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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가족, 무겁지만 따뜻한

by Nancy

출근 준비하랴, 아이 먹이고 입혀서 등원 준비하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바쁜 아침이었다. 샤워하고 나오는데 침대에 아들이 누워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컴컴한 방 안 침대 위에 아들이 누워있어 깜짝 놀랐지만 놀란 건 잠시. 턱을 괴고 내가 언제 나오나 기대하며 기다리던 아들의 미소가 너무나 귀여워 아침부터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하고 한바탕 웃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많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남이라면 조심하고 하지 않았을 말을 가까운 가족에게는 편하다는 이유로 막 던지면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시름을 잊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기도 하다.


나는 늘 오빠에게 불만이 가득한 동생이었다. 왜 열심히 노력하는 나에 비해 그렇지 않은 오빠에게 더 많은 것이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억울했다. 오빠의 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나는 애정보다 원망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울던 나를 길에 내버려 두고 가는 오빠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오빠를 염려하는 말씀을 하시면 알아서 잘 살아야 하는 것이고 다 큰 성인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어느 주말,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애호박전을 해주시며 말씀하셨다.

- 전에 오빠 왔을 때도 해줬는데 맛있게 잘먹더라. 너도 애호박전 좋아한다고 택배로 보내주라고 말하더라. 그래도 오빠라고 한번씩 그렇게 널 챙기더라.

나보다 오빠가 더 사랑받는 상황을 언제나 경계하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 학교에서 벼룩시장 행사를 하는 날이면 꼭 나를 위해 인형을 하나씩 사오곤 했던 어린 시절의 오빠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오빠와 찰떡궁합이 되어 나를 놀리곤 하던 아버지는 너무 미웠다. 그렇지만 한 번씩 좁은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며 비빔국수, 튀긴 도넛 등 각종 특식을 해주던 아버지만큼은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물론 제대로 뒷정리를 하지 않아 엄마의 잔소리 폭탄을 들으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재밌었다.

고향에서 3시간 떨어진 거리에서 결혼식을 해서 내 친구들과 친척들은 하객 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식이 끝난 후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버스에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부모님 걱정은 하지 말고 재밌게 놀다 와, 잘 계시는 것 같다.’

그리고 친구가 같이 보내 준 영상 속 아버지의 외침.

-나는 이 자리에서도 울라고 한다면 울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헛헛합니다만은.. 하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흥겨운 노랫가락.

덕분에 깔깔 웃으며 비행기를 타러 갔던 것 같다. 다녀온 후 오빠는 저녁에 나를 제외한 가족끼리 모여 축의금을 세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며 아버지가 우셨다며 전해주었다. 영상 속 아버지의 외침은 진심이었구나. 표현을 다 못하셨고 오빠와 애정의 차이는 조금이나마 있을지언정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딸이고, 가족이다.

어릴 적 오빠와 용돈을 차별해서 준다고 심통이 나서 아버지와 말을 며칠 간이나 안 한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윽박지르거나 화내지 않으셨다. 며칠을 기다렸다 마트에 데려가서 예쁜 가방을 하나 사주시는 것으로 내 마음은 풀어졌고, 우리는 화해했다. 오빠가 결혼한 직후 신혼집 장만이나 결혼식 비용 얘기가 나와서 오빠가 받은 많은 지원들과 나를 비교하며 아버지와 언쟁을 한 적이 있다. 그동안 쌓여왔던 서러움들이 차올라 아버지에게 한껏 쏟아내고 내 집으로 돌아간 후, 한동안 아버지의 연락을 받지도 않고 하지도 않았다. 그때도 여러 번이나 다시 전화를 하며 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건 결국 아버지였다.


엄마가 나에게 모든 인생의 아픔과 걱정들을 털어놓으시며 끝없이 한탄하시는 어떤 날은 도망가고도 싶다. 그러나 때로 내가 힘들고 아픈 날 생각나는 것도 엄마이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항상 청소기와 걸레부터 손에 잡으신다. 평소 살피기 힘든 레인지 후드, 주방이나 욕실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광내기 바쁘다. 집으로 가시는 날이면 한참을 일만 하다가 가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얼마 전 내 생일에 용돈을 보냈다며 전화를 하셨다.

- 내가 고맙다고 전화해야 하는 날이지, 엄마는 참..

민망한 내가 말하자, 엄마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본인이 더 고맙다고 내 딸이어서 고맙고, 걱정 끼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어서 고맙다며 연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늘 고맙고, 서운하고, 미안한가보다.


바쁜 아침,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맛이 없어하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며 빈속으로 가면 유치원에서 배고파서 안된다며 온갖 설득을 다 해본다. 그러다 문득, 등교 준비를 하고 있으면 김에 밥을 돌돌 말아 입안에 쏙쏙 넣어주던 엄마가 생각이 난다. 나를 챙겨주시던 엄마의 마음이 아마도 지금 내 마음과 같았으리라.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랐고, 나의 사랑은 내 아이에게 돌려주고 있다.


아이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한 번씩 할머니 집에서 혼자 며칠 동안 지내고 오는 날들이 있다.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나에게 방긋 웃으며 어서 가라고 손짓한다. 시원섭섭해지는 나는 할머니 집에서 아예 살래?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의 대답은 아니라고 한다.

-왜? 할머니 집 좋아하잖아

-엄마랑 아빠, 내가 가족이잖아. 우리 같이 우리 집에서 살아야지.


내 아이에게 가족이란 때로는 화내고 때로는 헤어지는 게 즐겁지만,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가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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