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100개의 글쓰기_6

by 김민성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간혹 배가 살살 아플 때가 있다. 장염이나 식중독이 유행이라고 해서 찾아보면, 설사하거나 열이 끓거나 하지도 않으니 그건 아니다. 소화불량이라고 하기엔 난 잘 먹고 잘 싼다. 이것도 탈락… 흠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면 난 꽤나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였다.
환절기면 감기를 달고 살았고, 머리 아프다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는 수두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다셨다.

나름 외가에서 사랑받는 막내로 자란 어머니는 김해 김 씨 집안의 효심 투철한 둘째 아들에게 시집오셔서 서운한 적이 많으셨단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모시겠다며 본가로 들어가 버린 것. 내 기억에 막내 여동생이 막 걸었을 무렵인 것 같다. 사실 웃기는 게 우리 살았던 집이 할머니 사시는 본가 뒷집이었다. 그냥 부르면 닿을 거리에 살면서도 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지 못한 것이 그리 죄스러웠는지 그리 결정하셨다.

이사하던 날 비가 왔었다. 나는 어머니(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앞에 매달리고 남동생은 등 뒤에 업혔다. 살던 집 골목길을 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면 담배가게가 있었다. 거기를 지나 영천 슈퍼를 앞에서 잠시 쉬었다. 홍교다리 앞에서 중앙약국을 짚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올라가면 할머니 집이었다. 그때 분명 충분히 걸어 다닐 때였는데 왜 나를 그렇게 힘들게 옮기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한 번씩 울분을 토로하신다. 나도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본다. 지금에야 아버지를 이해 못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실수하신 거다. 효자는 짧고 남편은 긴 법이다.

여하튼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우리 형제들 중에선 나를 이뻐하셨다. 어디까지나 우리 형제들 중에서…(큰집 형들이 오면 우린 찬밥이었다. 그때 어르신들이야 다들 그러셨겠지만…)

이유 없이 배가 아픈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그걸 배앓이라고 했었다. 그냥 자라면서 겪어야 하는 어떤 것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여전히 아픈데도 말이다.

초여름이었지 싶다. 그날도 나는 배가 아파 마루에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텃밭에서 일하다 오신 할머니께서 손주 상태를 곧 아셨다.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거리시고 또 배 아프냐 물으셨다. 괜히 화가 나고 서러웠다. 고개를 팩 돌리고 도롱이벌레마냥 등 돌려 웅크렸다.

내 등을 찬찬히 쓰다듬던 할머니는 곧 일어나 어디론가 가셨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런 생각에 또다시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나려는 걸 꾹 눌러 담았다.

잠시 후 할머니가 채반에 무엇인가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나를 일으키셨다. 난 순순히 일어나기 싫어 몸을 축 늘어뜨리고 할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래야 내가 지금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 것 아닌가.

할머니는 나를 당신 품에 안아 앉게 하셨다. 슬쩍 눈을 뜨니 채반에는 식은 밥과 정게(부엌)에서 오래된 손 펌프로 뽑아 올린 지하수 한 그릇, 그리고 넙적한 접시에 대충 찢은 묵은지가 있었다.
나는 배가 아픈데, 할머니는 배가 고픈가 보구나. 또 혼자 서운하고 서러웠다.

할머니는 식은 밥이 담긴 양은그릇에 지하수를 붓고 끝이 살짝 우그러든 누런 은수저로 탁탁탁 밥을 개었다. 할머니 품에서 실눈을 뜨고 보니 말간 지하수에 쌀알이 풀어져 흩어지고 있었다. 그릇을 옆에 두신 할머니는 나를 다시 고쳐 안으시고, 이번에는 묵은지를 다시 가늘게 죽죽 찢기 시작하셨다. 빨간 김치 국물이 할머니 손에 묻었다. 엄지와 검지를 슬쩍 빠시고는 치워놓았던 밥그릇을 당기시더니 커다랗게 밥 한술을 뜨셨다. 그리고 길게 찢어놓은 묵은지를 그 위에 올리셨다.

꼬로록

나는 지금 분명히 아프고, 내가 아픈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화가 나있고, 서러워 있지만… 밥 냄새와 묵은 김치의 곰삭은 향에 속절없이 반응하는 배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배가 아파 그러고 있었던 거다.

할머니의 밥숟갈이 내 입 앞으로 쑥 다가왔다. 입술에 닿은 시원한 밥과 김치 향에 자존심을 굽혀야 하나 고민할 때, 할머니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마법에 걸린 것 마냥 입을 벌리고 못 이긴 척 받아먹었다. 시금 텁텁한 김치 맛을 물만밥이 잡아주고 쌀알을 씹으면 뒤 끝에 단맛이 따라 올라왔다.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운 법이다. 할머니가 주는 족족 넙죽 받아먹었다.
그렇게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남은 물까지 다 받아마시고, ‘끄억’ 트림까지 거하게 하고 나니 부끄러워졌다.

채반을 옆으로 치우고 할머니는 나를 무릎에 눕혔다. 그리고 옷을 까서 배에 손을 얹으셨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할미 손은 약손이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우리 손주 아프지 마라~”

할머니의 손은 참 따뜻했다. 배는 부르고, 마당에는 초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마루 위에 할머니와 손자 주위로는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스르르 졸음이 밀려왔다. 잠에서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배 아픈 것도 없어졌다. 그랬었다...

할머니의 낮은 자장노래도, 거칠지만 따스했던 손도, 찬 물에 밥 말아 올려주셨던 손으로 찢은 묵은지의 쿰쿰한 향기도 이제는 없다. 어릴 적 기억이고 배앓이의 추억이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이건 배앓이가 아니다.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만고불변 핑계는 ‘스트레스’다.
‘그래! 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그런 거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건담을 하나 사기로 했다.
내 수준에 아직 HG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
쇼핑몰 카트에 14000원짜리 건담 하나를 담았다.
.
배가 안 아파졌다.




https://brunch.co.kr/@gloryfactory/1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