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100개의 글쓰기_11

by 김민성

아내는 예쁘다.

음. 더 정확히는 스스로 뻔뻔할 정도로 자신 있게 자기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참 예쁘다. 가만히 지켜보면 처음 본 사람들조차 어드 새 동화되어 아내를 ‘미녀’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아 저 사람은 나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아내는 스스로 예쁘기 위해 꽤 노력한다. 간혹 밖에서 자신의 마음에 든 옷이니 소품이니 사 오는데… 그런 날은 어김없이 눈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물어본다.


“이거 얼마 게?”


경험상 지금까지 5만 원을 넘은 적이 없었다. 아니 3만 원을 넘는 것도 아주 드물다. 남편의 변변찮은 주머니 사정을 아는지라 무리하지 않는 것이겠지…


“우와. 예쁘다. 잘 어울리는데? 음. 3만 원?”

아내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3만 원보다 훨씬 싼 거다.


“만 8천 원~ 대박이지?”

그냥 웃음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이 사람은 훨씬… 훨씬 더 좋은 것을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만 팔천 원짜리 10개는 무리 없이 사주겠다고!!! 훗~ 나란 남자~

(어디선가 ‘필요 없어! 꺼져!’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건 내 착각이다. 분명.)


문구점에서나 팔 법한 핫핑크색의 귀걸이조차 아내에겐 잘 어울린다. 아내가 좋으면 나도 좋다.


거실에 나른하게 누워서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아내가 뭔가를 들고 나온다.

다이소나 마트 화장품 코너에서 구입한 매니큐어 들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내는 자기 몸에서 손을 가장 많이 보겠구나 싶다. 글을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키보드에 놓인 자신의 손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아내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은 위대한 전사가 자신만의 전쟁에 나가기 위해 무기를 다듬고 갑옷을 준비하는 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TV에는 CSI가 방송되고 있다. 범죄 현장에서도 손톱은 꽤나 중요한 단서로 나온다. 그걸 보며 아내는 자기 자기 손가락을 쭈욱 펴서 잠시 내려다본다.


손톱깎이로 손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느리게 나는 또각또각 소리가 재미있다. 손톱 하나가 탁자 아래로 튀었다. 아미를 살짝 찌푸리더니 엄지 손가락을 바닥에 꾹 찍어 튄 손톱을 모은다.

네일 버퍼로 문질러 손톱 끝을 정리한다. 도대체 입은 왜 저렇게 오므리는지 사진을 찍어놓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등짝을 맞을 것이 뻔해 속으로만 웃는다.


대충 정리가 끝난 모양이다. 부스스 일어나 깎은 손톱을 모아 버리고, 물 한 잔 마시고, 스트레칭 한 번 하더니 다시 자리로 와서 앉는다. 숨을 크게 들이쉬는 모습이 사뭇 비장하다.


갈색 매니큐어를 열었다. 브러시에 묻은 매니큐어액을 병 끝에 최대한 덜 어버린다. 자기 생각에 이 정도면 정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매니큐어 병을 탁자에 놓는다. 그리고는 왼 손을 계란 한 개정도를 쥐는 모양으로 자신을 향해 오므렸다.


소설가에게 첫 문장은 생명처럼 중요할 거다. 화가에게도 캔버스 어디에서 그림을 시작할지 중요할 거다. 지금 저 여자도 숨을 멈추고 자신의 검지 손톱에 바르는 첫 브러시가 굉장히 중요할 거다.


이 시점에 내가 ‘으아아아아아악!!!’하고 소리를 지르면 아마 아내는 기겁하고 놀라겠지. 그리고 나는 ‘니가 미쳤구나!!’라는 소리를 들으며 분노의 등짝 스매시를 여러 대 맞아야 하고 말이다. 오늘은 참기로 했다. 그냥 아내가 하는 모습을 반쯤 졸린 이 상태로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봄 햇살이 따스하니 기분 좋게 늘어지는 이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거다.


아내는 최대한 얇고 균일하게 매니큐어를 칠하기 위해 천천히 붓질을 했다. 브러시에 매니큐어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남도록 조절했다. 그렇지… 과유불급. 과유불급. 인생 그런 법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은 언제나 ‘적당히’였다.


손톱 하나하나 매니큐어가 칠해질 때마다 아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다시 말하지만 아내가 좋으면 나도 좋다.


봄 볕에 몸이 늘어진다. 매니큐어에서 나는 에나멜 냄새는 이 나른한 기분을 더 풀어지게 해주는 것 같다. 어느새 드라마가 끝나고 CF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손톱은 연갈색과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다.

입을 살짝 오므리더니 손톱을 가져가 ‘후우~~’하고 천천히 분다.


그래. 사실 난 지금까지 기다렸다. 거의 다 되었다.

손톱이 다 말랐는지 아내의 기분이 가장 좋은 이 시점이다.

지금이다.


“자기야… 자기야… 으으으!! 으으으!!”

“뭐? 왜?? 왜 그래?”


“나… 등 좀 긁어줘. 너무 간지러워… 어어어어어”


지금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그러면 험악한 메두사를 만나게 된다.

일단 등을 까고 아내의 처분을 얌전히 기다리는 시늉을 해야 한다.


“제바아알. 진짜 간지러워서 그래… 응?”


그래, 왼쪽 이마에 힘줄이 돋고, 지금 이걸 때릴까 말까 고민하겠지. 여기에서 등과 엉덩이를 씰룩씰룩하며 몸부림을 쳐야 한다. 등 뒤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됐다.


예쁘게 새로 바른 아내의 손톱이 자북 자북 등을 긁어준다.

왼쪽으로 왼쪽으로…. 시원하다. 다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륵 감기고 입꼬리가 올라가 웃음이 난다.


아내는 예쁜 사람이다. 머리 끝에서부터 손톱 끝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어….


어….


자기야. 너무 한 군데만 긁는 기분인데… 아... 아... 악.


피... 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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