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사실은 내 안에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아주 많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짓궂은 모습에 깜짝 놀란 사람도 한 명 있다. 어릴 때 엄마가 병원에 몇 주 동안 입원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촌언니는 고맙게도 우리 집에 와서 식사도 챙겨주고, 어린 오빠와 나를 돌봐주었다. 그런 생활이 며칠 지날 무렵 이불 장롱 속에 숨어 언니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다 이불들과 함께 미끄러지면서 쿵,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으며, 오빠만 별난 줄 알았더니 너도 참 별나구나.라고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은 나에게 칭찬들만 해주었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나름 이미지 관리를 해왔던 것 같다. 그때의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도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겸손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도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아이를 보며 공동체 생활을 하기 힘들겠다고 걱정하거나, 또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개선해야 할 점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임신한 후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면 좋겠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내 아이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데 아닌 척, 아닌데 그러한 척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남을 의식하느라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교사로서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에 불참 의사를 비치는 아이를 여러 번 설득하기도 했고, 실제로 공동체 생활인데 소풍, 수학여행은 당연히 가야 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나 혼자만의 가치관뿐 아니라, 시대의 가치관이 변하기는 했다.) 잠자리가 바뀌는 것이 불편한 아이일 수도 있고, 놀이공원에서 탈 것이 없어 지루하게 보내는 것이 싫은 아이일 수도 있고,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억지로 모둠을 짜서 함께 다녀야 하는 것이 고역으로 느껴지는 아이일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위주로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안 되겠지만, 선을 넘지 않는 경계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두고 판단하고 행동할 필요는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짜장면을 시키니까 짜장면을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짬뽕을 외칠 수 있는 사람. 전에는 짬뽕을 외치기 위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만한 일도 아닌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생각이 변하기 시작하고 30대에 들어서서는 나를 돌아보자,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책들을 탐독했던 것 같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며 굳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가.
-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배려하느라 나를 혹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혹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단호하게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자.
- 나를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의 무례한 언행에 상처받지 말자.
- 사양하지 말라고 할 때는 정말 사양하지 말고 당당하게 표현하자.
- 지나치게 겸손하지 말자.
- 내가 나를 제일 사랑해야 한다.
여러 자기 계발서들을 읽으며 공감하고 또 마음에 새기기도 했다.
나는 늘 주변을 의식하며 살았고 또 그러한 모습이 나에게 족쇄가 되기도 했다. 출산휴가를 앞두고 만삭이었던 새 학기에 업무에서 배려를 받아서 생활할 때에도 아가씨였던 동료가 지나가듯 좋겠어요,라고 한마디 들은 것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후벼 팠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서 곱씹고 친구들에게도 내가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놀며 직장 다니는 것처럼 말하는 것 아니냐, 하며 내가 얼마나 무례한 말을 들었는가에 대한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나에 대한 말들도 타인의 어떤 시선이 담겨있는지를 해석하고 신경 쓰며 마음에 담았다.
몸이 너무 아파 병가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먼저 걱정부터 한다. 상급자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색을 표하지 않을까 싶고,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시면 혹시 내가 꾀병 부린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내가 없는 동안 누군가 그 부담을 짊어지며 나를 탓하지 않을까 싶어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늘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아니까 넌 지금 잘하고 있어, 괜찮아, 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먼저 내 짐을 덜어주려 다가오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는 모르거나 심지어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살다 보니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관심이 많지는 않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나의 몫을 다하면서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는 늘 나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나의 행복을 위해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기로 했다. 혹시 살다 보면 어떤 날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때 흔쾌히 호의를 베풀어주자.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인생에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된 거였다. 지나친 호의까지는 기대하지 말며, 타인의 반응에 상처받지 말자. 나는 묵묵히 내 인생을 살지어다.
늘 다짐하는 중이다.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