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와 그의 엄마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번씩 시월드, 시댁과 친정의 온도차 등에 관한 경험담이 올라온다. 그중 인상 깊었던 내용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 우리 아들이 얼굴도 잘생기고, 학벌도 좋고, 직업도 좋아 참 인기가 많았다며 며느리를 볼 때마다 말씀하시는 시어머님
- 시어머님과 며느리의 통화 중 회식 때문에 남편이 자주 늦는다는 말을 전하며 어린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는 며느리의 말에 자꾸 술 마시면 안 되는데 건강 상할까 걱정된다며 더 잘 챙겨주라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님
- 생콩나물을 챙겨주시는 시어머님과 콩나물무침을 챙겨주시는 친정엄마
이외에도 남 일이라면 웃을 수도 있지만 내 일이라면 속 터질 법한 일화들을 보다 보면, 나의 시댁은 배려를 많이 해주시는 편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고 나 또한 한 번씩 시댁과 친정의 온도차를 느끼기에 공감하기도 한다.
결혼 초기 나는 다들 한 번쯤은 앓고 지나간다는 착한 며느리병에 걸려 시부모님의 예쁨을 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예쁨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미움은 받고 싶지 않았고 나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잊지 않고 어머님께 전화하여 안부를 물었고, 시댁을 방문하면 내가 큰 도움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시는 어머님 곁을 맴돌며 종종거리곤 했다.
물론 지금은 아이를 키우느라 바빠지면서 전처럼 자주 연락을 드리지는 못한다. 아주 가끔 아이 얼굴로 영상통화를 하며 나름의 효를 행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 삼기도 했고, 또 어느 순간 남편은 나의 부모님께 자주 연락드리는 것도 아닌데 나만 하고 있는 것에 불만이 생기면서 나의 안부 전화 외길은 정리했다. 가끔씩 어머님이 전화를 자주 해주어서 고맙다고, 서로 어색할 수 있는 사이에 나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가까워지기도 하고 아들이 결혼하면서 생긴 집안의 빈자리가 조금이나마 덜 크게 느껴졌다고 말씀해주신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우리 친정부모님께 어떻게 하는지를 내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서로를 비교했던 옹졸한 내 자신이 살짝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임신 초기 나는 입덧이 제법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이 시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입덧은 좀 어떠냐고 물으셨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드렸고, 시어머님은 다행이라고 하셨다. 거기까지만 말씀하셨다면 훈훈한 고부간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휴식을 취했을 것 같다만 시어머님은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 아까 아들이랑도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좋지 않더라고. 원래 사람이 몸이 안 좋으면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그럼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눈치를 보게 되거든. 네가 좋아졌다니 이제 다행이다.
두둥, 당시 남편은 내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을뿐더러(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또 느꼈다고 한들 입덧 중인 내가 힘들지 남편의 눈칫밥이 그리 대수인가 싶었다. 나는 입덧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남편은 눈칫밥이라도 먹으니 더 나은 상황 아닌가. 늘 내 몸이 약해서, 내가 피곤해서, 내가 일이 많아서 힘들겠다고 내 걱정만 산더미인 엄마와는 몹시도 큰 온도차였다.
특히 이러한 온도차는 아이를 낳고 자주 느꼈던 것 같다. 친정엄마는 늘 아이보다, 남편보다 내 몸을 생각하고 틈틈이 쉬라고 말씀하신다. 아이를 보거나 청소하는 것도 다 체력이 필요하니 아마 힘센 사위가 더 잘하지 않겠냐 하신다.(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엄마.) 또한 나의 아이에게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신다.
- 할머니는 우리 로이도 예쁘지만 로이 엄마가 할머니 딸이거든. 할머니 딸이 아주 소중해요. 로이가 엄마 말을 안 들으면 할머니도 아주 속상해. 그러니까 항상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엄마의 드라마에서는 내가 주인공인 듯하다.
시어머님과 아이에 대해 얘기 나누다 보면 종착지는 아이에게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좋지 않은지, 내가 엄마로서 알아야 할 것들과 인내해야 할 것들의 나열이 될 때가 많다. 어느 순간 '나'는 지워지고 '엄마'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에는 바른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항심까지 일었다.
휴직 중인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서 며칠 지내고 있을 때였다. 나는 금요일 퇴근 후 시댁을 방문했다. 시어머님께서는 아이가 자는 것을 살펴보니 자정쯤에는 기저귀가 빵빵하게 차서 한번 갈아주는 것이 좋겠고 새벽 4시쯤에는 잘 뒤척인다고 이런 시간에 잘 지켜보라고 하셨다. 당시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아들은 저녁 8시쯤 잠이 들어 다음날 아침 6-7시쯤 일어났고, 깨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머님의 미션을 들은 순간 나는 멍했다. 나는 보초병인가.
'어머님, 저도 새벽에는 자야 한다구요. 굳이, 잘 자는 아이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구요? 다음날 저는 어떻게 출근하고 일을 할까요?'
여전히 며느라기에 머물러있던 나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내뱉지는 못했다. 그저 호호 그런가요, 하며 어색한 웃음으로 대꾸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시어머님께서 양육을 주제로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임무와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는 사소한 말이라도 곱게 들리지 않았고, 애써 외면하려 했다. 엄마가 유일한 내 존재의 의미인 것처럼 느껴졌고 내가 엄마로만 살아야 한다는 왠지 모를 압박 같았다. 나도 모르게 지워져 가는 내 모습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던 것 같다.
나를 어머님 손주를 낳고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로, 그들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봐주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