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웅변하다

100개의 글쓰기 16

by 김민성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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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저 애절한 시를 반공 구호 가득했던 웅변학원에서 배웠다는 거다.

어릴 때 난 지금보다 1827배는 소심했다. 어머니 입장에서야 순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었겠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발표조차 잘 못했다. 혹시나 선생님이 나에게 뭐라도 시키면 어쩌나 염려했었고, 책 읽기라도 해야 할 때면 심장이 두쾅두쾅두쾅 뛰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절반도 읽지 못하고 덜덜 떨다 울기까지 했다.

이런 내 심각한 상태를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께 무엇인가를 권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웅변학원’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소리 질러야 하는 정글에 어머니는 나를 내버려 두고 표표히 사라지셨다. 아마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었지 싶다.


학원 원장님은 당시 유행하던 전영록 머리에 잠자리 안경테를 쓰고, 곤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원생들을 앞에 놓고 시범을 보여주셨었는데… 내 눈에는 등 뒤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는 거인처럼 보였다. 원장님이 단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걸어오실 때, 깜짝 놀랐다. 다리를 저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며,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찾기 위해 웅변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내게는 처음으로 만나는 ‘인간 극장'이었다.


여하튼 그날부터 나는 웅변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원장님은 나에게 ‘잘한다'라고 무척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타인에게 ‘칭찬받는 일'은 늘 근사하다. ‘나도 잘 하는 일이 있구나…’하는 생각과 ‘또 칭찬받고 싶다'라는 열망에 가득 차 열심히 학원에 다녔다.


“저 북쪽의 김일성~괴뢰 부자를~ 멸공의 몽둥이로 두들겨 잡아야 한다고~오~

이이~ 어린 연사~~ 가앙력히~~~ 주자앙~~합니다아아아!!!”


정말 열심히 원고 외우고, 연습했다. 대회에 나가서 대상, 금상, 최우수상, 장려상…. 트로피도 받았다.

해남 출신인 아버지는 내가 외우는 원고 덕분에 본인도 모르게 실향민도 되었다가, 통일의 풀피리도 불었다가, 나를 데리고 3.8선을 넘은 용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웅변대회에 나가서 아주 쌩 구라를 쳐서 상을 받아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어차피 그 바닥에서 서로 적당히 상 나눠준 것이겠지 싶다. 어머니나 나나 그런 것 전혀 오르고 번쩍거리는 트로피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장식장 가득 진열해놓고 자랑하기도 했었다. 흑역사다.)


하루는 원장님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목을 풀도록 알려 주셨다.

그게 바로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이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다섯 번 점점 크게 외친다.

그 후 약간 숨을 고르기 위해 ‘임은같이 까딱 않는데’를 천천히, 약간 소리를 적은 소리로 한다.

이어서 다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3번 또 점점 큰 소리로 외친다.

여기까지 가면 얼굴을 시뻘겋게 되고, 숨은 턱 끝까지 차며,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뛴다.

클라이맥스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내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은 상태이고, 곧 심지가 다 되어 폭발하기 직전인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온 힘을 다 해 마지막 구절을 외치게 된다.

“날! 어쩌란 말이냐~~~~~~~~~”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아직 어려서 사랑에 대해, 저 절박한 시인의 마음에 대해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외칠 때는 정말이지 눈물이 글썽거릴 수밖에 없었다.


목이 너무 아팠으니까... 췟!

(사랑 따위, 시인의 감성 따위 내가 알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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