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15
“제엔장!! 이번 달 보너스도 날아가는 건가.”
월급쟁이의 삶은 고달프다.
“엘보우 로켓!!”
“엘보우 로켓!!”
저 거대한 카이주의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 넣든, 사무실에서 전투 후속 서류 작업을 하든, 사령관에게 끌려가 파괴된 민간시설에 대해 쿠사리를 먹든, 월급쟁이의 삶은 고달프다.
“김 부장님! 카이쥬가 3번 섹터 뉴 고려은행 방면으로 가고 있어요. 도시형 융합 발전소가 목표로 보여요. 여기서 막아야 합니다.”
주 전략실에서도 똥줄이 타서 난리인 것은 알겠는데, 제발 이럴 때는 좀 닥쳐줬으면 할 뿐이다.
“쿠롸롸롸롸락”
“시끄러워 이 도마뱀닭대가리야!”
3등급 카이주 ‘그네리자드’는 어떻게든 내 목덜미를 물기 위해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다. 머리를 뒤틀어 피하자, 귀 옆으로 ‘딱’하고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과 소름이 돋는다.
“키아아아악”
놈이 앞발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휘들러 친다. 거대한 곰이 두발로 일어서서 앞 발로 후려치는 장면을 영화로 볼 때야 ‘박진감 넘치네’라고 하겠지만, 그게 내 상황이 되면 비명밖에 나오지 않을 거다.
“끄아아아악”
간신히 양팔을 엑스자로 교차시켜 공격을 막았다. 그래 태권도 다니기를 잘 했다.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 배워놓은 잡기가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엄마 고마워요!
놈은 두 발로 일어서 앞 발로 공격했다가 나에게 막히자 잠시 당황했는지 움찔했다.
“빌어먹을 자식아 이거나 처먹어!”
있는 힘을 다해서 무릎을 차 올렸다. 이놈이 수컷이기를 바란다. 사타구니가 깨지고도 멀쩡할 수놈은 없으니까 말이다.
“크웨에에에엑”
끔찍한 괴성이 놈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왔다. 눈이 완전히 뒤집혀 고통과 분노에 차서 나를 쳐다본다. 뒷다리가 파들 거리는 모양이 극도로 괴로운 것이 틀림없다.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회복을 기다리는 놈을 기다려 줄 매너 따위 나에겐 없다.
“오냐. 너 수컷이구나. 내가 오늘 널 고자로 끝장 내주마!”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를 놓치지 않는 거다. 앞으로 뛰어들자 놈이 목을 길게 뽑아 이빨을 드러내 물려했다. 머리를 살짝 숙여 놈의 턱을 피했다. 바로 자세를 낮춰 몸통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놈의 왼쪽 겨드랑이에 어깨를 갖다 대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아~방 스트랏슈!!”
놈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영화 같은 필살기가 현실에 존재할리 없지만… 뭔 상관인가. 지금 저자식을 없애버릴 수 있으면 그게 필살기다.
“브레스트 파이어!! 루스트 허리케인!! 마징 킥”
뒤집어져 버둥거리는 놈을 보고,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 사타구니를 향해 충실하게 강력한 밟기 공격을 날려주었다.
“김부장님. 그 냥 밟고 있는 것뿐이잖아요!! 공격 명칭하고 매치가 안돼요.”
“뭔 상관이야! 저 새끼도 못 낳는 닭 새끼 존재 자체가 민폐라고!”
“어쨌든 카이주는 무력화되었으니 그 정도로 하고, 빨리 마무리하세요. 거대화 시간도 20초밖에 안 남았다고요.”
“오케바리! 결전 병기 프로그레시브 나이프! 로크 온!”
“하아… 그거 그냥 거대한 쇠망치잖아요. 됐고 얼른 끝내세요.”
맞다. 그냥 이거 거대한 슬레지해머다. 그래도 남자의 로망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평소엔 들고 싸우는 것이 거의 무리지만, 이렇게 마지막 일격을 먹일 때는 이만한 것이 없다. 거의 빈사상태인 카이주 대가리를 향해 일격에 해머를 휘둘렀다.
“나의 망치는 지하를 꿰뚫는 망치다!!!!!!!!”
쿠아아앙.
전투는 끝났다. 파괴된 도시는 복구팀에 의해 정리될 것이다. 저들도 지구방위기업 세스코 코퍼레이션 소속의 월급쟁이일 뿐이다. 내 몸이 거대화 약물 ‘인라지’에 양성반응을 보인 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다. 어쨌는 섹터 18번을 담당하는 정규직이 될 수 있었으니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년째 싸우고 있는데 과연 이 싸움에 끝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장님 수고하셨어요. 뒤는 저희가 처리할 테니 서류 사인해주시고, 오늘은 퇴근하셔도 된답니다.”
하루가 끝나간다.
궤도 열차에 몸을 싣고 퇴근하는 길은 늘 몸이 천근만근이다.
‘삑삑 삑삑 뚜루룽’
“나 왔어.”
“어, 잘 다녀왔어? 오늘은 별 일 없었고?”
아내의 목소리가 밝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어, 뭐 늘 그렇지.”
“아. 맞다 들어오지 말고 거기 있어. 잠깐만….”
“응? 왜? 왜?”
싱크대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탕탕 개수대 치는 소리가 난다.
“이거. 갖다 버리고 와. 밖에 재활용도 있어. 가는 김에 같이 버리고 와.”
“어? 어… 알았어.”
그래.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대괴수 카이주 따위와 전혀 상관없는 임무가 있다.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와 택배박스와 다 쓴 플라스틱 샴푸병 등을 처리해야 한다. 남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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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현관에 서서 긴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지구를 지키는 용사도 집에 들어가면 똑같을 거라고,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해도 아내 앞에서는 의미 없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영부인들께 옆구리 꼬집히고, 핀잔 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혹시나 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아내를 쳐다보았지만 소용없다. 아내의 오른손이 올라간다.
얼른 검정 봉다리를 받아 밖으로 나왔다. 3월 저녁 바람은 아직 차다.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먼 걸까?
뭔가 더 잘 통하는 변명을 고민하며 발을 옮긴다.
그래. 나는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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