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감자와 그녀

100개의 글쓰기 14

by 김민성

<버터 감자와 그녀>


사실은 꽤 열심히 만들었다.
근데 그렇게 말하기 부끄러워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충... 만들었어요."


커피에 버터 감자가 어울리지 않으리라는 걸 왜 몰랐을까...

품암동 파스쿠찌에서 아내를 세 번째 만났을 때의 기억이다.


주말엔 교회에서 일했고 평일엔 새벽에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었고(지금도 여전히 없지만) 딱히 자랑할 것도 없었다.


그냥 나가기는 뭐해서 집을 둘러봤다.
마침 여동생이 사다 놓은 감자가 몇 개 보였다.
언젠가 휴게소에서 먹었던 버터 감자가 맛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알감자가 아닌 걸 아쉬워하며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곤 깍둑썰기로 적당히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아무래도 아직 서로 익숙하지 않은데 입 크게 벌려 뭔가 먹는 모습 보이기 싫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냄비에 감자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는 했다.
마음은 근사한 저녁이라도 사고 싶었는데 아직 급여 날짜가 아니라 돈이 없었다.
이 나이에 이러고 있는 것이 좀 부끄러웠다.


치이이 하고 타오르는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돈이 없는 것은 불편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나에겐 당연한 일이라고 적당히 타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만에 내가 가난하고 딱히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좀 짜증이 났었다.


부글부글 물이 끓어오르고도 한참을 지켜봤다. 젓가락으로 감자 하나를 찔러봤더니 쑥 들어갔다. 다 익었지 싶어 불을 끄고 물을 따라버렸다. 키친타월을 깔고 감자에 남은 물기를 털어버렸다.

다시 레인지 위에 팬을 올렸다. 여동생이 빵 만든다고 사다 놓은 버터를 과도로 한 덩어리 잘라냈다. 달군 팬에 버터를 둘렀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겨 올라왔다.

피식 웃음이 터졌다. 또다시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안 하던 짓이었다.


삶은 감자를 팬에 집어넣고 굽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선 참 쉽게도 하던데 막상 집에서 직접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요리 경험도 많지 않았고 말이다.

설탕과 소금을 넣고, 찬장을 뒤졌더니 허브가 있다. 향이라도 나면 더 맛있을까 싶어 한 조각 집어넣어 같이 구웠다. 노릇노릇해지자 좀 그럴듯한 느낌이 났다.
대충 다 된 것 같아서 락앤락 그릇에다 담고 역시 여동생이 사다 둔 파슬리가루를 뿌렸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빠듯했다. 대충 정리하고, 적당히 챙겨 입고, 플라스틱 통 담아서 버스를 타러 튀어나왔다. 집에서 약속 장소인 풍암동까지는 1시간 20분은 걸렸다.

당시 아내는 풍암동에서 아이들 독서논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저녁시간에 가르치느라 밥시간을 자주 놓친다고 했었다. 동물 수컷이 암컷에게 먹이를 가져다 바치는 것은 구애 행위 중 하나다.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었을 뿐…


그녀는 무릎까지 오는 청치마 비슷한 걸 입고, 당차게(스커트를 입고 당차게 걷는 모습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걸어오며 오른손을 들고 인사했다.


“하이! 민성씨~~~”


뭔가 이게 아니지 싶었다.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서로 조용히 바라보면서 수줍게 웃는다. 내가 싸 온 간식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자 그녀는 살짝 감동받은 얼굴을 한다. 없는 솜씨로 만들었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웃는다. 감자 하나를 살짝 집어 입속에 넣고 눈웃음 짓는 그녀를 보며, 만들어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나… 이런 걸 상상했었다.


근데 카페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가 나오고 있었고, 당차게 걸어온 그녀는 철푸덕 앞에 않았다.


“오늘 완~전~힘들었어요. 애새끼들이 어찌나 삔질거리고 글 안 쓰던지. 아우!! 어? 그거 뭐예요?”

“아. 버터 감자요.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 해서…
그냥 대충... 만들었어요.”


우악스럽게 뚜껑을 벗기더니 그녀는 감자를 집어 와앙~하고 입에 집어넣었다.

딱히 맛은 없었는지 그녀는 예의상 몇 개 집어먹고 말았었다.
민망해진 나는 또 그걸 꾸역꾸역 집어먹었다.

하아…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또 하기 시작했고, 커피와 버터 감자를 씹으며 나는 다시 맞장구치며 듣기 시작했다.


싫은 것에 대해 인사치레라도 좋다고 말하지 않는 성격의 여자라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또한 내가 요리에 소질이 없음을 다시 깨닫게 된 날이었으며… 다음번에 맥주나 한 잔 하자는 그녀의 말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이 한심해진 날이기도 했다.


끝내 버터 감자는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락앤락 통속에 달랑거리고 돌아다니는 감자조각 모습이 처량했다.


어쩌자고 넌 맛조차 없는 거냐…
내가 만들어놓고 감자에게 미안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도 좀 너무했다.
아무리 맛없어도 좀 더 먹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요리 혼은 그 날 버터 감자와 함께 꺾여버렸다.


아마 앞으로도 되살아나기는 어려울 듯싶다.


냉정한 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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