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_12
'아야. 너 진짜 아버지 닮았다. 허허허'
난 이 말이 싫었다.
분명 덕담이라고 하시는 말씀인데 듣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화가 났다.
누군가를 향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흔히 '아버지'라고 말하면 거의 공통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그런 분이셨다.
자기표현에 서투르고, 자식에 대한 기준은 엄격하며, 타인에 대해 친절하고, 남 좋은 일 시키는 성실함을 가진 분말이다. 온순하고 착하신데, 아들 보기에는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이렇게 말하면 배부른 헛소리라는 거 아는데... 차라리 술 먹고 행패라도 부리는 사람 같았으면, 이제 머리 컸다고 반항하고 '제발 좀 그만하세요!'라고 드라마 한 장면 찍으며 원망이라도 해보겠는데... 이 양반에게 그 딴식으로 대들면 내가 그냥 후레자식인 거다.
효자다.
아버지는 할머니 돌아가시는 날까지 수발드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늘 할머니의 사랑을 혼자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옛날 어르신들이 그렇듯 '큰아들'이 최고였다.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자랑이었고, 막내인 작은아버지는 할머니의 앳가심이었다. 중간에 낀 아버지는 그래서 늘 할머니 주위를 맴돌았던 거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하고 자식을 셋이나 낳고도 말이다.
남편이 효자면 고생은 아내가 하는 법이다. 카랑카랑한 할머니 성깔 받는 것은 언제나 어머니였다. 할머니랑 같이 사는 이유로 집안 제사니 뭐니 준비는 어머니 몫이었다. 내가 신학대 가고, 고모들이 다 교회에 다니고, 큰아버지가 정치 쪽에 연이 닿아 교회 쪽 하고 왕래가 많아져 반푼이 기독교 집안 같은 모양새가 될 때까지 제사는 어머니의 일이었다.
정작 더 웃기는 일은... 할머니가 큰집 형들 키워준다고 서울로 가버리신 것이었다. 중풍으로 쓰러져 해남으로 다시 오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서울에서 큰집 형들이랑 살았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 없이,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정작 내가 할머니에 대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모습은 몸 한쪽을 잘 쓰지 못하시면서도 꼿꼿하게 자존심 세우시고, 정갈하게 계시는 장면이다.
할머니가 뒤늦게 교회에 다니시면서 새벽이면 일어나 한쪽 벽에 기대앉으셔서 기도하셨다. 꼭 큰아들, 큰 손주들 잘되라고 한참을 기도하시고 시간이 좀 남으면 우리 차례였다. 어린 마음에 '아니 우리가 모시고 사는데 우리 기도를 좀 오래 해주면 덧나요?'라고 울컥했는데... 이내 '우리 민성이, 우리 민기, 우리 진의 잘 되게 해주쇼~ 잘 되게 해주쇼~ 아멘~ 아멘~'하는 염불 같은 기도 소리에 계속 자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 형제들 중에는 할머니가 나를 제일 이뻐하셨다. 큰아들이라고...
할머니 돌아가시고 장례식은 집에서 치렀다. 나름 해남에서 아들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 손님은 많았다. 서울서 큰형들이 와서 큰아버지와 아버지 곁에서 상주가 되었고... 나는 왜인지 그 꼴이 보기 싫어 적당히 심부름하다가 교회로 도망쳤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서러워 울었던 것 같다.
자정 넘어 들어갔더니 한쪽에서는 화토니 윷이니 놀고 있었고, 큰어머니와 고모들 어머니는 다들 방에서 누워계셨다. 토방 한쪽에 걸터앉아 할머니 모셔져 있는 안방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국화들로 꾸며진 단 가운데 가만히 웃고 있는 할머니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머니가 새벽에 기도하던 자리에 기대앉아 그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대충 몸을 옆으로 눕혀 슬쩍 졸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 싶었는데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다. 꺼억... 꺼억... 낮게 흐느끼는 소리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누가 듣을세라 입을 꾸욱 다물고, 답답한 속을 어찌하지 못해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는 내 속까지 뒤집어 놓았다.
우욱...우욱... 어머니... 어머니...
그윽... 그윽...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소.
거으윽... 엄마... 엄마... 엄마...
한쪽 팔이 저리기 시작했는데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내가 깨어 있다는 걸 저 양반이 알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난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거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랬다. 난 별로 슬프지도 않은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 아버지가 그 좋아하는 엄마를 못 보게 된 것이 억울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장례식이다.
사실 그 뒤로도 난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들은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랑 똑같다'라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 말이 무척 짜증 났다. 겉으로야 세상 착한 아들처럼 웃었지만 말이다.
스물몇 살부터 한 십 년을 살려고 버둥거렸더니 서른이 넘은 어느 순간 아버지를 조금씩 알겠더라.
어느 날 내가 자라, 넓기만 한 아버지의 어깨가 좁아 보이고, 초라해지고 뭐 그런 거 아니다. 그냥 같은 남자라서 어떤 순간에 아버지가 왜 그렇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더라는 거다. 그리고 나니까 이 양반이 좀 편해졌다.
(뚜루루)
"여보세요?"
"어. 아부지다."
"네."
"밥은 먹었냐?"
"네. 아버지는요?"
"먹었다."
"네"
"알았다."
"네"
(뚜... 뚜... 뚜...)
10초 이내에 우리는 서로 어디 아픈 곳은 없으며,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당분간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별 문제없음을 완벽하게 의사소통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이 양반에게 귀여운 구석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큰 며느리에게 종종 전화해서 농담도 꽤 잘하는 눈치다.
어머니한테 좀 그렇게 했으면 타박 안 당하고 사셨을 것을...
요즘 아침에 면도할 때마다 거울 속에서 아버지 닮은 나를 발견한다.
왜 그때는 그렇게 화가 났었을까...
프로이트야 오이디푸스 어쩌고 했겠지만... 그건 남 일이다.
거울이 뿌예진다.
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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