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_9
그러니까 말이다. 난 애완동물과는 인연이 아닌 거야.
자 들어봐.
어릴 때 아버지가 문조 두 마리를 사 오셨어.
이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양반이 술 한잔 하시고 들어오던 어느 날 선물이라고 사 오신 거지.
내가 아마 일곱 살 쯤이었을 거야. 국민학교 들어가기 직전 기억이니까 말이야.
하얀 깃털에 까만 진주알 같은 눈을 뜨고, 파르르 거리는 그 작은 성명체는 내겐 놀라움 그 자체였어.
첫날 감기는 눈을 비비며 잠에 취해 머리가 새장을 들이받을 때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니까?
두 마리 중에 조금 크고 깃에 윤기가 흐르는 녀석은 '문돌이', 작은 녀석은 '문순이'라고 이름도 지어줬어. 그때 분명 금성 학습 도감 조류 편에서 새는 수컷이 더 멋지다고 했었거든. 수컷이 남자더라고...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문돌이, 문순이 밥 챙겨주는 일이었어. 조그만 플라스틱 모이통에 조를 좀 따라주고 한쪽에는 물도 따라 줬지.
그리고는 계속 보고 있는 거야. 저걸 언제 먹나. 어떻게 먹나. 둘이 싸우는 것은 아닐까...
먹이를 계속 먹으면 점점 커지겠지? 어쩌면 문돌이와 문순이는 특별해서 집보다 더 커질 수도 있어. 그럼 큰 일인데. 아!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있겠구나... 그건 좀 멋진데? 따위의 상상을 하면서 말이야.
야 웃지 마! 그 나이 때는 다 그런 생각 하는 법이라고.
그런데 사실 아이들의 호기심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 거 알지? 나도 그랬어.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시들해졌지. 의무감에 먹이와 물은 챙겨 줬지만 처음처럼 그런 마음은 아니었어.
뭐 중간에 서울 고모 댁에 다녀오느라 관심이 다른 데로 쏠리기도 했고. 그랬지.
아. 서울 가기 전에 아버지가 새장을 마루 서까래에 묶어 주셨어. 요새 밤에 도둑고양이 우는 소리가 는다면서...
서울 갔다 와서 아침이면 난 뒷방에서 나무 의자를 가져와 아래 받치고, 딛고 올라가 모이를 주고, 물을 주고 다시 의자를 치우는 정도의 일을 반복했어.
내 보기엔 문돌이, 문순이는 평화롭게 잘 살더라고.
아마 너도 이 이야기가 이쯤 되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거 알겠지?
어 그런 거야.
그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알겠더라. 뭔가 일어났구나. 아이들의 예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거 있잖아.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어.
그리고 발견했지. 내가 어제 문돌이 문순이 밥을 주고 의자를 치우지 않았다는 것을...
아래서 올려다본 새장은 조용했어. 조용했다고...
그게 문제야. 그 시간에 조용하면 안 되는 거거든. 문돌이는 횃대에 앉아서 쨋쨋거리고, 문순이는 플라스틱 통의 물로 깃털을 씻느라 파르락 소리가 났어야 했어.
그런데 조용했단 말이야.
그리고 새장 문은 열려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난 그때 엄마나 아버지를 불러야 했어. 근데 그냥 의자 위로 올라섰지.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은 결정이었어.
처음엔 뭔지 몰랐어. 그냥 열린 새장 문으로 문돌이와 문순이가 도망간 거라 생각했어. 두 마리 다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새장을 잡고 까치발을 들어 다시 안을 들여다봤어.
새장 바닥에 말이야. 있더라고.
머리가 없는 문조 두 마리가.
야. 야. 그거 마시던 거 뿜으면 어쩌라는 거야.
나도 충격이었다고.
아마 분명 나 얼굴이 창백해져서 의자에서 내려왔던 것 같아.
그리고 엄마를 불렀고.
엄마는 다시 아빠를 부르셨고, 집 앞 화단에 작은 무덤을 만들어 주었던 것까지는 기억나.
그 뒤로 한 일 년 가까이 꿈꿨어. 새장이 기울어지면 목 없는 문조 두 마리가 좌르륵~하는 모래소리와 함께 내게 미끄러져 다가오는 그따위 꿈 말이야.
아버지 말로는 도둑고양이 짓이었을 거래. 말씀은 길게 안 하셨지만 알겠더라고. 내가 치우지 않은 의자를 밟고 옆 기둥을 타고 서까래고 올라가 새장까지 간 거야. 글고 그 참사를 낸 거고.
생각해보니 전날 잠결에 유독 고양이 우는 소리가 시끄러웠던 것 같기도 해.
그 뒤로 키우던 금붕어 금동이, 은동이, 동동이 세 마리는 겨울에 방 청소하고 어항 들여놓는 걸 깜빡해서 어항채로 얼었지 아마?
국민학교 때 키우던 새끼 발바리 바트는 내가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조카 자전거 바퀴 사이에 목을 들이밀어 죽었고...
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 봉황 1호는 시름시름 앓다가 4일 만에 죽었고... 봉황 2호는 아침에 일어나니 없어졌고. 봉황 3호는 꽤 키웠는데 어느 날 없더라고.
엇. 그러네. 어찌 알았냐?
아마 그때가 초여름이었어.
그러네... 그랬어. 그랬던 거네.
왜 나만 몰랐을까? 응? 봉황 3호는 끝까지 훌륭했구나.
야 그건 그렇고. 여행 간다고? 어디? 유럽? 좋겠다 진짜로... 부럽다.
부탁 있다면서?
왜? 괜찮아 말해.
아 그 녀석이 너가 키우는 고양이구나? 흰색 털에 얼굴이랑 귀는 까만 털이 났네?
아... 샴 고양이라고...
어? 너 여행 가 있는 동안에는 어쩌려고?
아... 이모가 맡아주시기로 했어? 잘 됐다 야. 그래, 잘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족이 나아.
우리나라도 반려동물 호텔 같은 곳이 많아지고 해야 하는데 말이지...
그 후로 우리의 대화는 별 의미 없는 일상과 서로의 안부와 영화 따위 이야기였다. 샴고양이는 신경이 날카로운 듯했으나 후배가 이모에게 맡긴다는 말을 한 뒤로는 고로롱거리며 케이지 안에서 잠들었다.
늦은 오후 커피 전문점 '고양이가 숨 쉬는 듯'은 그 날 따라 한가했다는데 나야 평소에 와 본 적 없으니 알 바 아니었다.
후배는 끝내 자신의 부탁이 뭔지 말하지 않았다.
컴퓨터 조립이라도 부탁했으면 그런 건 남편 될 사람에게나 하는 거라고 거절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마 후배는 여전히 내가 어려운 사람이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