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100개의 글쓰기_7

by 김민성

치익…
버스가 도착했다. 어릴 때는 차를 타는 것이 끔찍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주위에 내가 ‘알아서 잘 크는 착한 아이’ 정도로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예민하고 민감하다. 단지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마 7살 때 큰고모가 지나가는 말로 3살 터울 남동생과 비교해서 ‘무르다’라는 말을 했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억할 듯하다. 그러니까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잘 잊지 않는 거다. 말을 하지 않을 뿐.
그러니까 나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PC통신을 통해 찾아본 이것은 결과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이 천형처럼 지고 있는 업이었다.
외부의 흔들림에 내 몸의 평형감각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는 증상. 더 정확히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나의 시각과 감각정보가 괴리를 일으켜 두뇌에서 요류 현상이 일어나는 증상이다. 이를 의학에서는 ‘Motion sickness, 가속도병’이라 했다.

안다. 뭐라고 내가 열심히 꾸며 말해봐야 그 증상이라는 게 ‘멀미’라는 거.
해남에서 차로 20분쯤 가면 있는 대흥사 가는 길도 내게는 공포였다. 차를 타야 했고, 그러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저 ‘멀미’라는 괴물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난 무척 불안하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가득하다. 광전교통 버스는 후졌다. 다음 차인 광주고속 탈까 하다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면서 제발 내 옆에 아무도 타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깨지 않는 것뿐이다. 최악은 술 취한 아저씨가 담배라도 꺼내 무는 상황이다. 버스의 퀴퀴한 냄새와 옆자리에서 올라오는 땀냄새, 술 냄새, 역한 담배냄새가 섞이면… 어김없이 멀미가 시작되어버린다.

오래된 버스는 쿠르릉 거리며 출발했고, 내 옆에는 젊은 누나가 탔다. 다행이다.

이제 눈을 감고 2시간 20분 잠이 들기를 바랄 뿐이다. 버스는 신북 나주와 영산포 같은 곳들을 차례차례 들러 광주에 도착할 거다. 머리 속으로 오직 자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했다.

옆에 누나가 계란을 꺼내 드는 것을 몰랐던 것은 내 불찰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기차여행의 추억을 버스 타고 재현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칠성사이다는 없는지 궁금해졌지만, 지금 급해진 것은 내 궁금증이 아니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꿀렁거리는 버스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먼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나는 여행자다. 이 배를 요동치게 하며 저기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 따위에 지지 않겠다. 와라 운명이여!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 친… 이건 아니다. 취소! 취소!!

나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에 있다. 그 사막 한가운데 생명이 숨 쉬는 유일한 오아시스 앞에 있는 거다. 양들은 풀을 뜯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신다. 푸른 오카리나를 불며 먼 지평선을 바라본다. 저 멀리서 먼지가 인다. 사막의 약탈자 붉은 이리떼가 나타난 거다. 필사적으로 양들을 모으고, 낙타를 타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으웩… 더 심해져버렸다.

틀렸어. 이런 상상이라니. 절망이다.

숨을 멈추고, 올라오는 메슥거림을 다시 한번 꿀꺽 삼켰다. 그래… 창문, 창문을 살짝 열자.
신선한 바람은 이 상황에서 분명 도움이 된다.
오래된 버스의 창문을 여는 것은 상당한 수고와 노력과 힘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저걸 여는데는 아더왕이 엑스칼리버를 뽑는 심정으로 시도해야 한다. 그러니까 운명인 거다. 뭔 짓을 해도 안 열리는 버스 창문을 만나본 경험이 있다면 내 말을 이해할 거다.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세상에 있는 법이다.

다행히 문이 조금 열렸다. 후아아앙. 부는 바람에 잠시 숨통이 트였다.
옆자리 누나는 바람이 차고, 머리가 날려서 싫은 기색이지만, 난 쩝쩝거리는 소리와 달걀 냄새가 더 싫었다. 서로 못할 짓 한 걸로 퉁치자.

그래도 계속 그러고 가기가 미안해. 문을 아주 살짝 열었다. 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코를 들이밀고 붕어처럼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텨보자.

살다 보면 좋은 생각이었다고 했던 것이 패착인 경우가 왕왕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그래. 하필 이 시점에, 이 외곽에 돼지농장이 있다는 사실을 내 어찌 기억하고 있었을까…
아까 꾸욱 눌러왔던 증세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버스 창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은 창백하다. 이마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버스는 시내로 들어섰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고, 잘 견디고 있는 거다. 좋다.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자. 지금이 마지막 위기다. 시내의 교통체증으로 버스가 가다 서다 하는데 이것만 버티면 끝난다.

드디어 차가 멈췄다. 동구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일어서서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끝났다.

아니다. 안 끝났다. 차가 멈추고 내리려는 사람들 사이에 끼자 다시 역한 것이 훅 올라온다. 황급히 입을 막는다. 방심한 사이 무엇인가 위에서 식도를 타고 거꾸로 올라왔다.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대 위기다.

아아….
아아아….

뒤에서 아저씨가 나를 밀었다. 앞으로 밀리며 입을 막았던 손이 살짝 풀어졌다. 그 틈으로 뭔가 튀어나가 내 앞에 서 있던, 아까 옆자리 누나 긴 생머리 끝이 묻어버렸다. 누나는 모른다. 나는 지금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마음속으로 온 힘을 다해 말했다.

누나… 미안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뛰었다. 어제 먹은 것이 많지 않아 확인할 것도 없다. 광주 오기 전 날에는 미리 속을 비워두는 편이다.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 땀을 닦는다.

나는 도착했다. 광주에…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나는 버텼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용돈을 모았다.
나는 간다… 반도상가에…
기다려라 게임 플로피 디스크 들이여…

그리고…
나는 다시 해남 가는 버스 안에 있다.
옆엔 술 취한 아저씨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검정 비닐봉지 두 장을 챙겨 와서 다행이다.
내 중학교 2학년 여름은 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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