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17
늘 그런 마음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에 따라 충분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 타임테이블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 차근차근 일을 진행한다. 계속 체크하면서 변동 사항에 대처하고, 변수를 줄인다. 일이 모두 진행되고 딱 떨어지게 끝이 난다. 모든 것이 정리된 후 혼자 남아 다음에 더 재미있는 일은 또 뭘 해볼까 고민하는 이런 모습을 가지고 싶었다. 꿈이었다.
하지만 내 성향은 대충 이렇다.
이것 저건 뒤적거리고, 헛생각하다가 ‘어라?? 이거 재밌겠네?’라는 걸 떠올린다. 엉성하게 계획 세우고, 주변에 막 자랑한다. 그럼 주위에선 재밌을 것 같다고 반응이 온다. 업되서 일단 일을 벌인다. 곳곳에서 구멍이 나있지만 난 잘 모른다. 주변에서 보다 못해 나서 도와주고 구멍을 메워준다. 여기저기서 변수가 튀어나온다. 임기응변으로 넘긴다. 일이 모두 진행되고 나면 어수선하다. 정리를 한 후 밤에 혼자 이불 킥을 한다. 아 씌! 다음에는 꼭 계획적으로 일을 해봐야지!!!
10여 년 전.
내 이런 성향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변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자기계발 분야의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티븐 코비, 잭 웰치, 피터 드러커, 카네기, 앤서니 라빈스 같은 사람들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차동엽, 이지성 류의 책도 많이 읽었다. 정말이지 주옥같은 내용들과 문장들이 많았다.
우선순위~ 우선순위~라는 말을 많이 하기는 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시간관리 매트릭스라는 개념을 알고 나니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았구나 싶었다. 바로 내 생활을 돌아보고 4가지로 분류해서 급히 작성했었다.
1. 급하고 중요한 일
즉시 처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긴급한 회의, 즉시 처리해야 할 업무, 처리해야 할 서류, 공과금 납부, 설교 준비, 병원 가기 같은 일들.
2.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계획된 일을 미리 준비하는 일, 돌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일, 운동, 가족과의 시간, 독서, 자기 계발
3.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미드 보는 일, 인터넷, 공략 못한 게임
4.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
지나친 인터넷 검색, 미드 몰아보기,
정리해놓고 보니 1번과 2번 활동을 열심히 하고 3번과 4번 활동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당장 프랭클린 플래너를 구입했다. 신세계였다. 시간을 이토록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법과 도구라니!
플래너를 펼치고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일정을 정리했다.
월 : 새벽 알바 - 학교 - 집
화 : 새벽 알바 - 학교 - 집
수 : 새벽 알바 - 학교 - 교회 - 집
목 : 새벽 알바 - 학교 - 집
금 : 새벽 알바 - 학교 - 집
토 : 새벽 알바 - 교회 - 집
주일 : 교회 - 집
하아… 그러니까 나는 별다른 일정이 없이 살았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어쨌든 나름 열심히 활용했다. 그래도 교회 1년 행사가 있으니 거기에 맞춰 준비하고, 다이어리를 적었다. 그렇게 대충 어떤 느낌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났더니 급 피곤해졌다. 이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의미인지 호기심이 충족되자 흥미도가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한 열망은 컸기에 계속해서 연습했다.
차근차근 쓰는 하루의 계획... 은 개뿔. 6개월 질질 끌며 발버둥 치느라 스트레스받아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안 맞는 거 억지로 하는 것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집어치웠다.
결혼 후 요즘 다시 저 우선순위의 분류가 필요해졌다.
1. 급하고 중요한 일 : 아내가 명령한 일, 교회 일, 업무
2.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 아내가 부탁한 일, 가족 관계, 건강, 운동 등
3. 급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은 일 : 아내가 시키는 여러 가지 잡일
4.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 :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뻘 짓 ㅜ,.ㅜ
매년 다이어리를 받는다. 올 해도 연 초에 다이어리를 받았다. 처음 몇 장 적고는 뒤로는 비어있다. 뭔가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이것도 스트레스다.
고민 끝에 ‘올해 이 다이어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목표를 세웠다. 내 절대! 기필코 여기다가 아무것도 쓰지 않으리라! 나도 계획을 세우고 한다면 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리라!!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사람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