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날

100개의 글쓰기_8

by 김민성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러니까 그때 난 가슴에 구멍이 하나 뚫린 채 지내고 있었다.
지나 놓고 보니 사람은 누구나 그런 구멍이 하나씩은 있는 법인데, 당시의 나는 내 가슴의 텅 비어버림만 보였었다.
그 구멍으로 시린 바람이 자꾸 드나들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사무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감정에 혼자 서럽고,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에는 택배 상하차일을 했고,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 오후까지는 교회에서 일을 했다.

누구에게 이런 나를 말할 이유도 없었고, 이해받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으며... '난 아무렇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 아니, 버티고 있었다. 계속.


그랬었다.
후배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형. 우리 교회학교 아동부 선생님 있는데 함 만나봐라. 형이라면 그 선생님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보통은 사람의 성품이 좋다던가, 조건이 괜찮다던가, 아님 남자들의 만고불변의 기준인 예쁘다고 하는 법이다.
근데 후배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 했다.

어찌어찌 풍암동 레몬테이블에서 만나자 약속을 잡았다.
미리 후배랑 만나 옆에 있는 드롭탑에서 근황 토크 좀 하고, 몇 주년 기념이라며 머그잔도 사은품으로 받아 시시덕거리었다.

시간이 되어 그 사람이 올 시간이 되었다며 약속 장소로 갔다.

긴 생머리에 선글라스를 머리에 꽂고 커다란 숄더백을 옆에 두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는 모습의 그녀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샐러드와 리조또류를 시키고 가만가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그러니까 말이다 난 누군가를 소개받아 만난 거는 처음이었다.
소개팅에서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몰랐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생글생글 웃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경험상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화였다고 여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려 4시간 동안. 그녀가 화장실에 2번, 내가 1번 다녀왔던 거 빼고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 역시 가슴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안고 사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바람에 실려 자꾸 내 가슴의 구멍을 통과해가는 느낌이었다.
그건 아무도 없는 벌판에 지어진 오두막에 누워, 집 밖 갈대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민성씨, 그러니까 나는 이해가 안돼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쓰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안될까요?"

후웅 후웅... 바람소리다.


"나도 다 집어치우고 오빠, 언니, 동생 있는 미국으로 가야 할까요?"

그녀의 이야기는 휘리링 휘도는 바람 소리였다.

사실 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텅 빈 가슴에서 일어나는 일이 신경 쓰였다.
그건 지금까지 잘 느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은 많지 않았다.

지금은 그걸 '공명'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운 두 사람이, 텅 빈 가슴으로 만났을 때, 서로의 빈 가슴을 통과하는 바람의 노래...

콜라병 입구 알맞은 위치에 입술을 대고 적당한 바람을 불어넣으면 후우웅~하는 소리를 낼 수 있다.

아마 우리는 그랬던 것 같다.
서로 알맞은 시기에 적당한 삶의 자리에서 마주했던 거다.
그리고 난 그 울리는 소리를 들었고...

이제 어쩔 수 없게 되었음을 예감했던 거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다며 멋쩍어하며 웃었다.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 아니라 했다. 어디 가서 자기 이야기 그렇게 안 한다 했다.

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아무 곳에나 가서 자기 이야기 4시간 떠드는 사람은 실성한 사람 취급받으니 말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큰 숄더백을 당당하게 걸쳤다.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도대체 저 긴 원피스를 입고도 어찌 걷는 것이 당당할 수 있는지 웃음이 나왔다.

육교를 건너다 중간에 당당히 멈췄다.

룰 더 스카이 마을을 돌봐야 할 시간이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뭔가를 열심히 눌렀다. 아래로는 버스며 자가용이며 트럭이 지나다니는 그 시끄러운 육교 위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비켜선 사람처럼 뾰롱뾰롱거리며 그걸 누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겠구나... 난 저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난 보통 한 번씩 아픈 것으로 치른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때와 겨울에서 봄을 넘을 때 심하다.

남편 아프다고 죽이며, 딸기며 사다 주고, 저녁엔 좀 괜찮아지니 외식까지 시켜주고, 들어오는 길에 건담도 하나 사준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난 여전히 가슴에 구멍이 하나 있다.
예전보다 많이 작아졌다.

아마 여기서 더 작아지지는 않을 거다. 느낌상 이건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텅 빈 무엇이다.

거기에서 노래가 나오고, 이야기가 나오고, 시가 나오고, 연기가 나오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기한 무언가가 나오는 것일 게다.

예전에는 이게 신경 쓰여 견디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지간히 건드려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아내의 가슴에도 여전히 그게 남아있다는 거 알고 있다. 다만 아내도 나처럼... 나로 인해 그 구멍이 작아져 그럼에도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초여름이 시작되던 6월 5일...
그리고 4개월 뒤... 우린 부부가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정말로...
그게 무서운 거다.

여보 일어나 커피 내려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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