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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한 조각

by Nancy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가족이 나에게 준 상처와 결핍들이었다. 나를 이해하고자 ‘나’라는 사람에게 있는 여러 결핍들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결핍들의 많은 부분이 내 가족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들을 되짚어보느라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그 속에서 나를 채워준 충만한 사랑과 행복한 추억들도 발견하게 된다.


방랑 미식가인 편에 속하는 아버지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거나 놀러 다니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우리 가족 첫 자가용을 중고로 장만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단종된 ‘아벨라’였다. 자주색 아벨라에 네 식구가 몸을 싣고 부산을 출발해 7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까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내비게이션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몇 번이나 도로가에 차를 세워놓고 행인에게 길을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울진으로 가는 길목에서 트럭에서 인형을 파는 것을 보고 머리가 아주 커다란 빨간 오리 인형을 사주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나는 내 몸집보다도 큰 그 인형을 아주 좋아했는데 나보다 6살 어린 사촌동생이 놀러 와 그 인형의 몸통을 다 뜯고 솜뭉치를 빼놔서 아주 매섭게 혼구멍을 내주었던 것이 떠오른다. 정동진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조개구이를 먹었는데 그때 먹은 조개구이만큼 맛있는 조개구이는 먹어보지 못했다며 엄마가 한 번씩 말씀하시곤 는데, 나 역시 그렇다.


아버지는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어릴 때 부모님이 슈퍼마켓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슈퍼마켓을 볼 동안, 아버지가 어린 오빠와 나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주셨다. 한참을 신나게 놀고 저녁을 먹으러 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을 갔는데 마침 아버지의 옛 친구를 만나셨고 그렇게 소주 한잔, 두 잔 주거니 받거니 하시며 시간이 흘러갔다. 한참을 술잔을 주고받던 아버지는 결국 만취하셨고 집에 온 과정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오빠가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어찌저찌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 우리들은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엄마와 아버지가 한참 큰소리 내며 싸우시는 통에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다. 어릴 때 한 번씩 부모님이 다투시면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다음날 혹시 엄마가 떠나진 않았을까 두려운 어린 나는 엄마가 짐을 싼 흔적이 있을까 싶어 엄마의 옷장을 열어보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공포심은 전혀 들지 않고 우리 가족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던 것 같다. 다음 날, 오빠는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소변보던 모습을 낄낄거리며 따라 하기에 바빴고 나 또한 깔깔거리며 구경했다. 지금도 놀이공원이라 하면, 그 안에서 어떻게 놀았는지는 생각나지 않아도 아버지의 비틀거리던 모습과 그 모습을 흉내내던 오빠가 떠오르며 쿡쿡 웃음이 난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오빠와 나를 데리고 청도 소싸움 축제를 구경 간 적이 있다. 옛 시골 장터처럼 먹거리를 파는 곳들이 들어서 있고 예쁘게 꾸민 소들 사이에서 어설픈 자세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주머니를 보더니 지갑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지갑은 보이지 않고 안 갖고 온 건지 잃어버린 건지 아리송하던 와중에 마침 경찰이 소매치기 한 명을 연행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혹시 아버지의 지갑을 훔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며 가서 확인을 했는데 결국 아버지의 지갑은 아니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우선 당장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탈탈 털어 겨우 몇 천 원짜리 국수를 한 그릇씩 먹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집에 돌아온 기억이 있다. 다행히 아버지의 지갑은 집에서 곱게 쉬고 있었다. 청도에서 유명한 한우를 배 터지게 먹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몇천 원짜리 잔치국수도 제법 맛있었던 것 같다.


가족과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엄마와 단둘이 나가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사주셨던 일, 아버지와 단둘이 드라이브를 나가 오리불고기를 사 먹고 돌아왔던 일 등 아주 대단한 일이라기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소소한 일상들을 나누었던 일 같다.

특히 나는 엄마나 아버지와 둘이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이런 생각의 끝에는 결국 나의 결핍은 나의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나의 과한 친밀의 욕구, 누군가와 단둘만의 특별한 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나의 욕심이 가족들 사이에서 더욱 나를 고립시키고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도 같다. 지금도 가끔 아들이 아빠만 찾을 때는 서운하기만 하다. 아들이 아빠 바라기라고 하면 다들 부러워해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면 왠지 쓸쓸해지고 심지어 얄미울 때도 있다. 아들이 어쩌다 나만 찾을 땐 체력적으로는 버겁지만 마음은 몹시 흡족하고 흐뭇해서 내 체력을 오버해서 사용하며 슈퍼우먼이 된다. 한때는 이런 나의 모습을 옹졸하다고 생각하며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나의 욕구를 이해하고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완전히 나를 채우지는 못했을지언정, 나는 나의 가족 안에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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