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아니면 어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져서 오랜만에 영화 관람을 한 적이 있다. 평일 오후라 아무도 없는 리클라이너 영화관에서 전세 낸 듯이 두 발 뻗고 편히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그런지 그날 본 코미디 영화는 나에게 의외의 깊은 감동을 주었다.
소위 MZ세대라 할 수 있는 영화 속 주인공은 어렵게 들어간 방송국 PD 일을 그만두고 청년사업을 시작한다. 그런 자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와 마찰을 겪기도 하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이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며 꿋꿋한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은 자신의 할머니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한다.
- 할머니도 할머니의 인생을 살아, 할머니가 할머니 인생의 주인공이야.
할머니의 대답은 나를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 넌 니 인생에서 주인공인 줄 아냐? 허허. 어떻게 매일 주인공을 하냐, 조연도 해보고 엑스트라도 해보고.. 그렇게 사는 거지. 그것이 인생이고 재미지.
나는 내 인생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매우 많다. 딸이자, 우리 아이의 엄마이자, 내 남편의 배우자이자, 시댁에서는 며느리이자, 직장에서는 많은 아이들을 돌보고 업무를 해야 하는 교사이다. 내 역할을 수행하느라 진정한 나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특히 엄마가 되면서는 내 한정된 시간과 체력을 아이에게 쓰는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런 감정을 유독 많이 느끼게 되었다.
얼마 전 한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운 적이 있다. 여주인공이 임신을 했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입이 귀에 걸려 배실배실 웃고 있고, 여자는 침울해하는 표정으로 카페에서 커피 대신 과일주스를 주문하며, 육아하며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우울해하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곧 자신의 삶이 될 것에 한숨을 내쉰다. 입덧으로 고생하는 여주인공이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가라앉을 것 같다고 하자 남편은 매운 것을 먹으면 아이한테 그대로 간다며 먹지 못하게 하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려는 아내에게 굽 낮은 운동화를 신게 한다. 남편은 직장 회식 때 아이 가진 기쁨을 자랑하고 한 턱 쏘겠다고 하며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켠다. 휴식이 필요한 주말, 임신을 축하해주려고 한다며 시어머니는 아들 부부를 초대하고 식사하며 둘째 계획을 묻는다. 자신의 커리어를 걱정하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며 알뜰살뜰 사는 게 더 행복이라 말한다. 내가 겪은 일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보는 내내 눈물이 흐르고 주인공보다 더 분노하며 드라마를 시청했다.
남편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물론 남편 역시 우리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이러한 감정이 든다.), 나의 일상은 왜 이렇게 변해야 하는가? 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내 머릿속에서 떠나보내기 힘든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출산 후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한 가지는 ‘달리기’였다. 임신 중기쯤 내가 살던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미뤄지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일어난 적이 있다. 지진이 일어난 그날은 수능시험 전날이라 시험장 준비 관계로 학생들은 일찍 하교했고, 나는 학교에서 근무 중이었다. 갑자기 쿵, 했고 지진인가?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피해야겠다며 동료들과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건물이 우르르 거세게 흔들렸다. 다들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는데 마음은 급하고 그렇다고 뛰면 안 될 것 같아 종종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배를 부여잡고 운동장으로 나간 기억이 있다. 그 순간에도 달릴 수 없는 나 자신이 잠시나마 웃기기도 했다. 아이를 출산한 직후 나의 출산을 도와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고생했다며 이제 시원하게 아이스커피 한잔 하시라고 말씀해주셨다. 별 것 아니던 ‘달리기’와 ‘아이스커피’가 별 것이 되게 만든 엄마의 삶.
‘엄마’라는 또 하나의 지위를 갖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감수한다. ‘엄마’라는 지위에 따르는 많은 역할들을 수행하다 보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사치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결혼을 통해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가정이 생겼고, 퇴근 후 남편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행복하다. 그러나 동시에 결혼으로 나에게는 이전보다 더 많은 역할들이 생겼고 나는 분주해졌다.
한 번씩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혼자 비행기를 타고 유럽 도시들의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던 내가 그리워진다. 지금의 현실 속 나는 어디를 가게 되더라도 아이와 가기 좋은 곳, 아기 의자 있는 식당 등과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 본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기 전에 노키즈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명절 연휴에는 하는 것 없이 집에서 명절 음식을 먹으며 뒹굴거리다가 저녁에는 친구들 모임에 나가 맥주 한잔 하기도 했던 나는 이제 명절마다 양가에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먼 길을 움직인다. 보통 명절이나 어버이날에 용돈을 드리기도 했는데, 어느 날 용돈은 안 줘도 된다며 정 그러면 같이 나눠 먹을 간식 정도만 사 오너라, 배려하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가야 할지 며느리인 나의 고민은 늘어나기만 했다.
도대체 내가 주인공인 내 인생은 언제 오는 것인가, 답답하던 나에게 '꼭 주인공이어야 하냐'는 영화 속 할머니의 질문은 신선했다. 바쁜 일상 중에 한 번씩 짬을 내서 드라이브 인 스루 카페라도 들려 차 속에서 공룡 동요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커피 한 모금하는 그 시간은 내가 주인공이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나의 아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은 내가 조연이기도 하다. 조연인 시간이 있기에 주인공인 시간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늘 주인공만 하면 재미가 없다는 영화 속 할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
혼자 자유롭게 유럽 골목을 걷는 나도, 바쁜 아침 시간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나도, 가끔 다양한 민원을 겪으며 울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중학생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나도, 모두 내 모습이다. 내가 해야 하는 수많은 역할들에 둘러싸여 진짜 내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해하는 나조차 나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주인공이면서 조연이다. 요즘엔 감초 같은 조연이 더 사랑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