시어머님은 고부간 경계를 명확히 하시고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시는 분이다. 나에게 시댁 식구들의 생일이나 기념일 등을 챙기라고 권하시지도 않으시고 며느리의 밥상을 기대하시지도 않으시며, ‘며느리가 이런 날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거의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주변에도 우리 어머님은 신여성 어머님상이라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시댁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의 아버지의 말처럼 나는 정 없고 못된 사람일 수도 있겠다.
며느라기 시절, 나는 의식적으로 어머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곤 했다. 딸 같은 며느리는 허상이지만 적어도 친근하고 살가운 며느리 정도는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족행사의 일정이라든지, 할머님의 용돈과 같이 우리가 챙겨야 할 부분이 있을 때 사안은 늘 남편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일들이 반복되며 나는 괜스레 서운해졌다. 나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집안의 일에 대해 어머님과 같이 상의하는 며느리가 되고 싶던 며느라기였나 보다. 친근한 고부 사이를 바랐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님은 늘 우리가 적당히 거리감 있는 어려운 고부 간이라는 것을 표현하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내가 어렵게 느낄까 봐 어머님 나름의 선을 그으시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는 배려였을텐데, 우리가 생각하는 선의 개념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우리 고부간은 세대 간이나 지역 간의 문화, 집안의 분위기가 모두 다르고 또한 결정적으로 시어머님과 며느리라는 입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가 생각하는 가족 간의 경계, 생각하는 고부간 모습의 이상형 등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부분에 대해 진솔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기회도 갖지 못했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나의 생활이 바빠지기도 했고, 육아에 대한 어머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점점 안부전화를 하는 횟수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또한 남편도 워낙 가족 행사를 세심하게 챙기는 편은 아니라, 먼저 나서서 착하고 성실한 며느리를 자처하고는 무심한 사위인 남편에게 서운해하며 부부관계를 악화시키느니 남편이 친정 식구들한테 하는 만큼 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아마 그런 내가 나의 시댁 식구들에게는 B급 며느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생활은 몇십 년 동안 다른 가정의 문화에 익숙해진 두 사람이 결합하여 조율해 나가는 생활이다. 나 또한 우리 집과 시댁 간 문화 차이를 조금씩 느끼는 일들이 생겼는데, 특히 나의 부모님은 내가 무엇을 결정할 때, 내가 잘 생각해서 결정했을 것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시고 시부모님은 결정 과정에서 서로 의논하고 조언해주기도 하는 스타일이셨다.
결혼 준비 기간에 웨딩홀들을 함께 둘러보고 시댁에 간 적이 있다. 한참을 부모님께 여러 웨딩홀의 비용, 조건 등 구체적인 부분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신랑과 그 말을 듣고 어떤 웨딩홀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시부모님을 보며 혹시 신랑이 마마보이는 아닌가, 염려되는 면도 있었고 무뚝뚝한 나의 경상도 가족들보다 화목해 보여서 보기 좋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다른 환경 때문인지, 아이를 낳고 나와 남편, 아이. 이렇게 내 가족의 영역이 더 커지고 굳어지면서는 나의 선과 어머님의 선이 어긋나는 느낌이 자주 찾아왔다. 소소한 일들이지만 솔직한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넘어가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여러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커져 크게 자리 잡게 된다.
내 마음속 눈덩이들을 끄집어내어 써본다.
☹ 아이 옷은 엄마가 입히면 안 될까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바디슈트를 자주 입히게 되는데 특성상 다리가 훤하게 드러난다. 그 옷만 입히면 긴바지를 찾으시는 어머님 덕에 아직도 다른 아기들의 바디슈트를 볼 때면 그 생각이 난다. 아직 늦더위가 있을 무렵인 9월, 4개월쯤 된 아이와 함께 시댁을 방문하였다. 늘 그렇듯이 어머님은 긴 바지를 찾으셨고 날이 더워 따로 챙겨 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자 스카프로 아이의 몸을 둘러주셨다. 아이는 낮잠시간이 되어 잠투정을 했고 빽빽거리며 울다 보니 땀이 흥건해졌다. 어머님은 부채를 꺼내시더니 아이의 얼굴에 부채질을 하셨고, 나는 공갈 젖꼭지를 물렸다.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고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 거봐, 더워서 잠을 못 잔 거야.
긴 바지를 찾으며 굳이 아이 다리에 둘러주던 스카프는 무엇인지, 나는 묻지 못했다.
사실, 공갈젖꼭지를 진즉 물렸다면 아이는 더 빨리 잠들었을테지만 더운 늦여름날, 나는 왠지 온가족들이 모인 시댁에서 아이를 좀 더 울게 놔두고 싶었다.
☹ 아이 헤어 스타일은 미용사에게 맡기면 안 될까요?
아이의 배냇머리를 시작으로 늘 아이의 아빠가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런데 네 살쯤 되니 우리의 기술로는 영 멋이 살지 않았고, 미용실에서 전문가의 손길을 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미용실 가는 것을 아주 싫어한지라, 자주는 가지 않았고 아주 많이 길러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갖은 사탕과 초콜릿 등 유인수단을 사용하여 미용실에 데려가곤 했다.
시댁에 며칠 간 아이가 가서 지냈던 적이 있는데 영상통화를 하다 보니 앞머리 헤어라인이 삐뚤빼뚤한 것이 한 눈에도 쉽게 띄었다. 당시 아이 머리가 미용실에 가야겠다, 싶을 정도이긴 했는데 이를 답답하게 여긴 어머님이 집에 있는 주방 가위로 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신 것이다. 다시 시댁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렇게라도 자르니 시원해 보이고 좋다며 웃으셨다.
시원해 보인다고요? 이 정도면 벌칙 수준 인걸요.
결국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미용실에 데려갔고, 미용사 아주머니는 삐뚤한 옆머리를 보시곤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샴푸하고 한 번 더 손을 봐주셨다. 내가 잘랐다고 생각하실까 봐 할머니가 이렇게 자르셨다고 변명하며 호호, 하고 멋쩍게 웃었다.
☹ 아이의 안전은 지켜주세요.
어느 봄날, 시어머님께서 우리 집 근처 지역으로 나들이를 오셨다가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서 며칠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맞벌이로 바쁜 우리들도 마침 그 제안이 감사했고, 할머니를 좋아하는 아이도 아주 좋아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어머님을 뵙기로 했고 아이의 장난감, 옷 등 짐 한 보따리와 카시트를 챙겨 보냈다. 돌아온 남편의 차에는 카시트가 그대로 실려있었다. 어머님 차에 설치하려는 데 어머님이 괜찮다고 그냥 안고 간다고 하셨다며,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하는 남편. 3시간을 넘게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거리인데, 이 날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며칠 후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안. 전. 제. 일.
☹ 저도 쉬고 싶어요.
통영으로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음날이 마침 아가씨의 상견례가 예정되어 있었고, 근처 지역에서 다 같이 하루를 묵고 가기로 했던 것이다. 통영에서 유명한 충무김밥과 회를 포장해와서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막 두 돌 무렵이던 아이에게 회를 주지는 못했고, 충무김밥과 집에서 싸온 인스턴트 카레를 먹이려던 참이었다.
아이는 어른들이 먹는 회가 궁금했던 건지, 먹고 싶다며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나는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들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아이가 먹고 싶어 한다며 회를 익혀서 주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리조트에 있는 조리기구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화장실 손잡이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다들 한두 가지 꽂히는 청결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숙소에 있는 수저, 그릇, 팬 등은 쓰지 않는데 아이한테 주는 음식을 거기에 만드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가족여행에서는 나도 쉬고, 즐기고 싶었다. 식사하려고 다 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생선회를 굽느라 일어나고 싶지 않았고, 오늘 같은 날 하루 정도는 대충 먹어도 되지 않겠냐고 나름 힘주어 말했다.
그래도 어머님은 회를 구워주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결국 답답하셨는지 당시 어깨 한쪽이 불편하여 시술을 받아 보호대를 하고 계시던 어머님이 직접 일어나서 한쪽 팔로 프라이팬을 집어 드셨다.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고, 제가 할게요, 라며 프라이팬을 한번 씻은 다음 회를 구워서 아이에게 주었다. 원래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식사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일상이지만, 이 날의 식사시간은 더욱 회 맛을 즐길 수 없었고 분주한 내 모습이 외롭고 억울했다.
저도 가족여행에서는 즐겁게, 편안하게, 조금은 대충 지내다 오고 싶어요.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 스스로를 되돌아볼 때가 많은데, 서른 넘어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나의 통제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내 가정이, 내 아이가 나의 결정권이 미치는 범위에 들어오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고 내 영역이 침범당한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어머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고, 나는 B급 며느리임에도 마음속의 말들을 제법 삼킨 채 지나간다. 그렇게 나는 경계가 모호한 나만의 울타리가 있고 그 울타리는 소중하며, 그래서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