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의 글쓰기 77
양파가 맵다. 아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칼질은 여전히 어색하다. 양파가 밀리지 않도록 왼손 엄지 손가락으로 버티고, 검지와 중지를 칼 면에 살짝 대서 양파를 채 썬다. TV에서 볼 때는 아주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하는 내 손은 곰 같다.
마늘을 으깨서 다지고, 파도 썰어 놓았다. 지난주에 마트 할인 코너에서 30% 세일할 때 사둔 새송이 버섯을 듬성듬성 썰었다. 어제저녁에 들어올 때 장 봐온 닭 안심과 냉동식에 얼려 두었던 닭가슴살을 해동해서 적당히 잘라두었다. 재료 손질은 대충 끝났다.
양념장을 만들 차례. 간장, 멸치액젓, 설탕, 올리고당, 치킨스탁, 물, 소금, 후추 느낌대로 넣고 맛을 봤다. 살짝 달큰하니 괜찮다. 가다랭이 육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니 그냥 있는 걸로 대충 할 수밖에.
5년 전엔가 커피 볶는 용도로 사놨던 작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파를 넣어 향을 냈다. 지난번에는 불을 너무 세게 올려서 마늘이 좀 탔었다. 이번에는 불을 좀 더 조절해서 신경을 썼다. 양파를 넣어 세게 볶고, 불을 살짝 줄인 후 손질해 둔 닭을 넣었다. 닭살이 희게 익어가는 것을 보고 버섯도 넣고, 양념장도 넣었다. 순서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냥 내 입에 들어갈 것을.
다시 불을 올려 양념장과 재료들을 센 불에 볶아냈다. 간장이 끓어오르며 치이익 소리를 낸다. 김이 나고 기분 좋은 냄새가 확 풍겨온다. 물을 반 컵 넣어서 휘휘 저었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2분 돌려놓고, 내장실에서 계란을 하나 꺼냈다. 작은 그릇에 넣어 적당히 대충 휘적여 놓고, 해동된 밥을 뒤집어서 1분 더 돌렸다. 보글보글 끓는 팬에서는 꽤 좋은 냄새가 난다. 그릇에 풀어놓은 계란을 끓는 팬에 휘돌려 올리고, 그릇은 대충 헹군 후 레인지에 돌린 밥을 담는다. 그리고 가스 불을 끄고 팬을 들어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밥 위에 올렸다.
‘오야코동’이라고 하더라. 유튜브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 봤다. 일본식 덮밥인데,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캔참치, 돈까스 등 뭘 올려도 어울린다고 했다. 심지어 그냥 양파와 계란만 해도 부담이 없다고 했다. 해보니까 실제로 그럴 것 같다. 요전에 캔참치로 만들었을 때도, 돼지 앞다리살로 만들었을 때도 다 먹을만했다.
아내가 단식을 선언한 관계로 아침을 혼자 먹는다. 뒤늦게 일어난 아내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고 뭔가 말하려다 만다. 그러더니 화장실 들어갔다 나와서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괜찮으니까 자기는 맛있게 먹어. 알겠지? 나는 전혀 신경 쓰지 마. 괜찮아.”
굉장히 신경 쓰인다. 하지만 나는 말 잘 듣는 남편이기에 신경 끄기로 했다. 간장 베이스의 짠 맛, 양파와 설탕에서 우러난 단맛, 닭과 야채에서 빠져나온 따스한 국물이 밥알과 잘 어우러진다. 단짠은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종일 일을 하다가 문득 저녁에 들어가서 아내를 어떻게 골려줄까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구울까? 라면을 끓일까? 그러다가 전에 다이어트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래 역시 이럴 때는 기름 냄새가 최고다. 그래서 집에서 닭을 튀겨보기로 했다. 유튜브 채널에서는 사실 집에서 튀김 하는 것이 기름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그렇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이참에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닭다리 살 발라진 것을 사고 싶었는데, 마트에는 없었다. 그래서 닭볶음탕용 닭을 4600원 주고 샀다. 순전히 호기심에 두반장 소스 한 통을 담았고, 피망 두 알, 계란 15개들이 반판 등을 샀다. 기쁘고 흥분된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지형씨가 안 보인다. ‘뭐지? 신발은 있는데?’라고 돌아서는데 작은 탁자 뒤에 웅크리고 있다가 확 튀어나온다. 우와. 진심 놀랬다. 내 놀란 표정에 아내는 너무 뿌듯해한다.
“크햐하하하! 김매니저 놀랬나? 놀랜 것인가? 성공한 것이지?”
아. 아내한테 요새 계속 당한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다. 이 복수는 닭튀김 냄새로 되갚아주기로 했다.
꿈지락 꿈지락 닭 살을 적당히 발라내고, 발라내기 애매한 부분은 놔두고, 생강 잘게 썰어서 생강술 만들어서 닭에 넣어 조물조물해줬다. 소금과 후추 뿌려서 고기 밑간도 했다. 오목한 팬에 전에 선물 받은 카놀라유 한 통을 야심차게 부어서 기름 온도를 올린다. 기름 온도 오르는 동안 간 해둔 닭고기에 전분가루와 물을 넣어 반죽을 했다. 이제 튀길 차례. 굵은소금을 넣어서 위로 뽀그르르 올라오면 좋은 온도라는데, 애매하다. 반죽을 좀 넣어봐도 당최 모르겠다. 괜히 아내 놀리겠다고 일을 너무 크게 벌였나 후회가 된다. 그냥 소고기 사 와서 스테이크나 구울 것을, 아니면 삼겹살이나 사다가 구울 것을...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허나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여튼 소금 알갱이를 한 6번 던져보고, 반죽 작게 4번 넣어보고, 튀김 젓가락 담가서 기포 생기는 거 보고 하다가 ‘에잇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닭을 기름에 넣었다. 한여름 소나기 내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쏴아아아아! 촤랑 촤랑 촤랑! 지글지글지글!’
소리 참 좋다. 그리고 올라오는 닭 익는 기름 냄새도 정말 좋다.
저쪽에서 이 모든 상황을 외면한 채 훌라후프를 돌리는 아내를 슬쩍 보니, 표정 관리가 안된다. 튀김 냄새 앞에 약해진 모습이다.
닭이 노릇하게 튀겨져서 꺼냈다. 작은 살덩이 하나 시험 삼아 입에 넣어봤다.
“푸훗!”
웃음이 나온다. 맛있다. 괜찮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파는 닭처럼 간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갓 튀긴 따스함과 담백함으로 충분히 맛이 좋다. 브라보!
어릴 때 어머니께서 책 좋아하는 나를 위해 사주신 선물이 있다. 어린이 동화집과 그걸 녹음한 테이프 세트였다. 기억에 금성출판사에서 나왔던 것으로 안다. 거기에서 우렁각시 이야기를 꽤 좋아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총각이 밥을 지어놓고 이렇게 말한다.
‘이 많은 밥을 누구랑 먹지?’
그러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나랑 같이 먹지요?’
총각이 우렁각시를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같이 먹어야 기쁘고, 즐거운 법이다. 어릴 때 함께 음식을 먹는 기쁨을 깨닫게 해 준 장면이었다.
닭튀김 작은 거 하나 집어먹고 나니 아내를 놀릴 생각만 가득했던 내가 바보 같이 느껴졌다. 지형씨랑 같이 먹어야 더 맛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훌라후프 돌리는 아내에게 부탁했다.
“자기야. 같이 먹자. 맛있다. 응?”
내 말에 지형씨 귀가 쫑긋거린다. 낄낄.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인 입으로 단식을 하기로 한 것을.
“나...나는. 단식을 해야 한다니까.”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전.혀 없다.
“뭐... 자기가 정 같이 먹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면 내가 생각은 해보겠어! 그러니 더 간절히 부탁해보도록!”
표정은 ‘제발 같이 먹자고 부탁해주세요.’라는 표정인데 입은 아주 도도하시다. 그래, 내가 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밀어주자.
“자애로우신 임 작가님. 부디 제 미천한 손으로 튀긴 닭을 같이 먹어주세요.”
낄낄낄. 과장된 몸짓으로 무릎까지 꿇어가며 부탁했더니, 아내는 빵 터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모양이다.
여튼 우리는 내가 처음으로 튀긴 닭튀김을 사이좋게 먹었다. 리미트가 풀린 아내를 위해 아귀포 4마리를 굽고, 라면까지 끓여 드려야 했다.
다 먹고 근처 공원도 5바퀴 돌았다. 함께 먹은 닭은 유난히 맛있었고, 밤공기는 시원했으며, 지형씨의 단식은 실패했다. 핫핫핫.
3일 단식을 선언했던 아내는 아침,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먹는 간헐적 단식 아니 엄밀히 말해서 간헐적 폭식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저녁이면 냉동실의 새우로 만든 감바스 알 아히요에 베이글 찍어 드시고, 그다음에는 피자를 드시고, 그다음에는 딸기 팬케이크와 미니 족발을 드시면서 실패한 단식 대신 간헐적 폭식을 이어가고 계신다. 어제는 오후에 너무 참기 힘들어서 내가 사다 놓은 사골곰탕 육수를 끓여 드셨다고...
그걸 끓여먹으면서 도대체 왜 자신이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 자괴감까지 느끼셨다고 한다. 뭐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저 내일 뭘 만들어 먹을지 검색할 뿐이다.
내일 아침에는 고추잡채나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