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욕은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나도 불만이 많고 흠이 많아 보이는 내 가족이라도 막상 내가 아닌 남이 내 가족에 대한 험담을 할 때에는 분노가 솟아오르는 경험은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첫째 조카가 5살 무렵 있었던 일이다. 내가 봐온 우리 남편은 평소 시끄럽거나 산만한 분위기를 잘 못 견뎌하는 편에 속했고 우리 조카는 그 또래들이 대개 그렇기는 하지만 평균 수준보다는 좀 더 산만한 편이기는 했다. 하루는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식당에 모였다. 제법 지역에서 유명한 맛집인지 꽤나 넓은 식당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따로 룸에서 식사를 하기는 했지만 워낙 시끌벅적하기도 했고, 고기 굽는 소리에 우리들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5살, 3살인 조카들은 한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반찬 그릇으로 장난을 치다 혼나기도 하였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생일파티는 두 시간이 채 되기 전에 마무리되었고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고 나는 생각했다.
며칠 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동 ADHD 얘기가 나왔고, 남편은 흥분하며 첫째 조카도 그 정도면 커서 ADHD가 되는 것이 뻔하다며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흥분해서 얘기했다. 지금도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인데, 남편은 자신이 초등교사로서 실제로 문제를 겪는 아이들을 많이 봐왔고, 정말 조카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바른 소리를 한 것이라 하고 나는 그저 개구쟁이 조카와 소란스러웠던 모임자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표현이었으며 일 년에 몇 번 보지도 않은 5살 어린아이에게는 섣부르고 무례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특히, 어릴 때 순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우리 아이가 5살이 되어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천 번, 만 번 변하면서 자란다.) 어쨌든 평소 나도 조카에게 고모로서 대단히 무한한 사랑을 주거나 챙겨주는 일까지는 없었지만 남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솟았다.
어떻게 남도 아닌 나의 가족에 대해 저렇게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이것은 나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 아닌가 싶어 남편에게 따져 물었고 끝까지 남편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들어야지 듣지 않고 계속 놔두다간 아이의 문제행동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화난 나를 더욱 도발하였다. 게다가 부모님도 아니고 오빠의 가족이면 우리와는 좀 먼 사이가 아니냐며, 너와 조카보다는 내가 더 가까운 부부인데 그런 말 정도는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때의 식사는 너무나 정신없었다고 나를 다그쳤다. 이제 결혼했으면 우리 가족이 더 중요하지 그렇게 예민하게 굴만큼 너의 가족이 중요하냐고 묻는 남편과는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은 조카가 아니라, 나의 화난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남편의 공감능력과 배려심의 결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이 사람의 어디를 보고 따뜻함을 느껴 결혼을 결심했을까 싶기도 했다. 남편에게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나의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고까지 생각하였다.
서로 굽히지 않으면서 우리의 냉전은 며칠이나 이어졌고, 냉전의 끝에는 남편의 화해 요청이 있었다. 진심으로 내 마음을 이해하고 사과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행선만 달리는 논쟁만 계속할 수는 없었기에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후 냉전은 종료되었다. 나는 당신 눈치 보며 내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나고 싶지 않으니 조카들이 참석하는 가족 모임에는 나와 아이만 가서 맘 편히 있다 올 것이고, 또한 앞으로 당신이 나의 가족을 대하는 만큼의 정도로 나도 당신의 가족을 대하겠노라 선포했다.
그동안은 며느리, 새언니로서 흔히 얘기하는 나의 도리가 있다 믿었고, 나에게 새 가족으로서의 도리를 무리할 만큼 강요하는 시부모님도 아니셨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었다.
왜 나는 남편의 부모님도 아닌 이모님, 이모님의 자녀들과 종종 식사자리를 가지며 이렇게 해야 친해진다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네,라고 답하며 웃음 지어야 하는지, 조카들은 우리 부부 사이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먼 가족일 뿐이라 말하는 남편은 설명하지 못했지만 언쟁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날 이후 시댁 식구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나가기]를 눌렀고 종종 아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 뒤로 종종 아이만 데리고 본가를 방문해서 조카들과 놀다 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왜 같이 오지 않냐고 은근히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하셨지만 내 마음이 편하니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마 누군가가 이런 나의 남편에 대해 적개심을 쏟아내며 정이 없다는 등 부정적인 말을 했더라도 나는 고맙다기보다 화가 나거나 머쓱해하며 그 정도는 아니에요, 라고 대변하며 남편의 장점들을 줄줄이 나열해 줄 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족이다. 아무리 가족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이나 서운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가족은 나의 근본이자, 현재의 내가 있게 해 준 든든한 버팀목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새겨보기를.
"가족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